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정도전을 얻은 이성계와 몰락을 앞둔 이인임

Shain 2014. 3. 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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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간신열전에 실린 대표적인 간신 이인임. '다정가'를 지은 이조년의 후손으로 권문세가였던 이인임에겐 인척이 되려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을 것입니다. 수많은 부인을 둔 왕건 이래 고려의 권력은 혼인을 통해 단단하게 유지되곤 했습니다. 이인임 자신도 먼 친척 뻘인 근비를 우왕과 혼인시켰던 인물이니 가까운 친척들의 혼사를 정략적으로 추진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무나 당여로 넣지 않고 아무나 내치지 않는 그의 노련한 정치성향으로 보아 이성계를 쉽게 맞아들이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인임과 이성계 중에 혼사를 맺고  싶어 안달이 난 쪽은 어느 쪽이었을까?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인임(박영규)과 이성계(유동근)이 손잡는 일련의 과정을 이성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묘사합니다.

이인임과 사돈이 되어 정치에 발을 담근 이성계. 자식들의 정략결혼은 과연 누구의 뜻이었을까?

역사의 승자가 된다는 것은 역시나 해볼만한 일인 것같습니다. 붕괴 직전의 고려와 가장 잘 어울리는 정치인 이인임이 이성계와 손을 잡은 건 천하의 간사한 짓이 되고 경처 강씨(이일화)의 자식들을 고려 권문세가들과 혼인시킨 이성계의 선택은 살기 위한 선택으로 묘사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경처를 선택한 변방 출신 이성계가 이인임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드라마에서는 정도전(조재현)이 결과적으로 이성계를 정치에 입문시킨 것처럼 그려집니다.

뜨겁게 활활 타오른 불꽃은 사그라질 일만 남았다고 하던가요. 우왕(박진우)의 성정은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고 우왕에게 국부 대접을 받게 된 이인임은 점점 더 노쇠해지고 그의 권력은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인임의 심복 임견미(정호근)와 염흥방(김민상)이 날뛰는 모습을 보게 될 날도 머지 않았 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이인임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모양인데 곧 사직을 청하고 물러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성계가 치고 올라오는 1388년이다가옵니다.

경처 강씨 딸을 이인임의 조카와 혼인시키고 공양왕의 조카와도 혼사를 맺은 이성계.

 

조선의 사육신 성삼문은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는 말로 자신의 충심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는 '정치(政治)'는 독야청청과 전혀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근묵자흑(近墨者黑)이 사람들이 말하는 정치의 의미와 가깝습니다. 신진사대부 정몽주(임호)의 점잖은 처세, 충심을 강조하는 그의 태도는 올곧은 뜻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치하는 신하의 처세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정도전이 10년 동안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신진사대부들이 주변으로 밀려난 까닭도 어쩌면 유연하지 못한 처세에 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직한 무장에서 고려 조정의 정치인으로 드라마 속에서 이성계에게 안변책을 써준 정도전은 이성계를 정치무대에 성공적으로 입문 시킵니다. 이성계가 드디어 정도전의 능력에 믿음을 가지게 된 순간입니다. 무장으로 정치판에서 곤란을 겪던 최영(서인석)은 자못 아쉬운 듯하면서도 이인임의 당여가 된 이성계의 손을 잡고 격려합니다. 전쟁터에서 쌓은 의리를 잊지 않고 이성계의 본성을 믿는다는 뜻이지만 이제서야 정치에 발담근 이성계의 앞날을 잘 알기 때문에 그리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정도전의 '대의'를 잠깐이나마 입에 담은 이성계는 노장 최영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죠.


 

 

 

 

정도전도 몰랐던 거골장 이성계의 테스트

 

