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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 연기를 잘 한다는 건 예전부터 인정했던 일이다. 시청률이 폭발적인 드라마는 별로 없었을지 몰라도 그가 출연한 드라마는 대부분 연기로 화면을 장악하는 무엇이 있었다. '킬미힐미' 역시 마찬가지로 솔직히 지성이 연기하는 다중인격이 아니면 약간은 복잡하고 약간은 이해하기 힘든 전체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얽히고 섥힌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개성이 확연히 다른 다중인격의 캐릭터를 그의 연기력이 아니면 어떻게 소화할 수 있었을까. 일부 드라마 팬들의 의견대로 지성이야 말로 시청률이나 그 어떤 조건을 다 떠나서 연기 대상감이 아닌가 싶다. 다음주에는 마지막회가 방송될 '킬미 힐미' 20여년 동안 헤어져 있던 두 남녀주인공이 드디어 그 동안의 기억을 회복하고 분열되어 있던 차도현(지성)의 자아도 통합의 열쇠를 찾았다.


각각의 다중인격과 상황을 각각 분리해서 연기하는 배우 지성. 멋진 활약을 보여준 그의 연기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한때는 부부였던 차도현의 아버지와 오리진(황정음) 엄마의 관계는 두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승진가의 재산싸움도 문제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의 원인이었다는 것은 잠시나마 두 사람을 떨어져 있게 만든다. 그때 갑작스레 나타난 페리박과 요섭과 요나의 인격은 마침내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처럼 두 사람이 다정하게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그 시간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던 능청스런 페리박과 지적인 요섭과 엽기발랄한 요나를 한꺼번의 보여준 팬서비스같은 시간이었다. 이제 차도현의 마지막 싸움이 끝나면 그들을 더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차도현의 일곱개의 인격 중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인격은 미스터리의 인격 X다. 아마도 어릴 때 차도현이 버린 이름 '준영'이 그 정체가 아닐까 짐작될 뿐이다. 오리진의 본명 차도현이란 이름으로 살기를 결정한 도현이 자신의 어린 시절인 준영을 봉인하지 않았을까 생각되고 아버지 차준표(안내상)의 회복과 더불어 각성하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그건 다음 회가 되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말하자면 배우 지성의 변신은 아직 한번 더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여섯 개의 인격을 모두 통합한 인격일까 아니면 또다른 모습의 인격일까? 궁금한 것은 각각의 인격별로 호불호가 갈렸던 것처럼 새로 나타날 그 인격에도 새로운 팬층이 생길까 하는 점이다.











지성이 보여준 인격들 중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누가 뭐래도 신세기다. 다중인격들 중 가장 먼저 눈도장을 찍기도 했고 차도현의 나머지 인격들은 대부분 차도현이 살기 위해 만든 인격들이지만 신세기는 오리진과의 관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던 역할이다. 신세기와 차도현의 변신은 극과 극이었다. 그저께 방송분에서는 차도현의 아역을 맡은 이도현까지 차도현과 신세기의 변신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궁금해하던 신세기의 이름이 'New Century'에서 나왔다는 건 약간 허탈했지만 그 성냥이야 말로 비극의 시작이니 웃기다고만은 할 수가 없었다. 신세기의 캐릭터, 대사 어느 한 부분도 오리진(황정음)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니까.


신세기. 첫 등장했을 땐 약간은 느끼했고 마치 홍콩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느끼한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오리진에게 퍼부을 땐 오글거린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런데 피흘리면서도 박력있게 오리진을 몰아부치고 오리진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는 그 모습이 다른 사람 말은 안 듣고 무시하면서도 오리진에게만은 복종하는 그 태도가 묘하게 인상적이었다. 최근에는 차도현이 과거를 극복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신세기의 인격은 완전히 차도현과 융합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최근의 차도현은 묘하게 신세기와 차도현을 결합한 모습이었다. 배우 지성은 그 변화를 영리하게도 잘 잡아냈다.


18회에서 마치 팬서비스처럼 등장했던 여러 다중인격 캐릭터


처음부터 차도현(지성)의 다중인격에는 많은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었다. 왜 기억을 잃었고 어쩌다 다중인격이 되었는지 할머니 서태임(김영애)가 말해주지 않는 차준표(안내상)와 화재사건의 비밀은 무엇인지 교통사고로 죽어버린 오리진의 엄마 민서연(명세빈)과 승진그룹 사이에 숨겨진 사연까지 풀어내야할 미스터리가 너무 많았다. 그 때문에 첫회가 산만하다는 평까지 받았을 정도니까. 그런데 하나씩 드러나는 차도현과 오리진의 비밀과 반전은 어떻게 보면 그 시작이 단순하지만 나중에는 괴물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반전이 많다. 누군가를 감싸고 위하는 마음으로 시작된 차도현의 방화가 차준표의 의식불명으로 이어지고 서태임이 손자와 아들을 위해 덮어버린 비밀이 오리진의 아동학대와 존재를 덮어버리는 결과를 낳는 것처럼 꼬이고 꼬인 관계가 지금의 차도현과 오리진의 고통을 낳았다.


솔직히 차도현의 인격 중 하나인 술마시고 춤추고 폭탄 만들고 배타기 좋아하는 40대 남자 페리박이 아버지 때문에 만들어진 인격이란 건 뭉클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원망하긴 했어도 기억을 잃기 전까지 차도현은 '준영'이라 불리던 그 시절의 아버지를 참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준표가 '차도현'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오리진을 그토록 때리며 증오한 것은 아내 민서연이 아버지 차건표(김용건)에게 자신 보다 더 신뢰받고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입적시켰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진짜 자신의 아들이 자리를 빼앗겼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삐뚤어진 컴플렉스와 증오를 오리진에게 드러낸 것이다. 죽고 싶어 만들었던 요섭과 살고 싶어 만들어낸 요나까지 어느 하나 짠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지성이 보여준 전무후무한 다중인격 캐릭터. 이 정도면 전설이 될만하다. 연기력으로는 최고가 아닐까?


18회에서 보여준 차도현의 여러 캐릭터를 보며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싶어 애가 타면서도 다른 다중인격의 출몰에 정신을 잃고 마는 페리박이 너무 웃기고 오리온(박서준)에게 닥치고 덤비는 요나 덕분에 배꼽을 잡고 난데없이 순수하고 차분한 요섭이가 괜찮다 싶고 그 와중에 차도현에게 묻혀 죽기 싫다며 '젠장'을 외치는 신세기가 떠오르는 걸 보니 배우 지성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이다. 드라마 '킬미 힐미'가 끝나도 아마 꽤 오랫동안 보고 싶지 않을까 생각된다. 요즘 연기대상이 방송사 공로상이고 시청률상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진짜 연기를 평가하는 상이라면 이렇게 전설이 될만한 연기자에게 대상을 줘야 옳은 것 아닐까. 드라마에서 이렇게 여러 캐릭터를 능숙하게 보여준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아직 연말은 멀었지만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감히 2015년 3월달부터 배우 지성에게 연기대상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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