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뿌리깊은 나무

뿌리깊은나무, 세종의 밀명과 가리온이 정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

Shain 2011. 11. 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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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군나미욕(君那彌欲)의 비밀이 풀리고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이 집현전 학자 성삼문(현우)과 박팽년(김기범) 앞에 공개되었습니다. '가나다라'의 초성을 음운학으로 풀어낸 세종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자신이 연구한 서적을 근거로 그 한자가 발음에 따라 구분된 한자임을 알아낸 성삼문도 대단합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고 놀라운 세종의 한글 창제를 지켜본 그들이니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그 순간에도 단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나 봅니다. 위의 모든 장면은 단순히 드라마 속 상황일 뿐이지만 실제로도 세종은 어느날 갑자기 한글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성삼문도 사대부 유학자인지라 중화질서에 입각해 이럴 수 없노라 반발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이에 반대하고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명나라 사신 기제연(김응수) 역시 청평관의 정보부를 움직여 명나라에서 불경과 악기를 수집해간 세종의 수상한 행동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기제연을 찾아 비밀스레 상의한 우의정 이신적(안석환)과 장은성(백서빈)은 세종과 밀본의 관련성을 알아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밀본을 찾는 사람들, 세종의 비밀을 캐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모두를 제 3자의 입장에서 쫓는 강채윤(장혁)이 바빠졌습니다.

드디어 성삼문, 박팽년에게 공개된 한글. 이런 왕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의 한글 개발과정도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가 몰입하고 있는 미스터리는 과연 정기준이 누구냐 하는 점입니다. 정기준은 과거 상왕 태종(백윤식)이 반촌에 조말생(이재용)을 보냈을 때 사라졌고 그 뒤로는 공공연히 흔적을 드러낸 적 없습니다. 사라지는 순간에 이신적을 비롯한 밀본 조직원들에게 밀명을 내려뒀을 뿐입니다. 가상 인물이면서 반촌 도담댁(송옥숙)과 조정을 오가는 인물 중 누가 정기준일까. 그것도 아니면 정기준은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일까. 시청하는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 합니다.

심종수(한상진)는 도담댁을 재촉하는 걸 보니 분명 정기준이 아닌 것 같고 이신적 측근인 장은성도 제외됩니다. 이외에 가리온(윤제문), 개파이(김성현), 한가놈(조희봉) 등이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셋 모두 딱 떨어진다 싶은 조건을 갖춘 것은 아닙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미묘한 과거 때문에 지목했던 가리온의 경우 정기준이 아닌 이유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강채윤에게 밀본지서를 잃었던 젊은 정기준(최우식)의 얼굴을 본 사람이 있으니 굳이 미스터리라고 할 일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는 단순히 본원임을 증명할 밀본지서를 잃었기에 남들 앞에 나설 수 없는 것일 뿐이겠지요.

각기 다른 이유로 밀본 정기준을 찾으려는 조말생과 이신적

밀본의 명으로 집현전 학사들을 살해하고 다닌 밀본의 무사 윤평(이수혁)은 부엉이 소리와 함께 자유자재로 궁을 드나들었습니다. 부엉이 소리는 분명 정도전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궁내에 도움을 주는 자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세종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집현전 학사들이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과연 밀본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그들의 진정한 목적인 무엇일까. 정기준은 언제쯤 사람들 앞에 드러날까. 한글을 남들 앞에 공개할 날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스터리는 점점 더 커져갑니다.



음성학, 무원록, 가리온 만이 할 수 있는 일

가리온은 분명 도적놈들 때문에 아버지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했습니다. 또 어제 방영분에서는 손톱만한 재주 때문이라며 신세 타령을 했었습니다. 소이(신세경, 어린 시절 담이)처럼 잘난 척하다가 가족을 죽게한 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화살에 맞아 죽은 사람이라니 정도광(전노민)과 윤서진(서범식) 두 사람이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당시는 북방을 개척하기 위해 여진, 거란족들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경우가 많았고 어린 똘복이 김종서(최일화), 이방지(우현) 등과 함께 전투하던 그곳에서도 많은 민간인들이 죽어나간게 사실입니다.

