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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빈 김씨 5

태종 이방원, 불쌍한 양녕대군의 첩 어리의 비극적인 결말

궁중에서 일어난 일은 보고도 못 본 척하라는 표현이 있죠. 작서의 변(灼鼠之變) 사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 일을 어떻게 남들이 아나 싶지만 곳곳에서 볼 사람은 많고 들을 사람도 많죠. 됩니다. 어떻게 봤지 싶은 곳에서 증언이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곤 하죠. 어리(임수현)의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일러도 어디에선가 목격담이 등장합니다. 양녕(김태리)은 세자 자리에서 물러난 후 깜쪽같이(남들에게 감시는 당하는 상황) 사라진 일이 있는데 덕분의 양녕의 아내 숙빈 김씨와 장인 김한로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양녕대군 때문에 화가 난 김한로와 숙빈은 찾아도 보이지 않자 어리에게 화풀이를 했고 그때 어리는 자결을 합니다. 숙빈도 속이 터지고 김한로도 화가 날만 하고 - 어리만 불쌍한 노릇이..

태종 이방원, 짠돌이 유정현과 급하게 혼인하는 경정궁주

태상왕 이방원은 이름에 걸맞게 자신을 어서 베라 말합니다. 그런데 혈기 왕성한 나이라도 측은지심이 들게 생겼는데 이제 60이 넘은 이성계를 30대 조 중반의 이방원이 감히 어떻게 베겠습니까. 이성계는 그 말이 진심이었는지 몰라도 - 어떻게 보면 '내부의 싸움'인데 - 신하들에게 내부 사람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계속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정리하는 게 좋지요. '조사의 난'이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우리들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습니다. 작은 크기라 '에게'하며 넘어갔을 수도 있고 아니면 큰 규모 때문에 겁을 먹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피'를 보지 않고 부자간의 싸움은 정리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서 이방원은 이방간, 이방의 의 난을 무사히 넘겼고, 이번 태조 이성계와의 싸움..

태종 이방원, '이비'를 낳은 효빈 김씨, 태조가 일으킨 '조사의 난'

궁에서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조사의 난'은 사람들이 쥐도 새도 조용히 사라진 사건입니다. 역사에 기록된 인물들이 기록도 없이 일주일간 없어진 것이죠. 이방원은 한 일주일 정도 사관과 궁궐 사람들도 모르게 궁궐 안에서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동북면 일대에 나타나서 갑자기 군사들을 통솔하죠. 이 과정이 비밀리에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태조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군대가 패해서 사라지기도 합니다. 아마도 태조가 군사를 끌고 직접 다른 곳에 다녀간 곳으로 추정합니다. 그때까지 북방에 대해서 그동안 소홀했던 건 사실입니다. 일단 관련된 일을 모든 일을 비밀에 부치기로 하고 사람들을 파견합니다. 조사의 난은 그렇게 감춰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현비(신의왕후, 예지원)는 조사의의 인척이었다고 ..

태종 이방원, 원경왕후의 눈물과 태종의 단호한 대처

태종은 가까이 지내던 후궁 효빈 김씨(이주은)가 승은을 입은 것을 알게 되자 원경왕후에게 '네 잘못이 아니다'며 내일 사가로 돌아가라 지시합니다. 후궁은 내명부 소관이니 첩으로 지내던 어린 효빈이 수발이나 들 줄 알았지 뭔가 다른 일을 시킬 거라 생각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후 들어온 나인(김미라)은 이 후궁을 모질게 나무랍니다. 원경왕후(박진희)는 궁중의 법도에 따라 효빈 김씨에게 가벼운 벌을 내린 것일 테지만 이후 들여보내라는 명은 내린 적이 없었죠. 사실 이미 반쯤 질투에 속이 뒤집혔을 원경왕후가 그 말이 잘 들리기나 했을까요. 그는 이미 태종의 방문 고리에 손을 댔다가 멈춘 적이 있습니다. 씨앗 싸움은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엤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아들을 낳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드라마와 문화 2022.04.02

태종 이방원, 역적이 되겠다고 선언한 원경왕후의 행보

원경왕후는 홧김에 역적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하는 행보를 보아하니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태종은 원경왕후(정비)가 사병 혁파를 거부감을 보인 일로 상당히 마음이 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꽤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는데 그중에는 파면된 이천우(일단 죽지는 않았어요) 같은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천우는 태조 이성계의 조카로 조정의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조영무는 사병 혁파를 이유로 이방원의 명을 거절하고 그 때문에 직접 무기를 손수레로 끌고 오는 장면이 인기를 끌었는데 사병 혁파는 그렇게 민씨 집안이 단속할 정도로 저항이 큰 제문였제습니다. 결국 마무리도 일단 민씨 집안의 뜻을 따르기로 해서 넘어갈 수 있었던 거죠. 사병은 누구에게나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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