드라큘라의 모델이 된 루마니아의 블라드테페스가 광기에 휩싸여 수많은 사람을 죽인 이유 중 하나는 잔인한 전쟁으로 추정됩니다. 전쟁영웅이었던 그가 전쟁을 겪으며 미쳐버렸단 이야기인데 사서를 읽어보면 역사 속 무장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처럼 권총이나 폭탄으로 간단하게 사람을 살상하는 시대도 아니고 날이 무딘 칼로 일격에 사람을 죽이다니 힘이 얼마나 대단했으며 그 정도 경지까지 수련하려면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사도세자가 단칼에 궁인을 베었다는 글을 읽고 떠오른 것도 조선의 왕자치고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무신과 문신의 대립은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소위 '미사일 버튼 신드룸'이라고 왜구를 격퇴하라며 무장을 파견하는 문신들이야 전쟁터에서 직접 살생을 하는 무장들의 고통을 정확히 알 수 없겠죠. 전쟁을 눈으로 보는 것과 왜적을 직접 처단하는 입장은 매우 달랐을 것입니다. 무신들의 입장에선 백성을 위해 혹은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필연적인 살생이고 때로는 이지란(선동혁)과 함께 왜장 아지발도를 죽일 때처럼 고려 백성들의 원한을 칼끝에 모두 싣기도 하지만 피를 즐기지 않기 위해 늘 고민했을 것입니다. 전쟁의 잔인함을 개국으로 연결시킨 이성계도 그러고 보면 대단한 인물입니다.

무장이 되겠다는 이방원에게 전쟁은 사람새끼가 할 짓이 아니라며 화를 내는 이성계. 그는 피를 원치 않는다.

 

자신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었던 양지(강예솔)의 무덤 앞에 가죽을 덮어주던 이성계. 스스로를 짐승의 살과 뼈르를 바르는 거골장(去骨匠)이라고 표현하는 이 남자는 무장이 되겠다는 아들 이방원(안재모)에게 '사람 때려잡는 거골장 따위가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계승까지 한다고 날뛰냐'고 합니다. '네가 전쟁을 아니? 반나절만 칼질을 해도 사람피로 목욕을 한다 잘린 모가지에 팔다리에 펄떡거리는 몸뚱아리가 산더미처럼 쌓이는데가 전쟁터야 거기에는 사람은 없지 모두가 뒤지기 싫어서 미친 발광을 하는 짐승들 뿐'이라는 이성계. '전쟁은 사람새끼가 할 짓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정도전'의 캐릭터 이성계가 대사로 표현한 전쟁은 적잖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전쟁은 내 대에서 끝내겠다는 이성계의 다짐 속에는 이성계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습니다. 거골장이란 단어는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는 자괴감을 담은 표현인 동시에 자기 비하입니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아들놈이 전쟁의 무서움을 모르고 대의를 운운하니 기가 막혀 분노

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건국의 운명이 있음을 알지만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사람의 피를 봐야하는지 알기에 주저하는데 겁도 없이 새파란 아들놈이 함부로 대의를 입에 담습니다.

정도전 드디어 이성계의 마음을 얻다. 거골장 이성계가 원하던 '정통성'을 대답한 정도전.

정도전이 이성계에 대해 잘 몰랐던 것도 그 부분이죠. 군사를 움직일 수 있는 힘과 목표를 향해 기다릴 줄 아는 침착함까지 갖춘 영웅 이성계는 충분히 나라를 세울 능력을 갖춘 자이지만 쉽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대업을 주저하는 이유'를 묻는 정도전에게 이성계는 '나는 피는 지겹다'고 대구합니다. 이방원이 말하는 '대의'와 정도전의 '대의'가 어떻게 다른지 묻는 말이기도 합니다. 정도전은 이성계가 원한 정답을 말하죠. '덕을 앞세워 백성 마음 위에 세운 나라는 천년을 간다'며 정통성을 거론 합니다. 그 정통성이 '백성에 마음에서 우러난다'고 합니다.

이성계는 등장 초기부터 나라를 세울 꿈을 꾼 것으로 묘사됩니다. 힘을 최고로 여기는 이방원과 충심을 주장하는 정몽주와 백성의 마음이 곧 정통성이라는 정도전의 대답에서 이성계는 가장 적절한 해몽을 얻은 듯합니다. 어차피 새로운 나라를 위해 살생을 해야할 팔자라면 그 이유가 정당해야 합니다. 입만 살아있는 문신들은 살생의 이유로 그럴듯한 명분을 대지만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정통성' 만큼 흡족한 대답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도전도 이성계의 시험을 통과한 것이죠. 저 역시 이성계라는 캐릭터가 같잖은 대의를 운운하는 겉멋든 장군이었다면 이렇게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역사를 이처럼 흥미롭게 만드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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