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有口無言

소셜테이너를 딴따라로 만들고 싶은 정치인

Shain 2011. 10. 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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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노래부르며 춤추는 사람들을 '딴따라'라 부르며 천시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본래 예술이 배부르면 환대를 받고 배고프면 사치로 여겨지는 법이라 그런지 몰라도 흥겹게 나팔불고 흥을 띄우던 그들의 삶은 거칠고 절망적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전국을 떠돌던 각설이패나 남사당패의 고생을 보았던 까닭인지 사람들은 그들을 비천하다 했고 때로는 한껏 깔보며 하찮게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들로 인해 울고 웃고 삶의 한조각 즐거움을 얻으면서도 그들의 삶을 그리 부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딴따라'의 어원이 나팔부는 소리를 따라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영어 나팔소리인 '탄타라(tantara)'에서 따온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예인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라 부르는 경우도 제법 자주 볼 수 있고(박진영의 노래 '딴따라 부르스' 같은 노래) 일반 대중이 그들을 얕잡아 '딴따라'로 지칭하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입바른 소리를 해도 악플이라 고소하고 애먹이는 정치인들 보다 늘 웃으며 무대에 올라 밝은 이미지를 유지해야하기에 대중들은 '딴따라'를 만만하게 보는 것도 같습니다.

TV 안에서 연기를 하고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이 어째서 남들 보다 비천한 직업이냐.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현대인들이라면 그런 인식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받는 연예인들이란 이유로 매사에 행동을 조심하고 있기는 합니다만 그들 역시 한사람의 생각있는 국민이고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못 살았던 시대에 그들의 삶이 열악해 그리 생각했던 건 과거의 일이고 지금은 오히려 경제적으로 남들 보다 부유한 사람들이 연예인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딴따라' 연예인들이 정치 일선에 나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정권 실세의 요구를 유명 연예인이 거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부 정당에서 한표라도 더 얻어보고자 선거 유세장에 그 후보를 응원하는 인기 연예인들을 동원했습니다. 박수부대에 선거홍보물까지 뿌리던 시대이니 연예인은 그야말로 딴따라였습니다. 유명세의 힘을 빌어 한표라도 더 얻고 싶어 그런 비겁한 술수를 쓴 것입니다. 때로는 특정 정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현정권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맡았던 '유인촌'은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한 드라마에 출연했습니다. 잘 생긴 얼굴에 단호한 말투를 갖춘 배우가 드라마 속 연기에 국민들은 특정인물에 대한 호감을 갖게 됩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에 TV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했고 그때 쌓은 긍정적 이미지가 현 대통령의 당선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드라마의 무대가 된 '군산'을 제 2의 고향이라 부르는 대통령을 보니, 배우 유인촌은 그 때의 '공로'를 톡톡히 인정받은 셈입니다.

배우로서 특정 정치인의 역할을 맡고 초청을 받아 무대 공연을 하는 것이 힘없는 연예인들의 '죄'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TV가 없던 옛날에도 그랬고 그 시절 80년대에도 연예인들은 정치인의 입김 한번에 생존 수단을 잃을 수도 있는 처량한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대중들은 특정 정권의 앞잡이처럼 적극 선동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권력에 영합한 '딴따라'들은 어쩔 수 없다며 경멸하곤 했습니다. 그 시절 연예인들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니 말입니다.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 정치인들이 오히려 굽히는 경우도 있고 일반 시민들 역시 시끄러운 유세장이나 유세차를 통한 선거를 불편해합니다. 과거에 비해 연예인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져 연예인 역시 한명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표현하는 시대입니다. 꼭 정치적으로 누굴 지지하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에 그들은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들의 참여 방식도 다양해져 정치적인 성향을 띈 연예인들인 '폴리테이너'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소셜테이너'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오늘입니다. 이효리, 박중훈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이 트위터에 투표를 독려하는 멘트를 남겼고, 많은 트위터 유저들이 그들에게 호응하며 환영했습니다. 선거를 전후에 인터넷에는 지역감정 유발을 비롯한 각종 정치적 댓글이 난무했고 '투표하자'는 평범한 말에도 일부 악플러들은 '나서지 말라'며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딴따라'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그들, 연예인들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무서워져 경계당하는 대상이 된 것입니다.

박원순 지지를 선언하고 나선 김여진 (이미지 출처 : 미디어오늘)

또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박원순에게 권해효, 이은미, 김여진 등 많은 연예인들이 지지를 선언하며 합류했습니다. 과거 유세장에나 동원되던 연예인들로서는 이례적이지만 시대 변화를 생각하면 반가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의 지지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특정 후보의 멘토 자격으로 또는 일일 대변인 자격으로 나서 응원하는 그들에게 또다른 후보 나경원은 '나도 연예인 부를 수 있다'는 씁쓸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한 사람의 연예인으로서 사회 참여를 선언하고 나선 그들을 과거 선거 유세에 동원하던 '딴따라' 쯤으로 여긴 것입니다.

국민들이 정치인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만큼 돈이면 부를 수 있다고 있던 연예인들도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단 사실이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히 못마땅하게 다가올 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으로 이기는 선거, 즉 선거유세장에 지지 세력을 동원하면 된다고 믿었던 과거와 달라져 이젠 돈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 된다고 믿었는데 돈같은 거 안줘도 자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연예인들, 그들이 괘씸하게 여겨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는 무시하고 천시하던 백성들이 이제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 된 것처럼 연예인들 역시 발언과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이 되었다는 게 반갑지 않은 것이겠죠.

시대 변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이런 변화 역시 당연한 모습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과 후보를 공개하고 정당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시민이야 말로 권력자들과 정치인들이 무서워하는 사람들입니다. 찍으라면 찍고 말라면 말던 시대의 유권자가 변했듯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라던 연예인들도 이제는 변했습니다. 긍정적인 정치 문화의 변화와 정당한 투표권 행사, 그런식의 변화를 본다는 건 분명 즐거운 일입니다. 현재 투표율이 10.9%라고 하던데 서울시장 보궐 선거 결과가 궁금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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