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태종 이방원과 무덤없는 정도전의 600년 대결

Shain 2014. 6. 23.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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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가 멸망한 후 확보한 통일신라의 영토가 조선 보다 좁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을 경계로 삼은 현재의 국경선을 확보한 건 조선 세종 때의 일(4군 6진)입니다. 한때는 거란족이 한때는 여진족이 강성하던

방을 확보하는 일은 고려, 조선 모두의 논쟁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소위 '북벌(北伐)'은 꼭 필요한 정치적 관심사였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와의 사대관계가 정착된 이후 뜸해졌고 정도전의 대사대로 여진족이 번성하여 청나라가 세워진 이후 잠시 효종이 북벌을 계획하기도 했으나 이후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극중에서는 공민왕(김명수), 최영(서인석), 우왕(박진우) 등이 강행한 요동정벌을 정도전 역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방원이 반발하긴 했지만 북벌은 꼭 필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사병혁파와 요동정벌을 계획한 정도전.

 

요동반도는 세종이 확보한 4군 6진 보다 좀 더 북쪽의 땅입니다. 이성계는 사불가론을 내세워 요동정벌에 반대한 적이 있고, 이방원 역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반대하고, 사대주의를 외치는 조준(전현)을 비롯한 신하들도 반대하지만 후계 문제로 고민하던 당시 명나라의 상황을 볼 때 정도전의 주장은 일면 타당했습니다. 땅이 넓은 나라가 구석구석 신경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죠. 주원장(조광유)은 장남이 죽고 손자에게 왕권을 물려줄 상황이었는데 넷째 주체(영락제)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죠. 주원장이 건국 세력을 숙청하며 내부를 단속하고 외적으로는 조선의 정도전을 '화의 근원'이라 부르며 비난하고 압송을 요구한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한 나라를 세울 때는 동지였고 충실한 신하였던 자들이 권력을 잡고 나면 제일 먼저 숙청해야할 대상이 됩니다. 주원장이나 이성계, 이방원 모두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안정된 권력과 탄탄한 후계를 위해 힘있는 인물들을 하나 둘 제거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으로 공동의 적을 쓰러트리고 나면 옆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가 가장 큰 적이 되버리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또다른 파워게임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후계자로 지목된 이방석(박준목)에 반발한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정권을 쥔 이방원도 사병을 혁파한다. 다양하게 해석가능한 정도전, 이방원의 권력싸움.

 

사실 극중에서는 이방원에게 반감을 가진 정도전이 이성계와 신덕왕후(이일화)에게 이방석의 인물됨을 보고 세자로 추천한 것처럼 묘사됐지만 이미 나이가 들어 다루기 힘든 이성계의 아들들 보다는 어린 방석이 권력을 휘두르기엔 나아서 방석을 지지했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정도전의 죽음은 건국 초기에 흔히 일어나는 숙청 과정의 일부인 동시에 한 나라의 권력이 안정되기 직전 일어나는 집권 세력들 간의 알력다툼이기도 합니다. 한때는 죽음을 결정하던 정도전이 그 누구 보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대상이 됩니다. 상황에 따라 입장이 뒤바뀌는 모습이 흥미롭죠.

요동정벌을 반대하며 정권을 잡았던 이성계가 다시 요동정벌을 주장하고 독재자 이인임(박영규)에게 반대하며 '고려'라는 오백년 묵은 괴물을 무너트렸던 정도전이 다시 권력자가 되어 젊은이들의 비난을 받고 요동정벌을 반대하며 명나라와 협력한 이방원이 사병을 혁파하고 아들 세종이 4군 6진을 개척하고. 정도전이 벌이는 일들 대부분은 누군가가 언젠가는 해야하는 일입니다. 어쩐지 이성계에서 이방원으로 이인임에서 정도전, 하륜(이광기), 이숙번(조순창)으로 이어지는 그들의 힘싸움. 어쩐지 시기가 지날수록 점점 등장인물들의 그릇이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비겁하게 묘사된 정도전의 죽음, 진실은 무엇일까

 

정도전이 주장한 사대부 중심의 정치와 민본주의 보다는 강한 군주를 원하는 이방원의 욕망이 시대적으로 자연스럽긴 합니다. 왕이 한 나라의 중심인 시대에 정도전의 주장은 많은 반발을 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법과 역사 정치적 체계는 오래도록 이어진 반면 이방원이 처가식구들과 사돈들을 처벌하며 손에 쥔 권력은 세종 임금 때만 무사했고 문종, 단종을 거치며 다시 한번 피를 부릅니다. 이방원은 가까운 사람들을 죽이며 강력한 왕권을 추구했지만 후대의 조선은 사대부의 신권정치를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변해버렸습니다.

