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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프린세스, 이제부터 나만의 공주님

Shain 2011. 2. 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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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틱 코미디의 진정한 재미는 보기만 해도 흐뭇한 주인공들의 사랑에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MBC 마이 프린세스' 마지막회는 지금까지 왜 이러지 못 했나 싶을 정도로 달콤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행복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로마의 휴일' 속 주인공 앤 공주가 처음부터 공주였듯 혹은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앤 해서웨이가 어느날 갑자기 왕국의 공주였듯이 처음부터 황실은 존재했던 게 차라리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칼촌댁님의 말씀처럼요).

우리 나라도 영국 왕실처럼 전통이 오래된 왕실이 남아 있고 문화재 환원과 전통 알리기에 힘쓰는 황족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까지는 괜찮지만 암울한 역사 속에서 슬프게 사라진 황실은 두 정치인 이영찬(이성민), 소순우(이대연)의 장난스런 모습처럼 수월한게 아닙니다. 진정한 '공주 판타지 로맨스'로 연출되려면 황실 재건 문제는 처음부터 깔끔하게 해결해놓고 시작하는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황실 때문에 두 사람이 사랑하는 시간이 너무 짧았거든요.



이 부분은 이전 방영되었던 'MBC 궁' 시리즈나 세계적으로 히트한 영화를 모방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그렇게 설정한 것이겠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황실이나 황족에 대한 부분을 손쉽게 뭉뚱그리거나 처리하는 방법이 분명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덕분에 마지막회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밀고 당기기 장면과 깜찍한 연애 장면이 원없이 펼쳐졌습니다.

'속눈썹남' 박해영(송승헌)은 외국을 돌며 공무를 수행중이라 이설(김태희) 공주와 얼굴도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도 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이설은 황궁을 중심으로 각종 문화재 환수 사업과 CF 출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대학원에 진학해 박물관에 대한 수업도 받습니다. 두 사람은 주말 부부도 아닌 '연말 부부'처럼 자주 볼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애태우고 이설은 해영이 언제쯤 프로포즈하나 목이 빠져라 기다립니다.



마이 프린세스, 세 명의 공주가 탄생하다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가 조선 황실이라는 자칫 무거울 수도 있는 테마를 안고갈 동안 삼각관계가 다소 부진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설은 원래 남정우(류수영) 교수를 짝사랑했고 해영은 오윤주(박예진)과 결혼할 사이라 했었지만 두 사람의 로맨스는 미미했고 그닥 두 주인공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 편입니다. 중간 중간 오해하는 장면이 있긴 했지만 이설이 남정우에게 흔들린다거나 해영이 오윤주로 인해 심각한 고민을 한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뜨겁게 사랑하는' 다른 연인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드라마틱한 일입니다. 남정우와 유치하게 투닥거리는 해영이 귀엽게 보인 건 그만큼 이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뜻이 되거든요. 이설은 상대적으로 오윤주에 대한 질투를 크게 표현하지는 않은 편입니다. 어른스러운 남정우나 오윤주 역시 그런 '유치한' 표현을 자제한 편이라 사랑에 대한 느낌 조금 밋밋하지 않았나 싶긴 합니다.

공주의 생일날에도 찾아오지 않고 선물도 없고 연락도 없었던 흑기사 해영, 그런 해영이 몰래 반지를 준비한 것을 알게 된 이설은 언제쯤 내게 반지를 끼워주나 애태우며 해영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 기를 씁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정경유착으로 오해받기 쉬운 공주의 처지와 외교관으로서의 임무 때문에 고민이 많은 해영은 반지를 주기는 커녕 바쁘다며 튕기기만 하고 이설은 다른 여자에게 반지를 줬냐며 앙칼지게 쏘아부칩니다.


신미소(송성윤) 상궁이 연하남 건이(이기광)에게 2년이나 공을 들였지만 공주님의 영원한 깜찍이를 자처하던 건이는 영 반응이 시원치 않았었나 봅니다. 이제는 건이가 다가와도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신미소 상궁은 다른 남자를 찾겠다며 건이를 외면하고 건이는 이제서야 신미소 상궁의 마음을 확 휘어잡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공주 신상궁이 다른 남자 만날까봐 질투하는 건이, 귀엽고 듬직하고 멋진 남자가 됐네요.

오윤주는 전공을 살려 교수로 재작하다 이집트로 떠나게 됩니다. 같은 역사를 전공하는 남정우와 오윤주는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될 터이고 이집트에 찾아가겠다는 남정우의 말에 화답하는 오윤주의 웃음으로 두 사람의 사이는 전처럼 다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헤어지고 질투하고 갈등했던 게 벌써 옛날 일처럼 느껴지고 따뜻한 웃음만 남아있는 연인들, 새로운 공주님들이 탄생했네요.

로맨틱 코미디는 특이하고 남들의 시선을 끌만한 별난 소재를 배경으로 삼기 마련인데 '마이 프린세스'처럼 황실 재건의 어려움이나 부모의 죽음이 주인공 보다 더 큰 무게로 다가오면 사랑이 주목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제서야 황실이 어둡고 음모가 가득한 곳이 아니라 사랑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핑크빛 공간으로 탈바꿈했네요. 세 커플의 사랑이 늦게 피어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제는 안녕, 마이 프린세스

사극 이외의 한국 드라마를 집중적으로 시청한 것도 요즘이 처음이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이렇게 장기간 시청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싶습니다. 또 송승헌, 김태희가 출연하는 드라마를 끝까지 본 건 이번이 아예 처음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초반부에서 몰입할 수 없어 시청을 중단한 드라마가 더 많거든요. 두 사람이 어떤 드라마를 찍던 본인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거운 역할을 맡았던 게 그 원인인 거 같습니다.

주인공의 발연기 논란도 있었고 황실에 대한 논란도 한번쯤 불러일으켰지만 드라마가 가장 비난을 받았던 건 누가 뭐래도 '전라도 비하' 발언과 '김대중' 대통령이 사채업자라고 써져 있던 메모입니다. 대본에도 써 있지 않았던 '전라도 여자' 운운하는 내용은 첫출연인 연기자의 애드립이든 연출자의 실수이던 간에 건드려서는 안되는 대한민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입니다.



아직도 고연령층에서는 황실을 오락의 소재로 삼는다는 사실을 불쾌하게 여기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황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단 이유로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나라를 빼앗긴 슬픈 역사를 쉽게 언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라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TV에서 절대 농담거리로 삼지 말아야할 것들 중 하나가 지역감정같은 것들이겠지요. 드라마 제작자들이 극도로 주의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로맨틱 코미디, 공주 판타지의 매력은 이 주변적인 것들을 희미한 것으로 만든다는데 있는 듯합니다. 마치 주인공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주변을 모두 흐리게 처리하는 아웃포커스 촬영기법처럼 평소에 무겁고 진지하다고 생각해왔던 이야기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두 사람의 극적인 사랑에만 시선을 주는게 바로 이런 사랑 이야기들입니다. 그곳에는 발연기 김태희도 송승헌도 없고 오로지 공주와 왕자만 존재합니다.

다정하게 이설을 간호하며 이마를 짚어주던 해영, 해영과 티격태격하며 영수증을 달라 조르던 이설, 가방에 들어간 이설을 꺼내주던 해영, 일년 만에 만난 해영을 끌어안으며 낯뜨거울 정도의 애정 행각을 보여주는 이설 등. 애정어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한 커플에 대한 기억 만이 오래 남았으면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배경음악으로 삽입한 마이 프린세스 OST, 타루의 노래 'KASIO'와 이상은의 'Falling'이 참 괜찮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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