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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이도 6

뿌리깊은나무, 반전의 열쇠는 여전히 개파이와 정기준인가

우리는 10월 9일을 한글날로 기념하고 있지만 실제 한글이 창제되고 반포된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실록에도 '이달'에 창제되고 반포되었다고만 적혀 있어(1443년 음력 12월 30일 창제, 1446년 음력 9월 29일 반포 기록) 처음 '조선어연구회'가 한글날(가갸날)을 정할 때도 음력 9월 29일을 기준으로 양력 10월 28일에 한글날 기념식을 치렀습니다. 이후 발견된 1940년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에 9월 상한이라 적힌 글을 보고 10월 9일로 한글날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창제에서 반포까지 걸린 3년 정도의 세월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편집한 셈입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등장인물이 지키려했던 엄청난 비밀은 '성배'의 정체가 물건이 아닌 여성이었다는 점입니다. ..

뿌리깊은나무, 사대부로 각성한 심종수와 개파이의 변신?

한글의 원리를 설명한 훈민정음 해례를 읽어 보면 세종이 상당한 수준의 유학자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오행에 맞추어 자모음을 설명하고 그 이치를 따진 그 글은 다양한 문장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읽어봐도 쉽게 만들기 힘든 명문입니다. 극중 관료들의 말대로 실제 세종대왕은 유학자로서 최고 경지에 이른 인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또 세종은 평범한 유학자들과는 다르게 '명분'을 추구하면서도 실리를 따지는 면모를 보였던 왕이기도 합니다. 장자 상속을 하라며 양녕의 등극을 주장하던 황희(전성환)가 세종에게 등용된 건 그런 세종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줍니다. 극중 조말생(이재용)도 명분을 따지자면 진즉 내쳤어야 옳치만 조말생은 병조판서를 맡아 대마도를 정벌하는 등 군사적으로 유능한 인물이었습니다. 드라마 '뿌리깊..

뿌리깊은나무, 앞서간 세종의 철학 가리온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한달전쯤 방영된 '뿌리깊은 나무' 11회에는 세종(한석규)이 정윤함에서 정도전에게 술을 올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정도전은 정기준(윤제문)에게 큰아버지이고 사대부들의 비밀 결사조식인 '밀본'의 1대 본원입니다. 가리온은 그곳이 정도전의 넋을 기리는 곳이란 소문을 유생들에게 퍼트렸고 세종 역시 그 소문을 듣고 정도전을 위해 그곳에서 술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실제 정도전의 아들들은 다 살아 있었고 이방원에 의해 복권되어 높은 벼슬에까지 올랐지만 극중 정기준은 삼봉의 대의를 잇는 계승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종도 정도전의 책을 읽고 백성을 위한 정치와 유학을 담은 글자를 창제했는데 같은 정도전의 글을 읽은 정기준은 유학이념을 두고 왕권을 견제하는 밀본을 꾸리고 있으며 한자같은 문자는 사대부 만이 누릴..

뿌리깊은나무, 상것도 노비도 모두 글을 읽고 쓰는 세상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는 집현전이 폐지된 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난 후입니다. 또 한글이 반포된 것도 공개 후 3년이 지난 1446년입니다. 단종이 쫓겨나자 성삼문 등의 학자들은 '사육신의 난'을 일으켰고 그를 계기로 수양은 집현전을 없애버립니다. 지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같은 세종의 학사로 등장하는 성삼문(현우), 박팽년(김기범)은 사육신으로서 죽고 세종 이도(한석규)의 오른팔인 대제학 정인지(박혁권)와 천문학사 이순지(천재호)는 서로 사돈을 맺으며 수양대군의 편에 섭니다. 이러한 집현전의 운명과 별개로 한글은 반포되기까지 꽤 시일이 걸렸습니다. 세종의 한글을 무시하던 가리온 정기준(윤제문)은 너무도 뛰어난 한글의 실체를 알고 경악합니다. 그는 백성이 글을 읽고 쓰게 되면 사대부가..

뿌리깊은나무,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세종의 한글창제

비인간적인 상민(常民)과 천인들의 삶과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양반층의 횡포, 부패한 조정관리들과 권신이 늘어갈수록 무력해지는 왕권, 이런 조선 후기의 풍경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선 초기 유학을 건국 이념으로 삼고 신분제도를 명시할 때는 후손들의 삶이 그렇게 피폐해지리란 건 생각도 못 했을 것입니다. 본래 고려 시대에도 직업별로 신분을 나눈 구분은 있었지만 조선 초기까지는 그렇게까지 신분 문제로 갈등이 심각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중기 이후엔 좀 더 강력한 신분제를 추구하게 되어 후기에는 그런 폐단을 낳게 된 것이죠. 조선은 법적으로는 양천제를 추구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사농공상의 구분이 엄격한 반상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초기에는 국역에 종사할 양인들이 필요해 천민들을 면천하고 양인의 신분을..

뿌리깊은나무, 세종의 밀명과 가리온이 정기준이 될 수 없는 이유

드디어 군나미욕(君那彌欲)의 비밀이 풀리고 세종 이도(한석규)의 한글이 집현전 학자 성삼문(현우)과 박팽년(김기범) 앞에 공개되었습니다. '가나다라'의 초성을 음운학으로 풀어낸 세종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자신이 연구한 서적을 근거로 그 한자가 발음에 따라 구분된 한자임을 알아낸 성삼문도 대단합니다. 세종의 총애를 받고 놀라운 세종의 한글 창제를 지켜본 그들이니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그 순간에도 단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수 있었나 봅니다. 위의 모든 장면은 단순히 드라마 속 상황일 뿐이지만 실제로도 세종은 어느날 갑자기 한글을 공개했다고 합니다. 성삼문도 사대부 유학자인지라 중화질서에 입각해 이럴 수 없노라 반발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이에 반대하고 나설 것이 분명합니다. 명나라 사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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