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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26

출연료로 평가할 수 없는 '정도전' 배우들의 자부심

배우 박영규의 이인임 연기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메소드 연기'를 언급했습니다. 메소드 연기란 한마디로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뜻입니다. 역을 맡은 동안은 모든 일상을 그 캐릭터에 맞춰 행동합니다.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실제 고려 역사 속의 이인임같다며 극찬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실제 역사속 인물과 드라마 '캐릭터'는 별개의 인물이지만 박영규는 시청자에게 또다른 이인임을 보여줍니다. 박영규 외에도 '정도전'의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의 신'들이죠. 평소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지만 그들이 '해피투게더'에 출연한다기에 모처럼 시청했습니다. 사극 배우들이 예능에 나온다는 자체도 특이한 일이거든요. 방송 시간 내내 배우들의 카리스마가 프로그램을 압..

정도전, 패자 아닌 혁명가로 다시 태어난 정도전

삼봉 정도전이 죽고 난 후 이성계와 이방원에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역사에 관심없는 분들이라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성계는 개국공신들과 동생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태종 이방원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신덕왕후의 유일한 소생인 경순공주를 출가시키고 궁을 떠나버립니다. 그 때문에 보내기만 하면 죽는다는 함흥차사와 태조가 태종을 활을 쏘아 죽이려 했으나 하륜의 조언으로 굵은 기둥을 설치한 덕분에 살았다는 야사가 전해졌습니다. 태종은 늙어서 기운 빠진 아버지를 걱정했다기 보다 이성계가 전국을 떠돌며 민심을 동요시키고 신덕왕후 강씨의 친척이 일으킨 '조사의 난'이 이성계의 반란이란 말까지 나오자 정치적으로 이성계를 경계할 수 밖에 없었던 것같습니다. 가족을 가장 경계해야하는 이성계 집안의 비극이 시..

정도전, KBS의 제작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사극

KBS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수신료 인상을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동안에도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드라마가 바로 '정도전'입니다. 드라마 제작사로서 KBS는 다른 공중파나 케이블에서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몇가지 장점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사극입니다. KBS는 국영방송으로 출발해 '수신료'라는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타 방송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80년대 사극에 엄청난 공을 들여 드라마 사상 최초로 가체와 대례복을 구현한 MBC가 지금은 국적 불명의 퓨전사극만 제작하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제작비 때문입니다. 더불어 수십년 동안 사극을 제작한 오랜 경험이 KBS 사극의 또다른 장점입니다. 모두가 KBS 직원이던 과거와 ..

정도전, 태종 이방원과 무덤없는 정도전의 600년 대결

고구려가 멸망한 후 확보한 통일신라의 영토가 조선 보다 좁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삼은 현재의 국경선을 확보한 건 조선 세종 때의 일(4군 6진)입니다. 한때는 거란족이 한때는 여진족이 강성하던 북방을 확보하는 일은 고려, 조선 모두의 논쟁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소위 '북벌(北伐)'은 꼭 필요한 정치적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와의 사대관계가 정착된 이후 뜸해졌고 정도전의 대사대로 여진족이 번성하여 청나라가 세워진 이후 잠시 효종이 북벌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이후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극중에서는 공민왕(김명수), 최영(서인석), 우왕(박진우) 등이 강행한 요동정벌을 정도전 역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동반도는 세종이 확보한 4군 6진 보다 좀..

정도전, 이방원의 야심 그리고 태조와 정도전의 경복궁 잔치

태조 이성계는 전형적인 무장으로 상당히 체격이 컸습니다. 아들 중에는 젊을 때부터 전쟁터를 따라다닌 이방과(정종)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 기골이 장대했는데 이방원은 그런 글귀가 보이지 않고 문과에 급제한 것으로 보아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사람이 모든 것에 뛰어날 수는 없으니 이성계가 궁궐의 작명, 각종 제도와 서적 편찬을 정도전에게 맡길 수 밖에 상황이나 정종이 왕위에 욕심내지 않고 이방원에게 자리를 물려준 속사정을 이해할만도 합니다. 적어도 그들은 남에게 맡겨야할 일과 내가 직접 해야할 일의 차이를 알았던 거지요. 어쨌든 함경도 사투리쓰는 태조 이성계(유동근)는 경복궁에 훈신들을 불러모아 흥겨운 연회를 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395년 10월 30일의 일입니다. 인..

