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아지카이는 누구인가

Shain 2010. 12. 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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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근초고왕엔 지난주부터 새로운 인물군이 출연했습니다. 12대 어라하 계왕을 중심으로 백제 한성왕궁의 권력투쟁이 펼쳐지는 한편 요서 지방엔 부여구(감우성) 왕자의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바로 몰락한 동부여 출신으로 부여 재건을 꿈꾸는 단범회 수장인 위비랑(정웅인)과 그의 수하들이 합류한 것이죠. 아직까진 부여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그들은 나라를 건국하기 보단 자금을 모으는 수적에 불과합니다.

부여구의 할아버지 흑강공 사훌(서인석)은 평소 부여유민들을 살갑게 대해 늘 거둬주었다고 합니다. 일시적으로 위비랑과 부여구가 뜻을 같이할 수 있었던 건 소금장원을 장악한 해건(이지훈)과 부여산(김태훈)이 부여유민을 노예로 팔아먹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부여구와 힘을 합쳐 유민을 구해내고 장원을 차지하자 위비랑의 해적 본능이 불끈 일어서고 있습니다. 부여구와 위비랑 모두 '나라'를 차지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으니 장원은 큰 자금줄이 되어줄 것이 분명합니다.


이 두 사람의 대치 속에 눈에 띄는 인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책사 '아지카이(이인)'입니다. 먹물 깨나 먹은 놈이라 자신들의 꼬임에 넘어갈 것이라며 해건은 아지카이를 통해 부여구를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지카이는 수적질을 주로 하는 단범회와 어울리지 않게 직책이 무려 '책사' 씩이나 됩니다. 직접 실전에서 부하들을 통솔하는 두고(정흥채) 보다 때로 높은 자리에서 부회주 위홍란(이세은) 다음 위치인 것 같습니다.

아지카이는 아직까지 어떤 인연으로 단범회와 만난 것인지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KBS 근초고왕'에서 그가 맡을 역은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등장하는 '아직기(阿直岐)'라고 합니다. 일본 문화, 역사에서 절대 빼먹을 수 없는 백제의 귀화인, 양잠, 문자와 문화를 전파해준 바로 그 사람이죠. 사서에 아직기가 땋은 머리를 동그랗게 하고 왔다는 기록(みぞら, 미조라)이 있다는데 그의 특이한 머리 모양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근초고왕과 아직기(阿直岐), 아지카이

일본의 사서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아직기(阿直岐)로 기록되어 있고 '고사기(古事記)'에는 아지길사(阿知吉師)로 적혀 있는 아직기는 드라마 내에서 아지카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아직기의 일본 발음은 '아치키(あちき)' 또는 '아치키시(あちきし)'로 아지카이란 이름과는 발음의 관련성이 보이진 않더군요. 아직기란 인물이 어떻게 아지카이가 된 것인진 의문이지만 흥미로운 설정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대부분 한자로 표현된 백제 시대의 이름, 예를 들어 욱리하, 어라하 등은 백제 고유어를 이두식으로 표기한 것으로 원발음과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시대의 발음을 유추할 수 없는 단어도 꽤 되지요. 아지카이란 단어가 어떤 식으로 나온 이름인지 참 궁금한 부분입니다.

이 인물은 근초고왕의 명으로 백제에 건너가 사신으로 활약하고 말 두 필을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경전을 잘 읽어 태자의 스승으로 삼고 후에 박사 왕인까지 불러 왕인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 등 많은 문물을 전파합니다. 후에 일본에 정착하여 아직기와 왕인의 후손이 아직까지 일본에 살고 있고 아직기를 모신 신사, 왕인의 무덤 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오사카 하비키노시 왕인박사 사당

아직기를 모신 오미아시신사 사당


우리 나라 사서엔 적히지 않은 인물이지만 백제와 일본 간의 교류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일본서기의 위작 여부가 항상 도마에 오르고 있는 것처럼 '아직기'란 인물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습니다. 궁월군이라며 백제의 왕자라 하기도 하고 중국에서 귀화한 왕자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어 아직기를 지칭하는 이름도 여럿이라 합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고대 백제어'가 고대 일본어, 문자의 시초란 말은 헛된 주장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일본의 고대 문집인 만엽집(万葉集)에 사용된 만요가나(万葉仮名), 즉 고대 일본문자의 시초를 만든 사람들을 아직기와 왕인 등 백제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자의 뜻과 상관없이 음을 빌려 표기하는 방식으로 신라와 백제에서 사용하던 이두 표기와 비슷하죠(참고: 고대 일본어의 뿌리는 ''구다라어''였다).



근초고왕, 일본까지 뻗을까

극중 부채를 들고 점잖빼며 단범회 회주에게 훈수를 두는 아지카이의 옷은 아무래도 중국의 학자들이 많이 입던 옷 같습니다. 경전에 능하고 병법에 능하다고 했으니 그럴 법 합니다. 머리는 왜 그리 땋았나 생각해보니 몽골이나 북방민족들에게 땋은 머리가 유래했다는 기억이 얼핏 납니다. 북쪽에 가까운 부여 유민 출신이라니 뭐 그것도 그럴 법도 합니다. 드라마에서 구현한 머리는 '미조라'가 맞는걸까요.

탤렌트 이인이 맡은 이 아지카이는 '공자 맹자를 읽고 서책을 넘기는 손으로 무력을 쓰랴'라는 대사로 칼을 직접 들고 움직이진 않지만 수적일을 하는 단범회 일원답게 날렵한 몸놀림으로 전투에 뛰어들더군요. 책사라는 이유로 해건(이지훈) 일행을 직접 맞으러 나서는 중책(?)을 맡기도 합니다. 위비랑의 전략가에서 근초고왕의 '브레인'으로 활약할 인물이 되겠죠.


백제와 고구려 등 정세에 밝아 해건이 가져온 그림 만 보고도 '부여구'를 죽이려 한다는 걸 알아봅니다. 허울뿐이지만 고구려 안남장군 직책을 가진 해건에게 고구려를 원수로 생각하는 위비랑 앞에선 고구려 직책 따윈 입에 담지 말라 날카롭게 찔러 주기도 합니다. 단범회가 함부로 인명을 살상하지 않고 손무병법을 따르는 것도 이 책사의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빨간 도끼 위비랑과 귀염둥이 위홍란의 위세에 눌려 크게 부각되고 있진 않지만 제갈공명에 버금가는 지략가가 아닐까 합니다. 바다의 도둑 단범회를 크게 유지하게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이 책사겠지요. 칼을 잡지 않고도 무례하고 거친 수적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보통 능력이 아니란 뜻일 겁니다. 근초고왕에겐 단 두 명의 호위무사가 전부인데 '수적' 일을 하는 위비랑에겐 거의 완벽한 부하들이 있습니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아직기가 드라마에 등장했다는 건 근초고왕 등극 이후 일본 진출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이 됩니다. 삼국사기에는 근초고왕이 박사 고흥에게 서기(書記)를 편찬케했다는 주요 업적이 적혀 있어 드라마는 오프닝부터 그의 사서를 클로즈업합니다. 아직기 역시 그들의 일원으로 근초고왕의 업적 중 일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왜 이름이 아지카이일까요. 내키진 않지만 원작 소설이라도 봐야할까 봅니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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