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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지던트, 재벌딸이 정치를 망가뜨렸나?

Shain 2011. 2. 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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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대진운이 좋지 않았던 드라마, 'KBS 프레지던트'가 드디어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습니다. 예정 분량이 20부작이니 이번주에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짓게 됩니다. 최근 10%를 넘지 못하는 시청률로 고전하더니 일부 주조연급 출연진들의 출연료가 밀렸다고 하더군요. 메인급으로 등장하던 극중 고상렬(변희봉)씨는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져 행여 출연료 깎기 일환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극중 설정대로 빙판에 넘어져 정말 다리를 다치신 거라면 걱정이네요).

정치극과 사극은 특성상 '진보적' 컨텐츠는 되기 힘듭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SBS 대물'도 담긴 철학 자체는 진보적이라기 보다는 교과서적 원론에 가깝습니다. 현정권과 야권의 눈치를 보느냐 확실한 정치적 색채를 드러내지 못했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사극은 지나간 역사를 담고 있기에 정치극은 우리 나라 현실에 맞춰 중립적 내용을 담아야 하기에 보수적이다 싶을 정도의 '뒤떨어짐'은 감수하고 가야할 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 두루뭉술한 드라마의 가치관이 시청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아닌가 합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꿈꾸는 시대에 지나치게 영웅 중심으로 진행되는 사극은 일반 백성을 가르침이 필요한 엽전에 불과한 존재로 만들기도 하고 정치인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드라마는 현실정치는 원래 더러운 것이란 얄팍한 면죄부를 주기도 합니다.

정치극으로서 완성도가 높은 '프레지던트'는 매니아들에게 호평을 받은 만큼 우려스러운 부분도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가마구치 카이지의 원작 '이글'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일본계 주인공의 의지를 한국 상황에 맞춰놓다 보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한 권력을 가지겠다는 장일준은 '민주화 투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캐릭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치관과 다른 행동을 하는 인물이 탄생해버렸다는 뜻입니다.



아직 정치는 게임이 될 수 없다

드라마는 마치  토너먼트 방식으로 운영되는 스포츠 경기처럼 매 에피소드별로 주인공 장일준(최수종)이 이기거나 극복해야할 상대가 등장합니다. 감춰야할 사생활 일순위인 아들 유민기(제이)를 설득하여 자신의 곁에 두고, 새물결 미래당의 의원들을 규합하기 위해 노련한 정치인 고상렬(변희봉)을 설득하고, 대통령 경선 경쟁자인 당내 지지율 3위의 박을섭(이기열)의 추문을 터트리는 등 한가지씩 승부를 보고 이겨나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의 게임은 어쨌든 대부분 승리하여 이제는 새물결 미래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게 됐습니다. 그가 남겨둔 최후의 승부는 한국평화당 한대운(정동환)과의 승부 뿐입니다. 한대운은 말 뿐 아니라 실제 행동까지 청렴하고 올곧은 인물로 국내 1위의 지지를 자랑하는 멋진 정치인입니다. 총을 맞고 병상에 누운 장일준을 찾아와 비자금 문제는 공격치 않겠노라 먼저 제안하는가 하면 백찬기(김철규)가 꾸준히 제기하는 자작극 이야기를 무시하는 대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정치를 공작이라 생각하지 않고 정책과 능력으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라 믿는 한대운은 장일준이 지금까지 맞서온 어떤 정치인들 보다도 강적입니다. 종종 장일준은 새물결 미래당의 동료들을 썩어빠진 구태의연한 정치인들이라고 비난하곤 했지만 그가 물리쳤던 김경모(홍요섭)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통령 이수명(정한용)의 썩어빠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당당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장일준이 대통령의 협상을 받아들인 걸 알고 정치에 신물을 느끼며 은퇴한 신희주(김정난) 역시 융통성 없을 만큼 딱딱한 일처리 방식을 보일 지언정 부정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은 용서치 않겠다고 맘먹는 깨끗한 인물입니다. 장일준은 그런 김경모와 신희주를 내치고 이제는 훨씬 더 완벽한 한대운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장일준이야 말로 지금 결점투성이의 문제 정치인입니다.

재미있는 건 그동안 국민들이 정치인의 기본 자질로 생각해왔던 조건을 장일준이 아닌 상대방 후보들이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나라의 정치는 아직 승부 보다는 자질과 문화를 정착시키는게 더욱 중요하다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머리를 굴려 위기를 탈출하는 능력이나 바둑을 두듯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 보다 기본 자질을 갖춘 사람이 정치판을 채워야하는 시점에 정치를 '승부'로 접근하는 건 상당한 거부감이 듭니다.



주변 사람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과실

이 장일준이 선택한 방법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중 가장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진실은 아내 조소희(하희라)의 행동입니다. 굴지의 재벌 딸로 '철의 여인'이란 별명을 가진 이 여성은 정치학과 교수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종종 비이성적인 행동과 가치관으로 일준의 앞을 막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돈이나 권력이란 해결법을 사용함으로서 오히려 남편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입니다.

조소희의 재벌가는 '돈'으로 만사를 해결하는, 장사꾼의 태도를 가진 대표적 인물들입니다. 뒷돈을 써서 입막음을 하고 정치적 타협도 불사하는 이 인물들은 장일준이 '박쥐'라는 별명을 갖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정의를 부르짖던 민주화 투사라는 경력을 가진 인물이 재벌 돈에 빌붙는 이미지가 되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그의 처가 식구들은 그 이미지에 상응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결혼전 태어난 아이인 유민기는 어머니 유정혜(김예령)을 의문사로 잃어야 했습니다. 국과수를 비롯한 경찰들이 사고사라고 단정지었지만 장일준의 앞길을 방해하는 홍인희 기자 마저 사망한 현재 유정혜의 죽음을 살인이 아니라 단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분명 장일준의 처가, 조소희의 짓이거나 장인인 조태호(신충식)의 짓이 분명합니다. 장인은 일준의 권력을 위해 한대운의 비자금 사건까지 조작한 무서운 인물입니다.


조소희는 남편과 멀어진 책임을 유민기에게 돌리고 유민기를 향해 총을 들이댑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장일준의 포부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한 아내와 돈으로 망가져버릴 지도 모릅니다. 신념 마저 희생하며 헌신한 오재희(임지은), 윤성구(이두일), 이치수(강신일)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장일준은 이 모든 책임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없습니다.

화국의 정치를 꿈꾼다고 말했던 장일준은 자신이 자본의 덫이나 술수의 함정에서 줄타기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 믿었고 또 그래야만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양쪽에 모두 발을 걸친다는 것은 정말 '박쥐'가 되는 것입니다. 장일준은 그저 한대운처럼 한가지 신념으로 밀고 나간 정치인들에게 술수로 뒷통수를 친 것 뿐입니다. 이제 와서는 오히려 가치관이 뚜렷했던 다른 정치인들에게 면목없이 자신의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파국으로 치닫는 장일준과 조소희의 관계, 세 사람 중 하나가 총상을 입거나 죽는다면 그들은 정치적 야망 때문에 희생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셈이 됩니다. 드라마 '프레지던트'는 'SBS 대물'과는 다른 또다른 정치 드라마, 정치 오락물의 과제를 남긴 셈이 됐습니다. 한 개인의 승부사적인 이야기로서는 최고였지만 정치물로서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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