정도전, 현대인에 맞춰 해석된 정몽주의 마지막 저항

요즘같은 시국이 어수선한 선거철이 되면 미디어를 유심히 지켜보게 됩니다. 역사를 바탕으로 만든 '사극'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단순히 오락을 위한 소모적인 컨텐츠로 생각하지만 드라마 때문에 '바뀐' 것도 예상외로 많습니다. 특히 역사적 사실을 현대에 맞춰 재해석한 사극의 경우 권력과 영웅, 민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기 마련이라 한때 정치권의 사극에 대한 외압이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성계의 군사 쿠데타를 통한 조선 개국을 묘사하고 있는 드라마 '정도전'도 그런 면에선 예외가 아니죠. 고려 멸망과정에서 권력이 지옥임을 깨달은 이성계(유동근)와 이상국가를 꿈꾸는, 순진한 정도전(조재현)은 지금까지의 해석과는 또다른 관점입니다. 권력자가 한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가와 국민이..

정도전, 최영의 죽음과 지옥의 뜻을 이해한 이성계

현대 사회는 직접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대량 학살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미사일 버튼 신드룸이라고 하던가요. 굳이 전쟁까지 가지 않더라도 폭탄이나 인재를 통해 사람이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직접 칼이나 도끼로 사람을 죽이던 과거 보다 살인에 대한 죄책감이 덜한 것같습니다. 실제 역사 속의 인물들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 알 수 없으나 '정도전'의 캐릭터 최영(서인석)과 이성계(유동근)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왜구와 홍건적을 죽인 노련한 장수들입니다. 그들이 살인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이유는 한점 부끄럼없이 고려를 위해 적들을 죽였다는 신념 때문이겠죠. 스스로를 거골장이라 자조하는 이성계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입만 살아있는 정치가들은 다릅니다. 최영이란 인물이 단 한번도 사리사욕을 ..

정도전, 귀족 세력의 마지막 저항 조민수와 조준의 전제개혁

조선을 세운 역사영웅 이성계가 아닌 인간 이성계는 꽤 비극적인 가족사의 주인공입니다.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동지들을 배신하며 새로운 나라를 세운 대가라고 해야할지 그와 뜻을 같이한 인물들은 대부분 이성계 보다 먼저 죽었고 자식들은 권력 다툼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드라마 '정도전'에서 이성계의 조선개국이 천명이었음을 강조하는 듯한 묘사가 탐탁치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인간 이성계라는 관점에서는 옳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역사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고 맙니다. 이성계(유동근)의 의형제로 묘사되는 이지란(선동혁)도 이성계가 죽을 때는 이미 승려가 되어 곁에 없었다고 합니다. 나라를 건국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 이성계였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전, 이성계를 믿었던 사람은 모두 배신당했다

위화도회군은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지은 역사적 사건으로 조선의 개국 세력이 한 곳으로 뭉치는 계기가 됩니다. 고려의 실질적인 기둥이나 다름없던 이인임, 최영은 위화도회군이 일어난 1388년에 죽었고 우왕도 그 해에 물러났습니다. 역사 속의 이성계는 군사 5만의 지휘권을 차지할 수 있는 요동정벌이란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최영의 무모한 야욕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군한 것일까 궁금하지만 역사의 주체는 틀림없이 이성계였죠.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성계(유동근)에게 역성혁명을 주도할 아무런 욕심이 없지만 날씨 때문에 위화도 회군을 해야했고 그로 인해 조선 개국에 휘말린 것으로 묘사됩니다. 은밀히 이성계를 움직이는 것은 물론 정도전(조재현), 윤소종(이병욱), 이방원(안재모)을 비롯한 개혁세력..

정도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과연 천명이었는가?

조선 왕조는 개국 초기 자신들의 역성혁명이 정당했음을 기록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고려는 우왕의 실정으로 국고가 텅텅 비었고 국내외적으로 어려웠지만 백성들은 귀족들에게 수탈당하고 왜구와 홍건적이 침입하는 국내 정세 때문에 조선 왕조의 개국을 무작정 환영할 수 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다 이론에 조금씩 차이는 있습니다만 사대부들에게 '충성'은 통치의 중요 덕목 중 하나입니다. 백성에게 충성을 강요하기 위해서 모범을 보여야할 지배세력이 '역성혁명'을 일으켰을 땐 그에 합당한 명분과 이유가 있어야 했죠. 그 덕분에 우왕과 창왕은 왕씨 집안의 정식 후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신씨가 되었습니다. 신우와 신창, 시호도 주어지지 않고 이름으로 불리는 왕입니다. 건국 세력의 반대파이자 가장 큰 방해물이었던 최영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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