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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사극을 사극답게 만들어주는 배우들

Shain 2011. 6. 1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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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웅을 중심으로 대하사극 시리즈를 만들기로 하고 그 첫 작품으로 '근초고왕'이 방영되었습니다. 종영된 드라마 '근초고왕'은 사서에 없는 역사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 각종 무리한 설정을 활용했고 이후엔 '화제'를 의식한 듯 티아라를 비롯한 아이돌 연기자를 대거 투입하기도 합니다. 실존 인물이 아닌 '부여화'의 활약(?)이 지나쳐 비난받은 것은 물론 각종 사서에 있는 주요 인물들이 입양 내지는 개명을 통해 역사에 개입하는 방식도 왜곡 논란도 불러일으켰습니다. 입양된 진씨 왕후 진홍란이 또다른 아이를 입양해 근초고왕의 후계로 삼는다니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죠.

요즘 같이 미드를 비롯한 각종 볼거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극 촬영은 정말 힘들죠. 각종 고증을 따져 각본을 쓰고 소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출연 배우들도 더운 여름 각종 갑옷과 무기를 장비한 채 촬영하느냐 지친 기색과 더위에 땀흘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실내 촬영이 아닌 실외 촬영의 경우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지 못하고 고스란히 받아야하는 고통을 감수해야합니다.


거기에 시청자들은 각종 화려한 영화나 드라마에 익숙해져 제작자들은 군사를 동원하는 전쟁신이나 전투신, 액션에도 신경써야 합니다. 사서에 적힌 연대기에 맞춰 드라마를 촬영한다기 한편의 쇼를 제작하는 것이 최근의 사극 경향이기에(하긴 미국은 그런 이유로 드라마를 쇼라고 부르나 봅니다) 안 그래도 시청자가 줄어든 사극이 점점 더 판타지가 되어가고 '이야기'가 되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근초고왕'이 악평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10%의 시청률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과거 정통 사극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비하면 최악의 시청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극은 시청자와 매니아층이 뚜렷한 장르로 해당 방송사에겐 영웅의 이야기 70부작이 늘 고정된 시청률을 안겨주고 손해볼 것 없는, 그런 장르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KBS 정통 사극엔 늘 꾸준히 출연하는 반가운 사극 배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배우들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첫시작부터 후연의 모용수(김동현)와 접전을 벌이는 고구려 왕자 담덕(이태곤)의 이야기를 끌고 나가고 있습니다. 지난 드라마 '근초고왕'에서도 연나라 모용수(그때는 정재곤)가 고구려를 경계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걸 아시는 분은 아실텐데 백제왕 근초고왕에 비해 비정상적인 성격으로 그려진 고국원왕(이종원)이 아쉬울 정도로 고구려는 북방의 침략에 대응을 잘한 편입니다. 미천왕의 시신까지 파헤쳐 도망갈 정도로 비겁했던 모용황을 끝내 망하게 만든 고구려의 집념과 국방 의지는 후대에서 존경할만한 부분이죠.

극중 '후연'은 모용황의 다섯째 아들이 세운 나라로 모용황의 아들 모용보(임호)가 귀신장수라 불리는 담덕의 라이벌로 등장합니다. 모용황이나 모용수 모두 당시 고구려를 힘들게 한, 큰 세력을 과시한 인물이지만 역사적으로 모용수 사후의 '후연'은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다 '북연'에 의해 패망하고 맙니다. 드라마는 고구려 왕족 출신으로 '후연'의 왕위를 찬탈하고 북연을 세우는 고운(김승수)을 담덕의 절친한 친구이자 국상 개연수(최동준)의 아들로 등장시킵니다. 당시의 후연 역사에 관계된 풍발(정호근)까지 등장해 후연은 꾸준히 고구려의 문제거리가 될 듯합니다.

