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최고의 반전 인물은 한명회가 아니라 정인지

Shain 2011. 12. 24. 08:00
728x90
반응형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무려 25.4%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 대단원을 장식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세종 이도(한석규)가 모두들 떠났다며 독백하는 장면의 순간시청률은 32.4%를 기록했다고 하는군요. 시청률 20% 넘기가 쉽지 않은 요즘, '뿌리깊은 나무'가 2011년 마지막을 장식한 최고 인기 드라마였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마지막회에 밀본 책사였던 한가놈(조희봉)의 정체가 한명회로 밝혀져 혹자는 '한명회'가 이 드라마의 최대 반전이란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팬들의 예상 대로긴 하지만요).

'뿌리깊은 나무'는 쉽게 보기 힘든 수작이지만,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역사 왜곡도 고증도 아닌 인물에 대한 단편적 평가를 내리게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최근 사극이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대에 맞춰 재해석되어 제작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실리주의자였던 세종을 시대를 앞선 '민주적' 마인드를 가진 군주로 오해하기도 하고 극중 최만리같은 고집불통 보수주의자의 어리석음을 놓치게 되기도 합니다. '조말생'이나 '정인지'는 이후의 행적이 드라마와는 많이 다른 인물입니다.

'전하' 밖에 모르던 정인지, 밀본 '한명회'와 손을 잡다?


SBS에서 이 드라마를 방영하기 전 KBS에서 방영되던 '공주의 남자'를 흥미롭게 보던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딱히 의도한 것도 아닌데 '뿌리깊은 나무'는 '공주의 남자'의 프리퀼이 되어버렸습니다. 즉 수양대군을 부추켜 단종을 축출하고 강력한 왕권을 추구하는 왕으로 만든 다음 그 권력을 고스란히 자기것으로 만드는 '한명회'의 동기가 '뿌리깊은 나무'에서 설명된 셈입니다. 역사적 기록과 이런 드라마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는 역시 이런 창작의 기발함을 맛보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두 드라마를 비교하면서 봤을때 이 드라마에서 최고의 '반전인물'은 한명회가 아니라 정인지(박혁권)입니다. 극중 최만리(권태원)와 같이 집현전에 입문한 학사로 묘사된 정인지는 사실 당시 대제학이 아닌 예조판서였습니다(훈민정음 해례에 예조판서 정인지의 서문이라 적혀 있습니다). 때로는 세종의 명을 따르는 충직한 신하같이 때로는 안절부절 세종의 바가지를 긁는 마누라같이 또 때로는 세종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친구처럼(실제로도 정인지가 세종보다 한살 더 많습니다, 정인지 1396년생, 세종 1397년생) 대하던 이 '샌님'이 세조의 사돈이기 때문입니다.




집현전을 세운 세종 집현전을 없앤 세조

세종의 통치방식은 태종과 다르게 '문치(文治)'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태종이 세운 왕권을 중심으로 학문적, 제도적, 경제적 발전을 시켜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평화를 가져온 시기가 세종 때입니다. 세종을 이어받은 문종은 세종이 죽기 10여년전부터 세종의 업무를 많은 부분 대리하고 있었고 단종 역시 세종의 후계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수양대군과 세종의 다른 아들들은 관직에 올라 세종을 돕고 있었죠. 수양대군은 그중 집현전 일을 맡아 학자들과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세종의 한글 창제를 도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극중 광평대군(서영준)의 대사 중 수양대군이 불교서적을 '석보상절'을 언해했다는 내용이 등장합니다. 세종의 아들들, 즉 장남 문종을 비롯한 안평대군 등이 모두 학문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워낙 책을 좋아해 그랬는지 아니면 세종이 공부를 하라 닥달한 까닭인지 몰라도 수양대군은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많은 서적을 언해 즉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을 맡곤 합니다. 일찍 죽어버린 광평 역시 드라마 속 묘사처럼 아버지에게 동원되어 서적 편찬 업무를 맡았던 것이 사실이구요.

광평대군이 활자가 아주 좋다며 인쇄하려던 책 '석보상절'은 수양대군이 번역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조선의 3대 명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 보듯 정인지는 글을 매우 잘 써 세종의 신도비에 비문을 썼고 안평대군의 필체로 비석을 새깁니다. 수양대군도 글씨가 매우 뛰어나 각종 활자를 만들 때 진양대군(수양대군의 원래 이름)의 글씨를 활용하곤 했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 묘사처럼 세종은 재주가 뛰어난 인물은 관직을 그만두겠다 해도 계속 붙잡아 일을 시키곤 했는데 정인지 역시 세종에게 자주 혹사당한 인물 중 하나이고 1441년엔 수양대군과 함께 '치평요람'을 편찬하기도 합니다.

'공주의 남자'를 통해 보듯 수양대군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합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으며 집현전에서 일하던 학자들의 운명은 수양대군과의 친분을 기준으로 많이 달라진듯 합니다. 1444년 세종은 아들 수양대군에게 감독 책임을 주고 집현전 학자들에게 '윤회'를 번역하라 지시하는데 그때 박팽년, 신숙주, 이개 등이 그 작업에 함께 합니다. 성삼문, 안평대군은 1418년생으로 한살이 어리지만, 신숙주, 박팽년, 이개는 수양대군과 동갑입니다. 신숙주는 몰라도 정인지는 세종이 시키는 많은 일, 전답이나 군포를 실험하는 등의 일을 수양대군과 함께 했습니다.

정인지와 이순지는 사돈이 되어 권력의 정점에 선다.


수양대군과 함께 세종의 명을 따른 정인지는 세종실록에서 그 누구보다 자주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태종 11년에 생원으로 등용되어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의 일곱왕을 모신 정인지는 세조 때 영의정 자리까지 오른 최측근입니다. '공주의 남자'에 세령(문채원)의 여동생으로 등장한 의숙공주가 정인지의 며느리입니다(세조 1년에 혼인). 극중에도 등장한 이순지의 딸, 과부 이씨가 양성인 사방지(참고: 이전 포스팅)와 엄청난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도 이순지와 정인지가 사돈 간이라 세조가 덮었을 정도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정인지는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 보다 더욱 세종의 뜻을 잘 받들고 그의 문치를 치하하는 학자였으나 수양대군과 함께한 정인지는 권신이었던 것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밀본으로 등장한 한명회, 세종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신숙주 등과 함께 피의 숙청을 실시한 세조 편에 선 것입니다. 드라마 속 상황에 연결해보자면 한글을 만든 천지계원의 핵심이었던 정인지가 한명회의 밀본이 된 셈입니다. 반전도 그런 반전이 없지요. 세조는 '사육신의 난' 때 자신의 청춘을 바친 집현전을 가차없이 폐쇄해 버립니다.

이 세 사람은 친구해도 되는 나이, 정인지의 표현을 빌자면 '동안'입니다.


세종과 그의 '잘난' 아들과 신하들이 만들어낸 비극이 '공주의 남자'라면 누구 보다 앞선 생각을 가진 왕이었던 세종의 업적 한글에 대한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정치란 건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고 장담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믿어서도 안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정기준(윤제문)의 대사는 이런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참, 극중에서 성삼문과 박팽년은 젊디 젊은 도령처럼 나오고 한명회는 노회한 낙방생처럼 보이지만 실제 한명회는 둘 보다 두살쯤 많은 1415년생입니다. 세 사람은 또래입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