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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리플리,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망친 줏대없는 편집

Shain 2011. 7. 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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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출신 연기자들이 과거 비난을 받던 건 연기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인기에만 의존해 화제를 끌어모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운이 좋아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기도 하지만 때로는 '발연기'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 졸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돌 연기자의 가장 큰 문제는 인기에 의존해 작품을 만들다 보니 작품 전체와는 상관없이 출연 분량을 늘이거나 팬들의 호응을 받을만한 '멋진'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드라마인지 뮤직비디오인지 모를 장면을 찍는 등 드라마 제작에 악영향을 끼치는 점입니다.

'미스리플리'의 결말이 이상해진 건 배우 김정태의 출연 분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덕분에 문희주 역의 강혜정 출연 분량이나 장명훈(김승우) 출연 분량이 줄었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송유현 역의 박유천의 출연 분량도 과다하게 늘어났음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처음부터 장명훈, 송유현, 장미리(이다해)의 삼각구도를 집중적으로 끌어갔어야 했음에도 드라마가 박유천의 팬들에 의존하다 보니 박유천만을 집중 클로즈업한 것입니다. 박유천의 연기력이 호평받은 것과는 별개로 드라마 전체의 비중이 맞지 않았던 셈이죠.

전혀 출연 비중이 맞지 않았던 네 사람의 캐릭터

드라마의 끝장면은 결국 '미스 리플리'의 OST였던 박유천의 '너를 위한 빈자리'로 마무리됩니다. 오프닝은 분명 장명훈과 송유현이 사랑하는 여자 장미리의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결국 투톱이었던 남자주인공이 원톱이 되버린 것입니다. 아무래도 마지막회 장면을 편집해서 뮤직비디오가 나온다고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같습니다. 송유현을 사랑해 장미리의 라이벌 역할을 했어야 했던 강혜정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연인에서 친구로 비중이 축소되어 버렸습니다.

어제도 적었듯 이 드라마의 문제점은 이것만은 아닙니다. 신정아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을 드라마의 소재로 잡은 건 좋은데 그 신정아의 이야길 끼워넣다 보니 드라마는 전체적으로 개연성이 맞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굳이 신정아를 끌어오지 않았었도 '리플리 증후군'은 좋은 이야기거리였는데 사회적 모델이 있는 사람을 끌고 오는 바람에 이야기가 엉성해져 버렸습니다. 말하자면 '화제성'을 너무 의식해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를 망친 셈입니다.



가족과 사랑은 사태를 해결하는 만능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길 바랍니다. 팔자 사나운 주인공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길 빌어주고 갈등하는 가족들은 행복하게 화해하길 빌어줍니다. 그래서 가족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던 간에 사랑하는 가족들의 행복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보는 사람들도 흐뭇하고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헐리우드식' 해피엔딩과는 좀 다르지만 한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해피엔딩 마무리는 일일 드라마나 주말극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들리니'라는 주말 드라마는 모든 가족이 상처입고 다투고 복수하는 내용이 그렸지만 그들의 해피엔딩은 전혀 불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주인공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잘 표현되었고 어떻게든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싶은 안타까움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미스리플리'의 주인공들은 한 여성의 일방적인 거짓말에 인생이 흔들리고 사랑에 배신당했음에도 일방적으로 장미리를 이해하려고만 들던가 무조건적인 화해의 결말으로 극을 몰고가기 바쁩니다.

리플리증후군 여성의 이야기에서 가족의 화해 이야기로 급전환

많이들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이 드라마의 원작 '태양은 가득히'는 여러번 리바이벌되고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지는 명작 중의 명작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들끓는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는 한 젊은이가 친구를 죽이고 그를 대신해 거짓말하며 살아간다는 내용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킨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이 드라마는 원작처럼 '리플리 증후군'이라 불리는 거짓말 증세를 보이는 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거짓말' 만으로 이야기의 매력을 완성시키지 못했습니다.

한 여자가 거짓말을 하고 그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는 거짓말에 배신감을 느끼고 갈등하고 한 여자의 거짓말 때문에 인생을 빼앗긴 또다른 여자는 고통받는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로운 컨텐츠가 될 수 있었음에도 장미리와 송유현의 러브라인, 그리고 히라야마의 짝사랑을 부각시키느냐 '리플리 증후군'을 보여주겠다던 초반의 주제는 모두 사라지고 마지막엔 가족과 용서와 화해라는 흔하디 흔한 결말을 들고와 버렸습니다.

출연 비중이 가장 늘어난 두 사람

이 드라마에서 박유천은 아이돌이라는 편견을 깰만한 발군의 노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여주인공 이다해는 매 장면 마다 뛰고 울먹이는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습니다. 히라야마 김정태는 꼭 필요한 악역으로 첫 테이프를 잘 끊었고 최명길은 자신의 딸을 버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이중적인 모정을 충분히 잘 표현해주었지만 김승우와 강혜정에겐 자신의 캐릭터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강혜정에겐 '10초 굴욕'이라는 오명까지 생겼습니다.

비극으로 끝나더라도 시청자를 만족시키는 작품은 상당히 많습니다. 원작 '태양은 가득히'의 불안하고 의미심장한 엔딩도 사람들을 감동시켰고 리바이벌된 '리플리'의 엔딩도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화제를 끌기 위해 이것저것 살을 붙이는 것도 모자라 주인공들의 훌륭한 연기까지 사장시켜버린 이 상황은 시청률이나 입김에 연연하는 한국 드라마의 제작의 악습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 보입니다.



주연급 배우들 모두 종방연 불참

오늘 아침 기사를 보니 주연급 배우들이 '미스 리플리' 종방연에 모두 불참했던 모양입니다. 각자 개인사정에 따라 스케줄이 안 맞았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고생한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그 자리를 예의상이라도 한번 얼굴을 비친다는 걸 생각할 때 이번 논란의 휴우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연기자들의 캐릭터가 변질되고 출연 비중이 조정되어 전체적인 드라마 완성도가 저하되었다는 점에 많은 시청자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미스리플리'는 방영 동안 '동안미녀'에게 시청률 1위를 빼앗긴 적도 있지만 줄곧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화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1회성 쇼가 아닌 영원히 기억되는 드라마가 되기 위해선 화제성에만 의존하는 홍보와 제작은 고려해봐야할 문제라 봅니다. 신정아를 모델로 한 드라마란 점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그건 그때 뿐이었고 이제는 대체 왜 신정아를 언급했는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16회를 모두 시청했지만 이렇게까지 뒤끝이 찜찜한 드라마는 흔치 않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딸을 모질게 떠났고, 20년을 모른체 살아왔음에도 딸도 못알아본 엄마가 오열하는, 그런 설득력없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장미리가 자신의 딸임을 알게 되었을 때 눈물을 쏟던 연기자 '최명길'의 연기가 정말 아깝기만 하군요. 아무리 배우가 노력해도 제작진이 드라마를 망칠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좋은 예가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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