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처음 이 드라마가 광고를 시작했을 때 '조선 시대 연애사극'이라고 하길래 JTBC에서 무슨 남여상열지사 드라마라도 만드는 줄 알았다. 하긴 첫회부터 허윤서(이이경)와 단지(전소민)의 열애 장면이 등장하고 국인엽(정유미), 윤옥(이시아), 은기(김동욱)의 삼각관계가 엮였으니 완전히 틀린 이야긴 아니다. 이 드라마의 핵심 이야기는 신분이 몰락한 국인엽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사랑이야기인 것은 맞으니 말이다. 그런데 첫회부터 이방원(안내상)이 등장하고 이성계(이도경)가 등장하는게 영 심상치 않다. 사랑 이야기 이면에 숨겨져 있는 정치판은 혼돈 그 자체였다. 아직 조선의 문화와 체계가 자리잡지 않은 개국 초기 신분낮은 사람들은 모르는 정치판세에 따라 하루 아침에 누군가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시대였다. 갑질하는 인간들이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 아랫것들이 죽어나간다.


며칠 굶다가 받아들인 돼지죽에 살아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국인엽. 하루아침에 하녀신분이 된 그녀의 삶.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과 이성계의 사이가 틀어진 일은 유명한 일이다. 이성계는 형제들을 죽인 이방원을 용서하지 못했고 훌쩍 북방으로 떠나버럈다. 역사에는 함흥차사의 일을 적으며 이성계가 이방원과 대립했다고 하지만 혹자는 이성계가 북쪽에서 세력을 모아 난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 추측한다. 원래부터 이성계는 개성 사람이 아닌 북쪽 출신이었고 그쪽에 지지 세력이 많았으니까. '하녀들'의 국유(전유민)는 이성계의 편이었던 사람이고 허응참(박철민)은 이방원에 조력하던 사람이다. 그 가운데 김치권(김갑수)은 원래 고려 개성에서 떵떵거리고 살던 인물로 지금은 허응참의 곁에 붙어 있다.


조선 초기는 조선 후기에 비해 여성들이 비교적 자유롭던 시기이다. 허응참의 처 윤씨(전미선)가 지금까지 허응참을 내조해 허응참에게 종종 반말로 화를 내는 여성으로 등장하는데 고려 시대처럼 여성의 발언권도 적잖이 인정됐고 이미 국인엽과 한번 혼례를 치르다 말았던 은기에게 요구하는 것처럼 남자들의 처가살이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사회가 변화할 때는 늘 그렇듯이 노비들도 조선 후반기에 비하면 숫자가 적은 편이었고 하고 대우도 악랄한 편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신분제 사회인 것은 고려 시대와 마찬가지니 꿇으면 꿇으라는 처지는 똑같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정치적 배경이 이 연애사극에서는 꽤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튼 여주인공 국인엽은 점잖고 교양있고 똑바른 생각을 가졌고, 좋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제법 갑질하던 양반네 아가씨였다. 함흥차사로 떠난 아버지 생사를 알겠다며 허응참의 집으로 뛰어들어 허응참과 김치권에게 읍소하고 윤옥에게 은기와 자신이 어릴 때부터 정혼한 사이란 걸 알려 은기네 집에 매파를 보낸 윤옥과 윤씨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아버지가 살아돌아올 수 없다는 험한 소리를 듣고 그 화풀이를 단지에게 한다. 단지는 단지대로 윤옥의 몸종이자 허윤서의 내연녀로 윤옥이 내심 깔보는 인엽을 우습게 알았기에 인엽의 갖신을 신어봤을 것이다. 하녀가 짚신 아닌 꽃무늬 갖신을 언제 신어보겠는가.


안 그래도 국인엽은 허응참네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으려 가마를 빌리고 최고로 좋은 비단을 마련하는 등 치장에 공을 들였다. 그러나 윤씨 부인에게 험한 말을 듣고 아버지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하던 국인엽이 단지에게 화를 내고 가마를 안채까지 들여오라며 소란을 피우고 비단을 깔게 하고 그 비단을 밟으며 가마까지 걸어가는 유세를 해서 단지는 찬모(채국희)의 지시로 엄마인 침모(이연경)에게 두들겨 맞는다. 국인엽은 몰랐다. 자신에게 중요한 체면과 허세와 화풀이 하나에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왔다갔다 한다는 사실을. 인엽을 친자매처럼 챙겨주고 돌봐주는 사월이(이초희)도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은기와의 혼례식날 벌어진 사태로 하루아침에 노비가 된다.