승자 이방원이 기록한 정도전의 역사는 비겁하다. 진짜 정도전은 어떤 모습으로 죽었을까?

 

이방원은 정도전의 죽음을 폄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은(극중 임대호)의 첩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갑작스런 공격을 받고 도망치며 목숨을 구걸하다 목이 잘려 비참하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삼봉집'에 적힌 '자조'란 시를 보면(송현방 정자 한 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네) 평소 꼿꼿했던 정도전의 죽음이 비굴하거나 비겁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진 않습니다. 남달랐던 정도전의 기개를 집중조명한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끝까지 과업의 달성을 아쉬워하며 이방원에게 충고하는 정도전을 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어쩌면 이인임처럼 이방원에게 '불행'과 '괴물'을 예언하지는 않을런지요?

이방원에게 죽은 이후 정도전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고 고종 때 경복궁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그의 공적이 발견되고 개국공신으로 복권이 되긴 했으나 정도전의 무덤 조차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입니다. 1989년 과천에서 전설을 근거로 목이 잘린 시신과 조선 백자들이 묻힌 한 무덤을 발견했으나 그게 정말 정도전의 무덤인지는 확실하지 않고 현재 사당에서 모시고 있는 무덤은 가묘입니다. 무덤의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듯 살아남은 승자는 이방원이고 정도전은 오랫동안 역적이자 간신입니다. 허나 6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서울시에 남겨진 이름이나 그의 업적은 그 어떤 왕도 이룩하지 못할 만큼 획기적이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이성계와 정도전, 이방원과 하륜은 목적도 그릇도 달랐다.

 

 많은 판타지 드라마들이 변명으로 쓰고 있는 '퓨전사극'이란 용어는 원래 역사서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을 위한 것입니다. 한 나라를 발칵 뒤집었지만 사서에는 짧게, 역적으로만 기록된 임꺽정이나 장길산 혹은 허준이나 대장금같은 인물들을 위해 가상의 역사를 창작하는 것입니다. '정도전' 역시 주인공 정도전이 자신이 '밥버러지'라는 걸 깨닫기 위한 장치로 가상의 민중인 양지(강예솔), 황천복(장태성) 등을 등장시킵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사극에서 어떤 부분이 창작되어야하고 어떤 부분은 사실대로 묘사되어야하는지 그 경계를 분명히 한 드라마인 동시에 앞으로 사극이 어떻게 발전해야할지 그 표본을 보여준 작품입니다.

드라마 '정도전'은 역사에 충실한 동시에 역사를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진정한 '퓨전' 입니다. 사서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묘사하면서도 자칫 평면적으로 흐를 수 있는 역사속 인물들을 입체적 캐릭터로 재해석합니다. 그동안 영웅으로 묘사되던 이성계(유동근)는 자신의 거골장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짓는 여린 인간으로 책사 이미지가 강하던 정도전(조재현)는 한 나라의 기획자로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이방원(안재모)은 인간적 면모가 모자란, 부족한 남자로 변신합니다. 조선 건국을 '개혁'으로 받아들인 작가의 해석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인물이 이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하는 점에서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들의 승리가 과연 무덤도 남기지 못한 정도전 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짧다면 짧은 이 사극 한편으로 보수와 진보의 진정한 의미, 권력을 쥐게 된 인간의 불행과 강력한 권력의 폐해, 이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고난, 좋은 정치의 의미를 두루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과거를 기준으로 현대를 생각하려면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대입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때문에 정도전의 죽음에 대한 해석 역시 탁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역사 속의 승자는 정도전이 아닌 이방원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권력의 그늘이 얼마나 짙었는지도 알기에

이름으로 살아남은 정도전이야말로 진짜 승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회가 기다려지면서도 동시에 아쉽기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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