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짝패

짝패, 두냥 구걸 양반으로 변한 김명수

Shain 2011. 3. 1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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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고 나라가 변해도 오욕칠정이 모든 번뇌의 원인이고 고통의 이유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서구 강국들의 침략이 멀지 않았고 개화기가 얼마 남지 않아 그 어느 때 보다 변화를 필요로 하던 조선 후기 백성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나라들의 정세를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네들은 매일매일 변함없이 화내고 울며 웃으며 하루하루를 삽니다. 그리 비쌀 것도 없는 천으로 만든 때묻은 저고리에 헤진 짚신이라도 사람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덴 부족하지 않습니다.

뒤짐질(도둑질), 까막뒤짐(소매치기) 같은 요즘은 듣기 힘든 단어들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기 정겹기도 하고 어쩌다 저런 말들을 잊고 살았을까 싶어 흐뭇한 웃음이 나기도 합니다. 무엇 보다 소프라노 목소리와 창을 섞어놓은 OST가 쓸쓸하게 박진감있게 장면장면을 살려주는 덕택에 맛깔스런 분위기가 더하는 듯 합니다. 극적 전개를 하기 보단 차근차근 풀어가는 드라마이지만 OST 가락이 흥겨운 편이라 최근 가장 자주 듣는 음악 중 하나가 되었네요.



짝패엔 다양한 조선 시대의 인간 유형이 등장하는데 갖바치, 상인, 거지패 등의 천민 사회와 기득권을 가지고 각종 이권과 재물을 독점하는 양반층과의 대립이 드라마의 갈등 구도 중 하나입니다. 기존 사회의 제도와 신분은 돈으로 인해 무너지고 있었고 양반층 자체도 존경받을 만한 행동을 하기 보다 비난받는 경우가 늘어났던 시대입니다. 자기도 몰래 신분이 바뀐 천둥(천정명)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양반층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천둥은 굳이 썩은 나라를 바꾸지 않아도 권력층에 편입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양반 족보를 사서 김진사(최종환)의 딸 금옥(이설아)과 혼인할 수도 있다는 귀동(이상윤)은 아버지처럼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한도에서 재능있는 사람을 등용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확 뒤집어 엎어야 한다는 강포수(권오중)과 김진사는 썩은 나라를 바꾸자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꿈꾸는 이상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진보와 보수의 대립처럼 말입니다.

어릴 적 보여준 천둥의 성격은 당차고 딱 부러지며 심지곧은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동녀(한지혜)의 밑에서 재물을 모으며 김진사와 친하게 지내는 장사치가 되어 있습니다. 동녀 역시 뛰어난 상인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지만 이상하게 김진사에게 어떻게 복수할 것인지 아직 발톱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용마골에서 함께 민란을 일으켰던 달이(서현진)도 황노인(임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사람이 변한 것일까, 그 이유가 곧 드러나지 않을까요.



두냥을 구걸하고 다니는 전임 현감

조선 시대에 양반 신분은 날 때부터 입에 물고 있는 은수저 같은 것이지만 조선 후기는 타고난 양반이라 해서 대접받는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부유해진 상인과 양민 층이 양반가의 족보를 사들여 신분상승을 도모하니 개화기 이전엔 전 백성의 40% 정도가 양반이라 자처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소수의 상류층과 다수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죠.

성초시(강신일)를 죽인 오살맞을 전임 현감(김명수)은 누나 권씨(임채원)의 도움으로 간신히 배고픔을 면합니다. 누나가 보내준 곡식을 팔아 도박을 하다 보니 양반 체면 유지하라 보내준 여종 삼월(이지수)은 늘 양식을 꾸러 다니고 푸성귀를 다듬습니다. 동네 도박하는 패거리가 비아냥을 하던 말던 아무 곳에나 빌붙어 두냥만 꿔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양새가 천민들 보다 가난합니다.


양반이라는 것만으론 희소가치가 없는 시대라 김진사네 집사 노릇을 하는 박서방(정한헌)은 낮잠자는 그네를 놀려먹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합니다. 시중드는 삼월을 임신까지 시킨 이 구제불능의 양반이 그나마 양반이라 존대는 하고 있긴 한데 시정잡배 보다 못한놈이니 혀만 끌끌 찰 뿐이죠. 몰락한 이 전임 현감의 모습이 당시 조선사회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돈밝히고 여자밝히고 학식이나 체면이라곤 약에 쓸래도 눈꼽만큼도 없으면서 꼴에 양반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던 부정한 족속들, 상인들과 담합해 요즘 조폭에 해당하는 왈자패 왕두령네의 사정을 봐주거나 뇌물을 받는 포도청 종사관들(요즘의 경찰)과 함께 나라의 대들보를 썩게 만들던 인물들이죠. 그런데 천둥은 이런 하찮고 같잖은 신분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신분제를 옹호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천한 신분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까

천둥과 짝패가 되기로 하고 파격적으로 말을 낮추게 허락한 귀동과 천둥의 재능을 높이 사 동료로 가두고 있는 동녀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너져가는 조선의 신분제를 포기하지는 않은 인물들이란 뜻입니다. 타고날 때부터 양반이라 더욱 그런 면이 강하겠지만 천둥에게 '타고난 신분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한 동녀는 귀동에게는 살갑게 굴고 반말을 하는 등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유모 막순(윤유선)을 친엄마처럼 대하며 아랫사람을 잘 거두는 귀동이지만 그 역시 신분 사회를 꼭 무너트려야한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천둥은 유달리 친해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마음 한구석으로 동녀와 신분 때문에 이뤄질 수 없는게 아닐까 고민하는 듯합니다. 귀동과 천둥의 재주를 놓고 겨뤘을 때 천둥은 어느 한 구석 귀동 보다 못한 점이 없지만 신분 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귀동은 어릴 때처럼 장난스럽고 호기롭게 포도청에서도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인물입니다. 능청맞게 친구처럼 동녀에게 달라붙곤 하지만 마음 한켠에 천둥에 대한 배려 때문에 적극적인 구애를 하지 못합니다. 천둥은 금옥과의 혼담이 오가는 중이긴 하지만 어쩐지 냉정한 동녀 앞에 신분의 벽이란 유리벽을 보고 있습니다. 이 소꿉친구들의 삼각관계는 동녀와 달이에게 달린 듯 합니다.

신분 상승을 꿈꾸던 막순이 이참봉의 아이 귀동과 천둥의 신분을 바꿔치기하고 이제는 술독에 빠져 살다 기둥서방인 조선달(정찬)을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쇠돌(정인기)의 평생 헌신을 무시한채 나쁜 남자 조선달을 위하는 그녀를 보면 신분의 굴레가 무섭긴 무섭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장꼭지(이문식)이 데리고 있던 거지패가 등장하지 않아 겨울날 얼어죽은 건 아닌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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