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공민왕과 이인임에 얽힌 정도전의 비밀

Shain 2014. 1. 6. 12:24
728x90
반응형

고려 역사에서 가장 천재적이고 감성적인 인물 중 하나가 바로 공민왕입니다. 지금도 공민왕의 글씨와 공민왕이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남아 있으며 가장 아름다운 무덤 중 하나로 꼽히는 공민왕릉도 공민왕이 직접 설계, 감독한 것이라 합니다. 기황후, 기철형제, 원나라, 권문세족, 외척들까지 이겨낸 강한 남자 공민왕이 아내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폐인이 되어 점점 미쳐가면서도 부부가 죽어서 함께할 무덤을 만들었다니. 이 정도면 한국의 타지마할이라 불려도 될 듯합니다.

안타까운 개혁군주 공민왕 - 드라마 '정도전'은 이인임이 그의 죽음을 사주한 것으로 그린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보여준 공민왕(김명수)은 총명하고 개혁적인 군주가 아닌 미쳐 백성들을 괴롭히는 왕이었습니다. 죽은 노국공주가 비를 맞고 춥지 않을까 걱정하고 죽은 공주의 아방궁을 짓고 싶어했습니다. 노국공주 외에는 아무도 아내로 인정하지 않는 공민왕은 네 명의 정비를 자제위의 홍륜(서우진)과 동침시킬 정도였습니다. 천첩의 아들 모니노(정윤석)을 세자로 세우려 했지만 경복흥(김진태)과 명덕태후(이덕희)가 반발하자 이인임(박영규)은 정도전(조재현)을 미끼로 외척을 모두 제거하자고 제안합니다.

수시중 이인임은 공민왕의 입안의 혀처럼 굴며 엄청난 권력을 누립니다. 그의 집엔 분경을 위해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마당에는 여기저기 재물이 넘쳐났습니다. 신진사대부를 정치도구로 이용할 정도로 잔인했던 이인임은 정도전의 영향으로 마음이 바뀐 공민왕을 자신이 제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공민왕이 익비(이소윤)를 임신시킨 홍륜을 내시 최만생(이정성)을 시켜 제거하려 한다는 걸 홍륜에게 알려주었고 분노에 찬 홍륜은 자제위를 끌고와 공민왕을 죽이려합니다.




 

 

 

 

 

정통역사극을 선언하며 나선 '정도전'의 모든 내용이 정사인 것은 아닙니다. 고려사에는 홍륜이 잠든 공민왕을 몹시 잔인하게 죽였다고 묘사합니다. 뇌수가 튈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극중에서는 내시 최만생이 공민왕을 위해 앞을 가로 막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최만생 역시 자신이 죽을까 무서워 공민황 시해에 가담한 인물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사에는 이인임이 공민왕을 죽였다는 내용 따윈 없습 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하고자하는 이인임 캐릭터가 정도전의 정적이기에 그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죠.

공민왕은 모니노를 자신의 아들로 공언했지만 '고려사'는 단순히 소문만으로 신돈의 아들로 격하했다.

얼마전에 모 방송작가가 고려 시기 사료가 적다는 말을 했다는데 고려의 복식이나 생활양식, 정확한 문화를 파악하기 위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왕이나 신하, 백성의 복장을 고증할 만큼의 자료는 충분히 있고 무엇 보다 고려의 왕조사를 기록한 '고려사'라는 든든한 역사서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고려사'는 정도전과 여러 학자들이 편찬하기 시작해 수차례 개찬한 후 59년만인 1451년에 완성된 것으로 객관성 면에서 인정받는 정식 사료입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태조, 태종, 세종 등이 '고려사'를 읽고 '공민왕 이후의 일은 사실과 다르다'며 개찬을 명하는 내용 입니다. 즉 정도전 등이 조선의 개국과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기록을 조작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는 공민왕에서 우왕(고려 사관은 공민왕이 모니노가 자신의 아들이라 공언했다고 했지만 '고려사'는 모니노를 신우라고 격하 - 신돈의 아들이라 이거죠)으로 이어지는 혈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을 보면 이인임 역시 비슷하게 깎아내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드라마는 철저히 정도전의 입장에서 본 이인임과 고려왕조라는 점은 명심해야한다.

이인임은 '고려사' 인물 열전에 실린 사람으로 임견미 등과 함께 대표적 간신 입니다. '다정가'로 유명한 이조년의 손자인 이인임은 드라마에서 말한대로 음서로 관직에 등용되어 왕보다 더 큰 권력을 누린자입니다. 확실히 이인임의 치세가 고려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영달을 위한 것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겠죠. 친명에 가까웠던 정도전과는 달리 친원파라서 정도전과 반대되는 인물이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인임에게도 정치적인 입장과 주관이 있겠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우왕, 창왕을 부정하듯 이인임도 부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공민왕, 우왕, 이인임 등의 역사적 평가를 기술한 인물이 바로 정도전 이고 새로운 왕조의 왕들 조차 '너무 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나마 객관적으로 기술되었다는 '고려사'에서 공민왕 이후의 역사는 조금 더 관대한 눈으로 지켜봐야하는 걸까요. 과격한 개혁주의자 정도전이 새로운 조선에 얼마나 큰 기대를 가졌길래 한때 자신이 충성하던 고려 왕조를 그렇게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드라마는 철저히 정도전의 입장에서 본 고려 왕조를 묘사하고 있는 것이니 그들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잠시 접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일도에 무일편을 써넣으며 새로운 고려를 꿈꾸던 정도전. 이인임과 정도전의 정쟁은 이제 시작이다.

삼봉집에 적힌,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 그 가치가 있다'는 글, 왕권국가인 고려에서 권문세족의 농토가 농사를 짓는 백성들에게 나누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정도전은 현대인의 눈으로 봐도 파격적인 인물입니다. 안타까운 고려의 군주 공민왕이 죽고 어린 모니노가 이인임에게 휘둘리는 시기가 왔습니다. 정도전은 곧 유배를 가게 될 지도 모릅니다. 전형적인 권력자인 이인임과 정치는 잘 모르는 학자 정도전의 대립은 이제 본궤도에 올랐다는 이야기죠. 공민왕의 죽음을 사주한 사람을 이인임으로 설정한 만큼 얼마나 색다른 정쟁(政爭)이 될 지 두고볼 일입니다.

* 그건 그렇고 김명수씨. 김갑수 씨에 이어서 단명 전문 배우가 되신 것 같네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