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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제왕, 드라마 키드는 헐리우드 키드와 달랐다

Shain 2013. 1. 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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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드라마가 뭐길래 사람들이 TV를 보며 울고 웃을까. 어떤 사람들은 드라마에 열을 올리는 시청자들을 보며 그런 하찮은 것에 시간을 낭비한다며 비웃기도 합니다. 그러나 드라마는 영화, 소설이나 음악같은 작품처럼 지구상에서 인간이 아니면 그 어떤 생명체도 누릴 수 없는 오락거리입니다. TV가 보급되기 전, 영화가 발명되기 전부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형식을 통해 '드라마'를 즐겼습니다. 시청자들은 TV나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드라마가 '가짜'라는 걸 알면서도 그속에 빠져들고 이야기에 동참합니다.

'드라마의 제왕'을 처음 시청했을 때 느낀 기분은 아 드디어 제작자와 방송국이 드라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이야기하려나 보다 하는 호기심이었고 두번째로 느낀 감정은 어디선가 본듯한 익숙함이었습니다. 냉정한 드라마 제작자 앤서니김(김명민)이 토로한 드라마에 대한 감정은 어릴 때 읽었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2)'에서 본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시대의 '드라마'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매체가 예전에는 '영화'였습니다. 헐리우드식 판타지로 꾸며진 옛날 영화 말입니다.

삶이 고단했던 한 소년에게 드라마는 어떤 의미였나. '드라마'를 주제로 끌어들이다.

안정효의 소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꽤 오래전에 읽어 세세한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가지만은 선명하게 인상에 남아 있습니다. 현실이 험악하고 거칠수록 사람들은 꿈을 꾸길 원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배고프고 도망칠 수 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꿈을 꾸고 어떤 사람들은 그 꿈에 빠져 인생을 망쳐버리기도 합니다. 소설 속 '헐리우드 키드'였던 임병석은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그 영화를 자신의 현실로 끌어들이지도 못했고 오히려 그 판타지에 함몰되고 맙니다.

반면 '드라마 키드'라고 할 수 있는 앤서니김은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비참한 현실에서 도망쳤다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그 꿈에 휩쓸리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는 힘으로 삼습니다. 냄새나는 극장에서 헐리우드 영화를 보던 소년과 혼자서 TV를 보며 즐거워하던 가난한 쪽방촌 소년이 겪어야했던 현실은 똑같이 비참했지만 한쪽은 비극적이며 불운한 천재가 되어야했고 나머지 한쪽은 끝까지 드라마를 포기하지 않는 '제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현실적으로 완벽한 성공도 아니고 '오디오 드라마'라는 변형된 모습이긴 했지만 말입니다.

'헐리우드 키드'는 영화를 꿈꾸며 길을 잃었지만 '드라마 키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드라마의 제왕' 속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 갈등하며 때로는 날카롭게 벼린 속내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 등장인물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돈 밖에 모르는 것 같았던 앤서니김도, 드라마 제국을 꿈꾸던 제국회장(박근형)도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하는 남운형(권해효) 국장이나 자존심 세우기 좋아하는 배우 성민아(오지은)와 CF 수익만 노리는 멍청한 배우 강현민(최시원)도 술주정뱅이에서 멋진 감독으로 다시 태어난 구영목(정인기)도 또 보조작가에서 스타작가로 거듭난 이고은(정려원)도 모두 드라마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앤서니김의 말대로 스태프와 작가들은 밥도 제대로 못먹고 씻지도 못하고 허름한 곳에서 쪽잠을 자는 삼류같은 생활을 버티며 아슬아슬한 쪽대본으로 촬영하는 이유는 드라마를 찍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제작비 때문에 스케줄이나 시청률 때문에 이건 안되고 저건 안되니 목소리 높여 싸워도 결국은 드라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촬영을 하며 서로 협력하고 목숨 걸고 테이프를 방송국으로 가져갑니다. 악조건 속에서 버티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그 힘의 원천은 오로지 드라마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입니다.

목숨걸고 찍는 그들의 드라마. '좋은 드라마'란 대체 뭘까.

제작사 대표, 작가, PD, 배우, 스태프, 방송국 사람들에겐 '사람들과의 약속'인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가난한 소년 앤서니김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와 육성회비도 내지 못해 두들겨 맞는 잔인한 현실을 드라마를 보며 잊습니다. 그래서 앤서니김은 퀵서비스 업체 직원의 죽음에도 녹화 테이프를 들고 방송국으로 달려가는 냉혈한 제작자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목빠지게 드라마를 기다리며 현실 속의 고단함을 잊는다는 사실을 직접 겪어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 빠져 현실에서 도망치는게 아니라 현실에서 힘을 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헐리우드 키드'가 환상 속에서 길을 잃었지만 '드라마 키드'인 앤서니김은 어머니와 가난했던 과거를 모른척한 자신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이고은과 함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어쩌면 이런 점은 소통의 방향이 일정한 영화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드라마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제작자의 손을 떠나 스크린에 걸리면 더 이상 손을 볼 수 없지만 드라마는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연장되기도 하고 방향이 바뀌기도 합니다. 받아들이기만 했던 관객이 시청자로 바뀐 것처럼 '드라마 키드'는 보다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드라마'라는 주제를 '드라마' 안으로 끌어들이다.

'드라마의 제왕'은 시청률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에겐 '좋은 드라마'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고 또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드라마틱'한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한 한편이었으나 제작자와 시청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 무조건 호평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 봅니다. 김명민의 명연기나 등장 배우들의 열연에도 시청률 하락은 막을 수 없었겠지요. 방송국과 제작자 입장에서 '좋은 드라마'가 시청자에게 좋은 드라마란 법도 없고 시청자에게 인기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모두 좋은 드라마는 아닙니다.

한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드라마의 제왕'이 조금 더 진지하게 드라마에 접근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점입니다. 시청률과 막장 드라마 때문에 고민하는 제작자들의 고민이나 어떤 장르의 드라마를 선택해도 왜 똑같은 종합 멜로 통속극이 되고 마는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보는 건 어땠을까요. 영화가 대중들을 향한 메시지라면 드라마는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드라마는 시청자와 제작자들의 공감에서 태어나는 게 아닐까요. '드라마'를 시청자들의 드라마 속으로 끌고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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