윤평이 따로 활약 중이니 최소한 가리온은 윤평은 아닙니다. 또 지난번에도 적었듯 아무리 정기준이 신분을 위장할 필요가 있다고 하나 20여년전 정도광이 죽고 모처로 숨어들 때 사대부들이 가장 천시하던 백정, 그것도 도성에서 제일 솜씨좋은 백정이 되었다는 건 납득하기 힘든 일입니다. 사대부들은 세종의 광대한 업적 중 하나인 과학과 의학, 음악 등을 몹시 반대하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그의 얼굴을 잘 알고 있는 조말생, 이신적과 마주 친 적이 있는데 그들은 가리온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의심쩍은 단서 때문에 가리온은 조말생에게 잡혀갈 위기에 처한다

도담댁이 가리온과 같은 반촌에 거주 중이니 만약 가리온이 밀본의 정기준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정기준이 아니라 윤평의 형, 즉 윤서진의 숨겨진 장남이 아닐까 싶습니다. 도담댁 등은 살인사건 수사 관련 정보를 제법 빠른 속도로 입수하곤 하는데 그 정보를 왕도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발설한다면 과거 주인댁 도련님이거나 잘 아는 사람일 경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한가놈이나 개파이가 아무리 재빠르다 쳐도 가리온 보다 정확한 정보를 주기는 힘든 것이겠죠. 더군다나 가리온은 윤평의 암살 방법인 건익사공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조말생에게 잡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가리온의 말대로 만약 가리온이 진짜 남사철을 칼로 위협한 존재라면 뻔히 도성 안의 백정이 자신 뿐인 걸 아는데 정체가 드러날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 그가 정기준이라면 더더욱 조말생 등과 마주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의 주변인물이거나 혈연관계에 있는 다른 인물이 가리온이 세종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걸 알고 그를 함정에 빠트렸다는 쪽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을 것입니다. 정기준은 사라질 때 밀명을 내릴 정도로 치밀한 성격인데 천한 신분의 슬픔이 뼈속 깊숙히 박힌 가리온은 그런 사대부가 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가리온은 무휼(조진웅)의 소개로 세종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는 '무원록'을 지은 이세형 대감을 따라 중국을 다녀온 인물입니다. '무원록(無寃錄)'은 세종의 명에 따라 세종 20년(1438년) 편찬된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을 뜻합니다. 본래 고려 시대에 전해졌고 중국의 법의학서적인데 최치운, 이세형, 변효문, 김황 등이 주석을 달아 발간한 것입니다. 후대에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재편찬되어 '증수무원록'이 발간되기도 합니다. 극중 가리온이 나름 과학적으로 시신을 검사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 조선판 CSI의 기본 지식을 담은 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가놈, 옥돌이, 개파이, 가리온 반촌의 수상한 사람들

'원한이 없도록 하겠다'는 무원의 뜻에서 알 수 있듯 시신들을 검시하고 정보를 알아내는 이 책을 실용지식으로 만들자면 당연히 실험해볼 사람이 필요한데 책의 저자라는 이세형 등이 그런 일을 실제로 해보았을 리는 없습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서 만이 아니라 그들은 그런 잡학의 이념에 반하는 생각을 가진 유학자일테니 말입니다. 세종의 지식욕이 법의학까지 뻗어나간 건 놀라운 일이지만 그 서적의 이론을 왕명에 따라 테스트해본 사람은 가리온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한가지 더 '가리온' 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한글의 발음 기관 모양을 정확히 그릴 수 있는 사람 역시 가리온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한글 자음이 발음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느냐 아니냐는 이론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한가지 분명한건 개짖는 소리를 비롯한 모든 소리를 표기하는데 가장 적절한 문자가 한글이라는 점이고 한글은 발음 기관의 움직임과 특징을 아주 잘 반영했다는 점입니다. 음운학에 정통한 세종이 만들고자 했던 백성들의 말을 '소리나는 대로 쓰는 문자',  해부학의 일인자 가리온이 제일 잘 증명할 수 있는 과학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심종수에게도 뭔가 예상외의 반전이 있을 것 같단 생각이 얼핏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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