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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백동수, 진지한 장면에서 풍겨나오는 코믹함

Shain 2011. 7. 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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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도 좋아하고 소설도 좋아하고 드라마나 영화도 좋아하는 저는 어릴 때부터 무협 쪽의 컨텐츠는 손댄 적이 거의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동창생이 읽고 있던 무협 소설을 몇번 빌려읽어본 적도 있지만 어쩐지 '하이틴 로맨스' 만큼이나 과장되고 허황된 표현에 도무지 저로서는 '공감'이 가지 않아 빠져들 수가 없더군요. 상상으로 창조된 세계를 그리는 SF는 좋아합니다만 무협은 한번도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여태까지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홍콩 영화들도 제대로 접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게 말 그대로 취향의 차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잘 만들어졌다'라는 평을 받은 작품들의 경우엔 '저런 경지도 가능하구나'하는 느낌으로 감상할 수가 있습니다. 전에도 적었듯이 정통 무협은 별로지만 무협 코드를 섞은 작품들은 오히려 즐겁게 볼 수 있더라구요. 그러나 드라마 '무사 백동수'는 제가 공감할 수 없는 쪽의 무협 코드로 점점 시청할수록 좋지 않은 클리셰가 반복되고 있단 느낌이 듭니다.


노론이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와 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꾸준히 괴롭혔단 모티브는 여타 작품들에서 자주 반복되어 온 부분입니다. 자질이 뛰어난 인물이었던 사도세자는 대리청정을 하는 등 나이많은 영조의 후계자 노릇을 했지만 점점 더 광기에 사로잡혀 갑니다. 한중록을 비롯한 여러 사서를 살펴 보면 멀쩡한 사람이 누명을 쓰고 뒤주에서 죽었다기 보단 실제로도 광인이었다는 건 확실한 듯합니다. 혜경궁 홍씨 집안에서 사도세자를 광인으로 만들어 폄하할 이유가 있었다는 심증도 있지만 왕족이 자신의 첩을 단칼에 죽이는 일은 흔치 않을테니까요.

'무사 백동수'에는 그런 실존인물인 사도세자가 효종의 북벌지계를 찾는 뜻있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노론의 행동대장이라 할 수 있는 홍대주(이원종)는 사주를 받아 감히 한 나라의 세자에게 자객을 보내 암살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역사 왜곡이니 뭐니 하는 그런 부분을 다 떠나서 어차피 이 드라마는 무협극이다 조선왕족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만든 코스프레 창작극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봐도 그 장면들이 웃기다고 느껴지는 건 뻔하디 뻔한 전개 때문인 거 같기도 합니다.



다음 장면을 쉽게 예상할 수 있으면 유치해진다

아기를 끓는 물에 넣는 팽형은 역사 왜곡 문제로도 도마에 올랐지만 화제를 끌기 위한 지나친 설정이 아니냔 비판도 받았습니다. 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아이를 죽이거나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장면은 잘 묘사하지 않는 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아이를 둔 부모라면 그렇게 편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닐 거라 봅니다. 아마 이런 논란이 있으리란 걸 제작진은 당연히 모르지 않았을 거라 봅니다. 화제가 될만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선택했을 것이고 덕분에 입소문을 탄 것도 사실입니다.

상대방송국의 드라마 '미스 리플리' 역시 신정아를 모델로 드라마를 만들었단 사실로 화제가 되긴 했지만 화제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실제 인물의 사례를 드라마에 끼어맞추다 보니 전체 전개가 엉성해진다는 평을 자주 받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는 '학력 위조'와 한 여자의 고단한 개인사를 연결시킨다는 당초의 기획의도는 이제 와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어버렸습니다. '무사 백동수' 역시 아기의 '팽형'으로 화제를 불러모았지만 나머지 구성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아역 박건태가 맡은 살성(殺成)의 설정은 주인공 여운의 운명을 비극적으로 만드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여초상(이계인)은 자신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는 살성을 타고났다며 태어나자 마자 죽이려 들지만 오히려 여운의 어머니를 죽이고 맙니다. 이 '살성'의 운명, 즉 흑사초롱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수가 되는 여운의 운명을 강조하자면 '살성'이라는 게 좀 더 설득력있게 그려져야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 주정꾼 아비가 아들을 죽이려다 죽임을 당한 걸로만 보일 뿐입니다.