갑질하는 윗사람들끼리도 권력에 따라 서열이 있지만 아랫것들 사이에도 신분이나 위계질서가 있어 허응참 집안 노비들 중에서는 찬모와 무명(오지호)이 제일 서열이 높다. 찬모들이 행사를 주관할 때 모든 일을 돌보는 전문가들인 것처럼 주인 마님이나 아가씨의 몸종들은 그중에서도 또 따로 관리가 되어 주인아가씨들 보다 더 예의가 바르고 경우에 밝은 경우가 많다. 양반의 핏줄은 타고나는 것이라 믿었고 천것의 핏줄은 따로 있다고 생각했던 국인엽이 하루아침에 하녀가 되고 배고픔에 돼지죽을 들이키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천것이나 양반이나 똑같이 비릿하고 울컥한 돼지죽 냄새 - 그 삶의 냄새가 인엽을 깨운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야한다고 말이다.


어쨌든 살아야한다고 마음먹은 국인엽의 하녀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만월당이라는 고려 재건 세력의 비밀을 감추고 있는 무명이나 김치권이 앞으로 국인엽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아버지의 죽음을 둘러싼 이성계의 노망이 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스터리지만 한때 자신의 하인이었던 풍이(임현성) 마저 국인엽을 노리고 있는 마당에 하루하루가 고역이다. 아니 차라리 처음부터 불쌍한 처지였으면 동정이라도 받지 한때 갑질하던 윗사람이라 더욱 미움을 받고 있는 처지다. 말로만 자신을 구해준다고 하지 힘없는 양반가의 아들로 아버지에게 휘둘리는 은기가 오히려 인엽의 운명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국인엽이 유세떨때는 몰랐던 당하는 사람들의 세계.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정치싸움에는 전혀 무심하던 인엽과는 달리 돌아가는 판세를 정확하게 읽고 있는 윤옥이라는 인물이다. 윤옥은 은기가 인엽에게 전해달라고 건내준 편지를 어디에 건내줘야 은기를 잡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김치권의 아내 한씨부인(진희경)에게 건내준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는 예의바르고 상냥하지만 사나울 때는 한없이 사납고 하녀들을 다룰 때도 언제는 거칠게 언제는 부드럽게 강약 조절이 자유롭다. 한마디로 갑질에 능숙한 전형적인 권력형 갑질녀다. 일부러 인엽을 힘들게 하는 등 인엽의 운명을 갖고 놀기 딱 좋은 유형이고 비밀을 감추기도 딱 알맞은 타입인 것이다.


갑질이라는 것은 자신의 권력을 잘 알고 자신의 권력을 누리기 위한 행동을 말한다. 국인엽은 가마를 들어달라 비단을 깔아달라는 것이 무리한 요구인 것을 알았지만 들어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윤옥이나 윤서는 자신들의 선택으로 하인이나 하녀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선택이고 권력이기 때문에 누린다. 국인엽은 하루아침에 갑질을 요구하던 입장에서 요구받는 입장이 된다. 국인엽은 몰랐던 당하는 사람들의 세계다. 때로는 주인이 아닌 다른 하인들이나 다른 하녀들의 텃세까지 받아들여야하는 그녀에게 살고 싶어 받아들인 돼지죽의 비릿한 냄새는 현실로 다가온 것인다. 살자면 다 받아들여야하는 하녀의 삶 사랑까지 허락받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인엽의 하녀 생활은 어떻게든 끝날 거 같은데.


그런데 하루아침에 하녀가 되어 하녀 생활을 체험하게 된 국인엽의 미래가 이상하게 불운하게 보이지 만은 않는다. 역사상으로도 서자가 유난히 많았던 이방원이 허응참을 통해 몰래 찾고 있다는 천첩의 서자가 아무래도 국인엽의 주변인물이 아닐까 싶은데 가희아(이채영)이 그 정보를 알고 있을지 무명이 정보를 알고 있을지 아니면 무명이 그 왕자일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비단옷 대신 무명옷을 입던 국인엽의 하녀 생활은 영원히 하녀 생활이 아닌 젊은 시절의 하녀 체험기로 끝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아닐지. 뭐 그렇다면 조선 시대 연애사극라도 신데렐라가 되는 셈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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