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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5

계백, 김춘추와 김유신 사이에는 은고가 없었다?

삼국사기와 삼국사기에는 제대로 전하지 않지만 '일본서기'에는 백제의 후궁 은고(恩古)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녀는 의자왕을 부추켜 충성스런 신하들을 죽게 만들고 신라와 내통해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는 등 백제 패망의 원인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백제가 망한 후에는 다른 왕자들과 함께 당나라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과거 SBS에서 방영된 판타지 드라마 '천년지애'에서 신라장군과 내통하던 의자왕의 후궁, '금화'가 이 은고를 모델로 만들어진 역할이며 '연개소문'에서 의자왕에게 술을 따르며 교태를 부리던 후궁 역시 은고입니다. 보통 '요망하다'는 평을 받는 후궁들은 전쟁후 처벌을 받는 경우도 많은데 왕자들과 함께 당에 끌려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은고가 정말 그런 여자였을까. 의자왕에 비해 '계백'의 영웅성을 ..

계백, 타오르는 은고의 분노 사택황후 부활하다

지금은 조각을 잃어버린 고대사의 한부분 백제, 사람들은 남겨진 주변국 기록으로 당시의 백제가 어땠을 지 상상해 보곤 하지만 그들 나라도 사람이 살았던 곳이기에 비슷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볼 뿐 이것이 맞다 그르다 확실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백제는 왜 신라를 자주 공격했으며 신라는 왜 고구려가 아닌 당나라와 손을 잡았을까. 의자왕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왕이었다는데 어쩌다가 신라와 당에게 패망하고 당나라에서 죽음을 맞았는가. 현대사 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된 당시의 역사가 문득 궁금해지곤 합니다.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은 드라마 '계백' 속의 역사가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는 걸 아실 것입니다. '실제 역사' 라는 것도 백제를 폄하한 삼국사기나 진위 여부에 말이 많은 일본서기 정도이니 드라마의 내용이 틀렸다 맞았다 ..

계백, 역모죄에도 교기와 사택황후가 살아난 이유?

현존하는 사료에 기록된 백제사는 매우 짧기 때문에 계백'처럼 30부가 넘는 드라마를 제작하자면 각종 사료와 유물이 다 동원되기 마련입니다. 일단 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자(조재현)의 어머니로 등장한 선화황후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기한 이야기와 종교이야기를 다수 적은 삼국유사대로 설정한 것일 뿐입니다. 또 무왕(최종환)이 최후까지 함께 한 아내가 사택황후(오연수)라는 건 미륵사 금제사리봉안기에서 나온 기록 때문에 유추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의자왕자와 어제 방송에서 쫓겨난 교기 왕자(진태현)의 어머니가 다르다던가 두 사람이 권력 다툼을 했다, 또 은고(송지효)가 의자왕의 왕비였다는 점 등은 무엇을 근거로 설정한 것일까요. 바로 일본서기에 기록된 내용을 기본으로 창작된 것입니다...

근초고왕, 예왕지인과 돌아오다

포스팅 첫부분에 항상 이 드라마 '근초고왕'의 등장인물 반수 이상(아니 어쩌면 삼분의 이 이상)이 가상 인물이며 사서에 기록된 인물이라도 그들의 행적은 모두 창작이라는 점을 꼭 밝혀야할 의무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드라마 방영시간엔 실제 사서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검색해 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근초고왕과 고국원왕의 기록은 한글로 번역해도 네다섯 문단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계시는 위비랑(정웅인)의 책사 아지카이(이인)가 언론에서 밝힌대로 '일본서기'에 등장한 아직기이지만, 근초고왕 시기의 요서, 일본 정복은 항상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드라마는 사서에 있는 내용을 기반으로 절묘하게 짜마춰진 극을 꾸몄기에 근초고왕의 업적과 역..

근초고왕, 아지카이는 누구인가

KBS 근초고왕엔 지난주부터 새로운 인물군이 출연했습니다. 12대 어라하 계왕을 중심으로 백제 한성왕궁의 권력투쟁이 펼쳐지는 한편 요서 지방엔 부여구(감우성) 왕자의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바로 몰락한 동부여 출신으로 부여 재건을 꿈꾸는 단범회 수장인 위비랑(정웅인)과 그의 수하들이 합류한 것이죠. 아직까진 부여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그들은 나라를 건국하기 보단 자금을 모으는 수적에 불과합니다. 부여구의 할아버지 흑강공 사훌(서인석)은 평소 부여유민들을 살갑게 대해 늘 거둬주었다고 합니다. 일시적으로 위비랑과 부여구가 뜻을 같이할 수 있었던 건 소금장원을 장악한 해건(이지훈)과 부여산(김태훈)이 부여유민을 노예로 팔아먹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부여구와 힘을 합쳐 유민을 구해내고 장원을 차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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