또 극중 유지선(남지현)이 들치기를 당하여 화들짝 놀랐다가 여운, 백동수(여진구), 진주(이혜인) 등이 범인을 잡아왔을 때 하는 행동도 어설프긴 마찬가지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일대 소란을 일으켜 양반가 아가씨의 물건을 훔친 도둑을 잡았는데 '잃어버린 것이 없다'며 따뜻하게 웃는 모습도 황당하고 나 때문에 애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훈계부터 하는 모습도 참 아귀가 안맞습니다. '유지선'의 인격에 감동받은듯한 OST도 희한한 설정이지만 무엇 보다 그 장면은 그렇게 할 것이란게 예측이 되기 때문에 시시합니다.


다음 장면에 어떤 내용이 등장할 지 예상 가능하다는 건 극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첫번째 요소입니다. 마치 영화 '실미도'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장용위 소년들의 훈련장면에서 몸은 약하지만 똑똑한 양초립(신동우)을 백동수가 구하려 되돌아가는 장면, 그를 두고 장대포(박원상)와 백동수가 언쟁하는 장면은 다른 영화에서도 흔히 보아왔던 진부한 설정이라 굳이 다음 장면을 보지 않아도 예상이 됩니다. 백동수와 여운의 갈등도 한 여인을 둔 삼각관계, 그리고 우정과 임무 사이에서 갈등하는 흔한 대립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도세자와 장용위, 노론과 포도대장이 겨루는 한판 승부. 장용위의 백동수가 한중일의 무술을 총망라한 책을 편찬한다는 내용의 역사 소재를 드라마로 꾸민다는게 쉽지는 않겠지요. 진지한 성격의 외팔이 검선 김광택(전광렬)은 시청자들의 헛탈한 웃음을 뒤로 한채 소림사에 들어가버렸습니다. 아무리 중국 무술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소림사'에 들어가는 장면은 웃기긴 웃기더군요. 무거울 수도 있는 소재를 이렇게 가볍게 끌고나와 고맙다고 해야할지 유치하다고 해야할지 가끔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정체 불명의 무협극이 될 수도

저는 무협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잘 모르는 영역입니다만 예전부터 무술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은 한중일의 무술을 총망라하는 백동수에 대한 드라마치고 고증이 엉망이란 말을 하더군요. 각국의 특징이 드러난 무술을 구사해야 기록에도 차별성이 있을텐데 라이벌 김광택과 천주는 자세에서도 검술에서도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이긴 합니다. 덧붙여 여운이 살성을 타고났다는 말이 와닿지 않는 것처럼 비참한 운명의 사도세자에게서도 비장함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연기자들의 연기는 나무랄 때 없이 좋은 편으로 어서 빨리 전광렬이나 오만석, 최민수의 칼잡는 장면을 보고싶을 정도인데 '실미도'같은 훈련 장면처럼 영화에서 한번쯤 보았음직한 장면 연출에 신경쓰느냐 전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두고두고 문제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드라마 최민수하고 전광렬 겨루는 장면 정말 멋있더라' 이렇게는 기억해도 드라마 전체 이야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극중 유지선은 사도세자를 따라 궁으로 들어갈 것 같습니다. 사도세자에게는 기록상 혜경궁 홍씨, 순빈 임씨, 경빈 박씨 세 사람의 아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경빈이라 불리는 박씨는 빙애라는 이름으로 후에 사도세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인물입니다. 유지선의 입장이 정말 후궁이 될 것인지 그도 아니면 궁녀로 머물게 될 것인지 모르겠지만 북벌지계를 수호하는 가문의 여식이라니 어쩐지 무협극에 통속극 러브라인까지 보태질 거 같아 조금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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