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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 서혜림과 강태산 함께 가야하나

Shain 2010. 12. 2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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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림(고현정)의 대통령 당선 과정은 실존 인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많이 유사했습니다. 탄핵에 이르는 과정까지도 상황만 다를 뿐 많이 비슷했다는 평을 들었죠. '최초의 여자 대통령 탄생 프로젝트'라며 출발한 'SBS 대물'은 주인공이 여성이며 미망인이란 상황은 지금에 와서는 아무 의미가 없는 듯합니다. 여성으로 정계에 입문해 겪는 어려움이나 곤란함이 있다기 보단 소수파 또는 대세를 따르지 않는 인물이라 겪는 어려움이 더 많습니다.

당선과정이 실존인물과 너무 유사했기에 탄핵 정국 이후 촛불집회까지 벌어지는 것 아닐까 생각했지만 드라마에서 묘사하긴 한계가 있었던지 혹은 지나치게 유사하단 평을 듣고 싶지 않았던지 '반대 시위' 정도에서 그치더군요. 드라마에서 묘사했던 현실대로 탄핵을 주도했던 거대 야당은 분열되거나 쪼개지진 않았습니다. 물론 강태산(차인표)처럼 책임지고 물러난 인물은 있었죠.


몇몇 장면이 현실을 연상시키긴 하지만, '대물'은 현실 기반의 정치 드라마라기 보단 판타지에 가까운 정치 컨텐츠라 봅니다. 판타지이다 보니 가장 현실과 괴리가 있는 부분은 정치적 이상이 수월하게 구현된다는 점입니다. 극중 강태산의 상식은 더러운 토대 없이 깨끗하게 정치가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혜림은 그렇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두 사람의 대립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같은 주제를 놓고 묘사하는 드라마 'KBS 프레지던트'도 그 부분을 늘 고민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지금껏 선악구도의 대립을 보여왔던 '대물'은 시원시원하지 않은 복잡한 해답을 제시하는군요.



정치로 인해 망하는 사람들

정치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 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실제로도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다 집안의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폐인이 된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혹은 국회의원 은퇴 후 불행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분들도 있다고 하죠. 극중 강태산의 아버지도 국회의원이 되려다 조배호(박근형)으로 인해 실패하고 자살합니다. 강태산이 구걸까지 하며 이루려던 정치적 야심의 기반은 바로 아버지의 죽음입니다.

정치에 입문하는 그들의 미망을 모두 명예욕이나 권력욕이라 평가하기는 힘듭니다. 이제 전문정치인을 직업인으로 분류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과 정치적 성장 역시 '일'의 일부일 뿐입니다. 정당인, 보좌관을 비롯한 정치권의 주변인으로 맴돌다 국회의원이 되어도 생계 조차 유지하기 힘든 정치인이 될 때도 있습니다. 강태산처럼 재벌가의 사위가 되어 생계가 안정되는 케이스는 생각 보다 흔치 않습니다.


더군다나 재벌가의 일원이 된다는 건 눈앞에 항상 넘어갈 수 있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순식간에 끊어버릴 수도 있는 '가족'이 있고 정치 생명을 무너뜨릴 수 있는 부정한 자금에 손을 댈 수도 있으며 무엇 보다 특혜를 비롯한 각종 이권에 연계된 '검은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탐내지 않을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정치로 패가망신'은 재산 탕신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물'엔 정치권에서 타락한 많은 인물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감옥살이까지 하며 인심을 잃은 김태봉(김문수)이나 김철규(신승환), 언론인에서 눈치보는 정치인으로 변한 손본식(안석환),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으며 명을 유지하는 오재봉(김일우), 비자금을 깔끔하게 처리하다 미국으로 쫓겨난 민여사(송옥숙) 등은 돈과 권력에 울고 웃다 망가집니다.



강태산, 어디까지 감싸야 하나

현실 정치에서도 이 '타락한 정치인'들을 감싸안는 문제들은 심각한 화두입니다. 대부분은 법과 합리로 설득되지도 않고 국회의원 고유의 면책 특권이 있어 처벌도 쉽지 않습니다. 극중 산호그룹 회장 김명환(최일화)처럼 재벌이라도 개입되면 사건 자체가 오리무중이 되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특정 정당이나 계파를 이뤄 목적을 위해 똘똘 뭉쳤을 경우엔 그들의 '권리'를 비난할 명분도 없습니다.

서혜림에 대항하는 절대악처럼 묘사되는 강태산은 '개혁정치'와 '부강한 나라'를 꿈꾸던, 강력한 리더십을 갖춘 능력있는 정치인의 자질을 갖춘 인물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조배호처럼 비자금을 비롯한 부정한 일에 손을 완전히 끊지 못 했고 정적 제거를 위해 뒷공작을 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윤리적인 면모도 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정치권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강태산 정도면 이미지 깨끗하고 그 정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반문할 지 모릅니다. 국정 운영에 차질을 준 다소 강경하고 무리한 탄핵 주장까지 감싸줄 유권자도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극중에서 설정된 서혜림의 캐릭터에게 탄핵까지 주도한 강태산을 받아들이느냐 하는 부분은 정치인으로서의 자존심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극중 강태산은 하도야(권상우)의 끊임없는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노련하고 유능한 정치인답게 하도야를 훈계하며 한수 앞선 행보를 보이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강태산은 이미 서혜림을 정적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함께 가기 위해선 서혜림이 한수 양보하는 수 밖에 없지만 민우당내 강태산의 입지가 추락한 이후엔 오히려 쉽게 두 사람의 협력이 이루어집니다. 서혜림이 그의 능력을 높이사 '총리직'까지 거론하며 손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상생과 화합, 정말 이게 맞을까

하도야의 아버지 하도봉(임현식)의 죽음을 강태산의 음모로 처리할 수도 있었습니다. 강태산은 진정한 악으로 거듭날 수도 있었지만 드라마가 표현하고자 하는 강태산은 지향하는 뜻이 다르고 약간의 범법을 저지르는 '정치인이 빠지기 쉬운 함정'에 빠진 젊은 정치인을 묘사하려 하는 듯합니다. 흔히 정치인의 '검은 돈'은 어쩔 수 없다 또는 목적을 위해 '타협'해야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묵인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강태산의 말처럼 서혜림 혼자 올곧아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현실정치의 '상생과 화합'이라는 말처럼 못난 그들을 이끌고 나라를 운영하는게 대통령의 입장이니 탈당도 불사해야합니다. 국회의 반수 이상이 부정한 국회의원들이라면 그들을 받아들여 어떻게든 나라를 끌고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정신적인 기반을 꺾을 것이냐 반쯤 접고 들어갈 것이냐 하는 부분은 중요한 선택입니다.


서혜림이 행동하는 모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혜림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 바 있지만 실제 정치권은 이 '상생과 화합'에 그리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소야대의 정국을 들어 대통령의 무능을 꼬리잡기에 바빴다고 할 수 있죠. 강태산 정도면 '깨끗하다'고 할 정도로 부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정치권에서 타락하고 뼈가 굳은 사람들, 굳이 이런 사람들을 '이상적으로' 다시 끌고 가야하는가의 문제는 해법이 없는, 정답이 없는 그런 문제인가 봅니다.

정치권의 신생 서혜림, 정치권의 기득권에서 개혁을 바라는 강태산, 새내기 검사 하도야, 비자금 운영의 대모 장세진(이수경), 그 네 사람의 움직임이 드라마 속 국가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의 대립구도가 끝나는대로 강태산은 죄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즐거운 나의 집과 동시에 마지막회를 맞게 되는 정치 판타지의 결말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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