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내 마음이 들리니

내마들, 꽃바보 봉영규 착한 드라마 인기비결

Shain 2011. 5. 2.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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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방영된 MBC '내 마음이 들리니'가 21.6%의 시청률로 주말 최고 인기 드라마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SBS에서 생중계된, 전 국민의 관심을 끌어 모은 김연아의 경기가 5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평소 드라마 시청률이 20%를 넘기 힘든 것을 감안하면 실로 엄청난 기록입니다. 주인공 황정음이 지난주 연인의 불미스런 일로 인해 마음 고생이 심했을텐데 드라마의 인기로 큰 위로를 받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최근 제작된 드라마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영상이 '유치'하지 않았던 드라마 중 하나입니다.

어린 시절 당했던 사고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차동주(김재원), 그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복수에 눈멀어 아들을 속이는 것 조차 아무렇지 않은 태현숙(이혜영)과 감당할 수 없는 자신의 가족들로부터 도망친 봉마루, 이제는 장준하(남궁민)로 불리는 그 밖엔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아버지 최진철(송승환)은 자신이 차지한 현숙의 재산을 지키려 동주를 알게 모르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천상 소년의 영혼을 가진 동주, 그를 둘러싼 환경은 차라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삭막하기만 합니다.


한편 어린 시절 유일한 '혈연'인 엄마 미숙씨(김여진)을 잃은 봉우리(황정음)의 가족은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우리를 누구 보다 사랑해주는 사람들입니다. 지능이 모자란 남의 아들 봉영규(정보석)까지 거둔 욕쟁이 할머니 황순금(윤여정), 죽은 미숙씨와 우리, 마루, 순금 할머니를 누구 보다 사랑하는 꽃바보 봉영규. 그들을 주변에서 거둬주는 승철(이규한)네 가족. 닭장사 멍군(이성민)과 그의 아내(황영희)는 차동주가 한번쯤 받아보고 싶었던, 조건없는 애정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새엄마의 죽음을 보며 태현숙에게 도와달라 애원하던 봉마루. 남들에게 부드러운 속정과 본심을 숨기고 거친 말을 내뱉던 그 아이는 여전히 속이 무른 청년입니다. 자신을 복수에 이용한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어머니 태현숙에게 의지하는 마루. 자신이 원하던 '의사'의 꿈은 '양아버지' 봉영규는 이뤄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경그룹 회장 사모님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양아들 장준하. 그걸 가능하게 해준 '양어머니' 현숙을 배신하고 싶지 않은 마루. 마루는 자신을 나쁜 놈이라 생각하지만 신애(강문영), 진철, 현숙의 비밀을 전혀 모르는 피해자일 뿐입니다.



막장 드라마 요소도 갖추고 있는데

한국에서 드라마 촬영을 하자면 '사극' 조차 피할 수 없는게 '간접 광고'입니다. 지방에서 촬영되는 드라마는 지역 홍보 PPL을 유치하고 기업은 출시되지도 않은 물품을 드라마에 사용하게 합니다. '내 마음이 들리니' 역시 이런저런 상품과 장소 PPL이 다수 포진해 있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차동주가 보조적으로 유지하는 수단들 대부분과 그들의 차량, 의상 등이 간접광고의 일부분이라할 수 있습니다. 많은 '재벌' 드라마들에서 지적되는 문제 요소가 '내마들'에도 충분히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뿐 아니라 준하만 모르고 있는 친부모의 진실과 봉영규를 둘러싼 출생의 비밀, 신애와 진철의 30년 불륜과 귀가 들리지 않는 아들과 양아들까지 이용한 지독한 복수극, 주요 출연진들 사이에 예정된 삼각관계 등은 기존 드라마에서 활용하고 있는 기본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점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본래 차동주의 것이었어야 할 우경 그룹의 재산을 두고 다투는 모습은 '재벌 후계 싸움'이라는, 최근 드라마에서 유행한 '재산 싸움'의 전형으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꽃미남 차동주(김재원)와 꽃바보 봉영규(정보석)

더군다나 가난하고 별볼일없는 집안의 여성이 재벌 아들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사람들이 늘 지적하던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봉우리처럼 가난한 아이가 재벌 아들의 사랑을 받으니 오히려 '신분의 차이(?)'가 더욱 극대화된 셈입니다. 과거 신데렐라 드라마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태현숙이 동주와 우리의 사랑을 지독하게 방해하고 사차원 강민수(고준희)가 은근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 수 있다는 걸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착한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그 흔한 '막장 드라마'와 전혀 다른 색깔을 띄고 있습니다. '봉영규'라는 바보 캐릭터가 미숙씨를 사랑하듯 꽃을 사랑하고, 자신의 사람들을 꽃가꾸듯이 소중히 대한다는 그 아름다운 '동화'같은 분위기가 드라마를 장악하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막장이란 느낌을 주기 보다 뭔지 모르게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치매에 걸린 순금 할머니와 영규가 '꽃밭을 가꾸는' 인간적 분위기로 이 드라마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에 어두움이 상쇄되고 있는 것입니다.

