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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아이를 찾습니다'

Shain 2021. 4. 1.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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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워보신 분은 다 알 것입니다. 아이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자랍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단다는 표현이 딱 맞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조카가 잠시 안 본 사이 재잘재잘 떠드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라는 존재는 정말 쉴 새 없이 자라죠. 세 살 밖에 안되던 아이가 갑자기 열 살이 되어 나타난다면 당신은 그 '갭'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자기 아이를 평생 동안 찾아다니는 사람입니다.

 

( 지금부터의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아이를 찾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유괴되었고 부부는 아이를 찾아 10년 넘게 헤매다닙니다. 그 사이 아이 엄마 강미라(장소연)는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아빠 윤석(박혁권)은 안정된 직장은커녕 아내 때문에 집도 마음대로 비우기 힘든 처지가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힘들어서 아이 찾기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기적처럼 그들에게 아이가 돌아옵니다. 이제는 고생이 끝났다며 기뻐하고 안도하는 마음도 잠시 윤석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고통을 겪게 됩니다.

 

사람들은 가끔 내 아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함께한 내 아이라도 내 아이가 맞나 싶은 순간이 생깁니다. 아이와 아무리 친해도 아이와 내가 동일한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일종의 '갭'이겠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갭'을 아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면서 극복합니다. 가족은 같이 지내온 시간 만큼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믿고 의지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윤석과 성민이(오자훈) 사이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모르는 여자에게 납치되어 자라온 10년간 아이는 완전히 변해버렸습니다. 아빠가 알고 있는 아이는 키도 작고 손도 작고 아빠와 블루베리 요거트를 좋아하던 3살짜리 귀여운 꼬맹이였는데 경찰이 데려온 아들은 대구 사투리를 쓰고 요거트 종류는 배탈이 나서 먹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빠는 자신을 찾느냐 아파트도 포기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는데 아이는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유괴한 여자와 살던 시절을 더 그리워합니다.

 

무엇보다 윤석을 답답하게 하는 건 그런 엇나간 아이를 중간에서 거둬주지 못하는 엄마 미라의 존재죠. 강미라는 10년 만에 돌아온 아이를 인정하지 못합니다. 저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라며 부정하고 아이의 옷을 모두 잘게 잘라놓기도 합니다. 미라는 이미 돌아올 아이가 예전과는 다를 거라는 걸 알고 정신을 놓아버린 것도 같습니다. 윤석에게 '성민이가 어떻게 와 올 수가 없으니까 지금까지 안온거야 다 이유가 있어'라고 대답하는 미라. 아이를 찾았지만 예전의 그 아이는 이미 그들 곁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에 원래 존재하던 그 '갭'이 이제는 같이 시간을 보내고 서로 함께 해도 메꿔질 수 없을 만큼 벌어졌는데 무책임하게 아이만 남겨놓고 사라진 그 여자는 부모만 찾아주면 성민이가 윤석 부부의 아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에 대한 원망을 할 새도 없이 윤석은 아이와 가까워지려 노력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무작정 아이를 찾으면 된다고 맹목적으로 생각했던 그때보다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들은 모두 머리속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 세 사람 중에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이 원망할 수 있는 가해자는 이미 자살로 세상을 떠났고 세 사람 사이의 거리는 영원히 좁혀지지 않습니다. 부부가 평생을 바쳐 찾던 아이는 그렇게 옆에 있지만 없는 아이가 됩니다. 하얀 옷에 묻은 얼룩처럼 그들 사이의 갈등은 깊게 가라앉은 앙금이 돼버렸고 아빠 윤석도 오랫동안 쌓인 상처에 지쳐버립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조카 생각이 났습니다. 가끔 다 커버린 어른같은 조카가 아니라 네 살 시절에 방긋방긋 잘 웃던 조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얼마나 빨리 자라는지 내 기억 속의 조카는 아직도 귀여운 네 살인데 현실은 이미 다 커서 게임머니가 필요하다고 징징대지요. 세상엔 가끔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어느 가족에게 갑자기 닥친 인생의 비극을 줄곧 보여줬지만 제 눈에는 어린 성민이와 알아볼 수 없게 커버린 성민의 '갭'이 도드라지게 눈에 띄더군요. 그 조그만 성민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습니다.

 

2부작으로 방송된 드라마의 결말이 별다를 것은 없고 결국 마지막도 우리가 아는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어떤 가족이든 조금씩 갈등을 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았을텐데 싶다가도 세 사람 사이의 '갭'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더 아팠던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엮는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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