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지금까지의 공민왕은 모두 잊어라

Shain 2014. 1. 5.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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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퓨전사극에 질린 시청자들에게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제작된 '정도전'은 방송 전부터 여러 팬들의 주목을 받던 기대작입니다. 유명 사극전문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하고 창작된 역사가 아닌 정사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공언은 많은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죠. 정현민 작가는 상대적으로 사극팬들에게 생소한 인물이지만 정도전 역에 조재현, 이성계 역에 유동근, 이방원 역에 안재모, 정몽주 역에 임호, 이인임 역에 박영규 등 출연배우들 만으로도 충분히 볼만한 드라마였습니다.

개혁적인 학자 정도전의 눈으로 지켜본 공민왕 - 우리가 알던 공민왕과 다른 폭군 공민왕.




우선 첫회를 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면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입니다. 전체적으로 '정도전'은 사극 보다는 드라마를 주로 연출했던 작가와 제작진답게 기존 사극의 전개 방식은 벗어나 있습니다. 지루하고 평범하다는 사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드라마틱한 재미를 잃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아직까지는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얼마나 정사에 기반했는지는 드러나지 않은 편입니다. 정도전(조재현)은 아직 고려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이성계(유동근)는 개국의 야망을 펼치기 전입니다.

1회의 내용 중에서 유독 눈길이 갈 수 밖에 없는 캐릭터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공민왕(김명수)입니다. 무너져가는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자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난 개혁적인 왕. 반역자 기씨 형제들과 기황후, 원나라 왕실이 덕흥군을 보내 반란을 도모하고 고려를 흡수하고자 괴롭힐 때도 꿋꿋이 버텼던 공민왕이 '정도전'에서는 최악의 폭군이 되어 있습니다. 노국공주의 죽음과 함께 지쳐서 나가떨어진 공민왕은 더 이상 존경받는 군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드라마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던 공민왕은 백성의 죽음에도 까딱않는 폭군으로 변했다.


노국공주의 화려한 영전을 짓겠다며 백성들을 공사에 동원하고 공사중에 백성들이 다치고 죽어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는 잔인한 왕. 처참하게 짓밟힌 백성이 감독자들에게 항의하다 칼에 맞에 죽었는데도 잔치를 벌이는 왕. 고려가 외적들에게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도 후계가 불안하다는 사실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죽은 노국공주의 영혼이 춥고 외로울 것이란 생각 밖에 할 수 없는 왕. 늙은 어머니 명덕태후(이덕희)의 애원에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는 왕. 이미 정도전의 고려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었습니다.

사실 MBC '기황후'에 대한 반발이 큰 이유 중 하나는 기황후가 고려의 개혁세력이던 공민왕의 반대파였기 때문입니다. 한때 기철을 비롯한 기씨 집안은 공민왕을 밀어내고 덕흥군을 세우려 했습니다. 공민왕은 고려의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기황후를 더욱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공민왕을 외세에 시달리게 만들었으니까요. '정도전'의 공민왕은 기황후를 비롯한 강적들이 이미 실각했고 신돈 마저 내친 상황이었지만 노국공주없이 혼자 맞서기엔 너무 지친, 외로운 왕이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드라마에서 '폭군 공민왕'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 적이 드뭅니다. '개국(1983)', '신돈(2005)', '신의(2012)'. '대풍수(2012)'에서 묘사된 공민왕은 고려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당당한 군주였습니다. 노국공주의 죽음과 함께 넋을 잃고 헤매는 공민왕의 모습이 애처롭고 슬퍼보였을지언정 대놓고 폭군처럼 묘사한 적은 없었죠. '정도전'의 공민왕은 이인임(박영규)이 정사를 농단해도 개의치 않는 미치광이입니다. 노국공주의 영전을 짓기 위해서라면 젊은 학자의 목숨도 가볍게 넘길 수 있는게 지금의 공민왕입니다.

정도전의 친구 정몽주, 노련한 이인임. 정도전은 어떤 과정으로 고려에 대한 희망을 버리는가.


공민왕의 폭정은 삼봉 정도전이 고려의 개혁을 포기하고 오랜 친구인 정몽주(임호)에게 등을 돌리고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로 마음먹는 계기 중 하나입니다. 극중의 정도전은 '백성을 위한 나라'를 꿈꾸는 정치적 이상가입니다. 앞으로 원나라를 등에 업고 힘을 키운 권문세가와 왕실 외척인 경복흥(김진태), 이인임같은 권신에게 질린 정도전은 고려라는 판을 뒤엎기 전에는 백성에게 희망이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의 공민왕은 개혁적인 학자 정도전의 눈으로 본 공민왕인 셈이죠.

시청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보통 드라마 첫회는 심혈을 기울여 제작되곤 합니다. '정도전' 첫회가 많은 사극 팬들에게 합격점을 받았지만 생방송 사극 촬영이 흔한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죠. 몇가지 고증 오류를 지적하는 글도 조금이지만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건 최근 '대세'를 이룬 많은 퓨전사극(솔직히 사극으로 분류해서는 안되는 드라마들이죠) 속에서 단 한편의 정통사극이 될 것이란 점은 기대해도 될 것같습니다. 정도전의 시선에서 바라본 공민왕 - 확실히 관심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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