봉영규와 사랑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꽃을 사랑하고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봉영규, 탤렌트 정보석은 자칫하면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워질 수 있는 이 바보 연기를 위해 순수한 어린아이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합니다. 아낌없이 사랑하고 줄 수 있는 그런 '바보'같은 역할이지만 실제 바보가 아니라 그냥 순수한 눈을 가진 어른일 뿐인 것입니다. 드라마 장면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의 순수함은 드라마를 '꽃밭'의 이미지로 만드는 핵심입니다. 그가 조심스레 흙을 다독이고 꽃에게 이불을 덮어주듯 주인공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있기에 '평화'가 유지되는 셈입니다.

같은 소재를 써도 하나는 착한 드라마고 하나는 막장 드라마라 평가될 수 있다는 건 어디까지나 제작자의 능력입니다. 복수극에 무리없는 설득력을 주기 위한 악역, 신애와 진철이 나름 현실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고(처음부터 못된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란 짐작도 가능합니다) 독하게 15년을 아들만 뒷바라지한 태현숙 역의 이혜영이 상처입은 한 아내와 어머니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습니다. 장준하가 무릎꿇고 빌게 만들고 차동주가 홀로 생각하게 만드는 그녀가 갈등의 원인이 되는 건 자연스럽다는 느낌을 줍니다.



봉우리에게 가까이 갈 수 없는 동주와 준하

봉우리는 오빠 봉마루라면 어릴 때부터 졸졸 따라다닐 만큼 좋아했었고 피아니스트 발음도 되지 않으면서 동경했던 차동주에겐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멜로디언을 가져다 직접 피아오늘 가르쳐준 그는 첫사랑이자 어린 시절 최고의 따뜻한 추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늘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엄마 옆에서 학교도 다니지 않은 채 살던 봉우리, 이름 지어줄 따뜻한 아버지도 없었고 어린이 옷이나 아이들과의 추억같은 '애들다운' 기억이 거의 없는 우리에게 차동주 만큼 큰 무게를 차지하는 기억은 없습니다.

동주의 친어머니인 현숙이 이런 우리에게서 유일한 오빠와 유일한 친구를 빼앗아가는 악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숙 역시 남편에게 속아 아버지의 유산을 잃고 아들까지 다치게 만든 상처입은 여자이지만 자신과 제대로 만난적 없는 우리의 행복까지 빼앗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현숙이 '봉마루'를 외국으로 데리고 떠나 실종되었을 때 가장 상처입은 사람은 잔정없는 신애나 진철이 아니라 봉영규, 봉우리, 순금 할머니 이 세 사람입니다.

봉영규가 가꿔야하는 어린 꽃들의 슬픔

태현숙은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진철, 아버지를 죽게 만든 그에게 복수한다고 생각했지만 진철이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전혀 알지 못 했습니다. 현숙은 전혀 모르고 있겠지만 진철은 희한하게 신애 보다는 현숙을 더 사랑하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진철이 아닌 엉뚱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써 복수의 방향이 어긋난 것 같아 보입니다. 서서히 진철이 가진 재산을 자신의 것으로 빼앗을 계획이겠지만 그전에 동주와 준하가 먼저 망가져버릴 수도 있겠지요.

마음같아서는 직접 원한이 있는 진철과 신애, 현숙이 엉켜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고 아무 상관없는 아이들이나 영규네 가족은 내버려두었으면 싶은데 이미 미숙의 죽음에 진철이 깊은 관련이 있는 한 이들의 얽히고 섥힌 '복수극'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꽃바보 '봉영규'입니다. 마루 때문에 벽에 머리 박고 스스로 쥐어박느냐 바쁜 봉영규. 꽃그림 그리면서 어머니 병원비 마련했노라 환하게 웃는 영규가 당분간 주말 시간을 책임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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