후연의 모용수, 모용보와 요동성의 고무, 고창의 대립구도


침략을 자주 받는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 보다 국민성이 단단하고 애국심이 강한 편입니다. 실제 강건한 고구려 여인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한 편으로 25대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가 남편 온달을 가르쳐 전쟁에 임하게 한 이야기는 현대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은 그런 똘똘 뭉치는 고구려인들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인물 구성으로 고구려를 위해서 다른 입장으로 갈등하는 국상이 담덕과 가장 큰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요동성을 지키는 대장군이자 담덕의 작은 할아버지인 고무(김진태)는 고국원왕의 동생으로 사서에도 미천왕의 시신을 되찾아오는 사신으로 적혀 있는 인물입니다. 드라마는 고무를 왕족이지만 변방을 지키며 국방에만 충실하는 충직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이자 담덕의 숙부뻘인 고창(남성진) 등이 요동성에서 '후연'의 침략을 방어하는 장군들로 다수 등장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고국양양 고이련(송용태)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왕실과 고구려 방어의 최경계선인 요동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고국양왕과 개연수, 담덕과 고운의 대립구도


전반적으로 김진태, 남성진 등의 반가운 배우와 사극에서 자주 그 역량을 드러내는 임대호, 최동준 등의 연기자가 등장하여 정통사극 연기자들로서는 모자람이 없는 편입니다. 발연기 논란의 중심이 된 이태곤도 적절하게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고 지난 사극 '근초고왕' 보다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백성과 신하들에게 초점을 맞춘 점도 주목할만 합니다. 특히 연살타 역으로 등장한 홍경인이 불에 타죽을 뻔한 장면은 인질로 이용당하는 백성의 모습이라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벌써부터 가상인물인 담덕의 형 담망(정태우)를 설정한 점, '근초고왕'에 비해 복식 고증이 완벽하지 못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 고구려의 기상을 강조하기 위해 과도하게 무협지스러운 과장된 감정과 연출을 자주 활용한다는 점 등은 여전히 지적받는 문제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사극 연기자인 임호와 김진태, 김승수 등이 기존에 맡았던 자신의 사극 속 역할을 그대로 복사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고 드라마가 사극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근초고왕'처럼 전체적인 진행은 현대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아쉽네요.



사극을 사극답게 만들어주는 사람들

지난 '근초고왕' 논란으로 일부 시청자들은 정통 사극에 대한 기대를 접어버렸습니다. 저 역시 '광개토태왕'이 이런저런 왜곡 논란에 시달리는 걸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을 감탄하게 했던 KBS 정통사극은 이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오히려 현대극 보다 과장된 연출이 '클리셰'가 되어버린 요즘 사극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사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각색했다기 보단 판타지 무협지의 한장면을 보는 것같을 때가 많아졌거든요.

이야기 전개 상으론 현대극과 그닥 차이가 없을 수도 있는 이런 형태의 사극들을 사극답게 만들어주는 건 연기자들의 기량 아닐까 싶습니다. 사극에 전문화된 발성도 탁월하지만 진지함과 감정선을 잘 살린 그들의 연기도 시청자들을 훌륭하게 만족시킵니다. 드라마 '광개토태왕'엔 고구려 왕실을 아름답게 수놓을 광개토태왕의 여인들도 세 명 설정되어 있는데 정적이랄 수 있는 개연수의 딸 도영(오지은), 고무의 딸 약연(이인혜), 말갈의 딸 설지(김정화) 등이 등장합니다. 도영은 귀족가의 딸이지만 약연과 설지는 '강한 고구려'답게 여전사들입니다.

담덕과 함께 요동성에서 활약하는 고무의 딸 약연(촌수로는 고모뻘이군요)


정통 사극의 몇가지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부분 중 하나에는 왕과 왕의 여인들이 등장하는 영웅형 구도도 있습니다. 영웅의 일대기와 업적을 그리다 보면 혼인정책 등으로 맺어진 부인들이 많기 마련이고 그런 구태의연함이 일반 백성들과의 차이점을 도드라지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민 중심의 시각으로 그려진 사극 보다는 그런 왕실 입장으로 그려진 사극이 많았는데 워낙 역사적으로 고난이 많았던 고구려다 보니 그 부분에 대한 보완도 기대해 봅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지적된 오류 중 하나는 후대의 사람들이 '연나라'를 구분하기 위해 '후연'이라 부르는 것을 모용수와 모용보 등이 자신들의 나라를 '후연'이라 지칭한다는 점입니다. 당시 연나라가 4개나 있었기 때문에 현대인들이 후연이라 부르는 것일 뿐 극중 배역이 자신의 나라를 '후연'이라 부르는 장면은 아무래도 좀 이상할 수 밖에 없지요. 모용수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은 요동성과 고구려의 이야기, 정통 사극이 아쉽긴 하지만 현재 방영중인 거의 유일한 사극의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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