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출연료로 평가할 수 없는 '정도전' 배우들의 자부심

Shain 2014. 7. 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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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영규의 이인임 연기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메소드 연기'를 언급했습니다. 메소드 연기란 한마디로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로 변신한다는 뜻입니다. 역을 맡은 동안은 모든 일상을 그 캐릭터에 맞춰 행동합니다. 드라마 '정도전'의 이인임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실제 고려 역사 속의 이인임같다며 극찬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실제 역사속 인물과 드라마 '캐릭터'는 별개의 인물이지만 박영규는 시청자에게 또다른 이인임을 보여줍니다. 박영규 외에도 '정도전'의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의 신'들이죠. 평소 예능 프로그램을 잘 보지 않지만 그들이 '해피투게더'에 출연한다기에 모처럼 시청했습니다. 사극 배우들이 예능에 나온다는 자체도 특이한 일이거든요.


사극 배우들 특유의 자부심이 느껴졌던 '해피투게더'


방송 시간 내내 배우들의 카리스마가 프로그램을 압도하더군요. 짧은 장면으로 캐릭터를 드러내는 사극 배우들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무게감이 대단했고 사극 배우들 특유의 '서열'이 흥미로웠습니다. 사극 배우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이 보였고 저 사람들이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내공 덕분에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구나 싶었습니다. '난 잘 났다'라고 대놓고 말은 하지 않는데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그들의 자존심에 긍정하게 만들더군요. 특히 출연자 모두가 80년대에 데뷰했다는 사실은 사극배우들의 연륜이 쉽게 쌓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합니다.


'정도전'의 등장인물들은 역사속 인물들로 만들어진 캐릭터라 하나같이 진지하고 중압감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해피투게더'에서 자신의 배역을 벗고 배우의 민낯을 드러내는데 그 모습이 반갑고  친근했습니다. 주인공 '정도전' 역할의 조재현은 '대사는 안 외워도 댓글은 읽는다'며 캐릭터 정도전과는 다른 소심함을 보여줬고 네티즌들이 드라마 초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했던 댓글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더군요. 늘 차분하게 상대방을 보며 웃던 이인임 역의 박영규가 미달이 아빠 특유의 촐싹대는 캐릭터를 보여줄 땐 역시 저 배우는 카멜레온이다 싶었습니다.


캐릭터가 아닌 배우의 성격까지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나이상으로는 막내면서 배우 데뷰 서열로는 절대 밀리지 않는 하륜 역의 이광기는 출연 비중도 상대적으로 적었고 네 사람 모두를 형이라 불러야했지만 '하륜'의 존재감 만큼은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성니메'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선동혁이 소리를 잘 하고 박영규와 동창이란 뜻밖의 사실도 공개되었고 다섯 사람 중 가장 무서울 거 같은 유동근이 사실은 바람잡는데 선수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박영규는 노래를 조재현이 춤을 추었던 것도 잘 보면 유동근의 바람잡기 덕분이거든요. 이 사람들 '정도전' 끝나고 '해피투게더'에 출연하지 않았더라면 답답해서 어떻게 참았을까 싶었습니다.


박영규가 정극에 능숙한 배우로 사극이나 시대극 출연을 통해 연기력을 증명한 적이 있음에도 '순풍산부인과(1998)' 미달이 아빠 역 때문에 코믹한 배우로 자주 인식되는 것처럼 역사속 캐릭터로 재탄생해야하는 사극 배우들에게 예능 출연은 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명(2013)'이나 '계백(2011)'에 출연했던 송지효가 연기자로서가 아닌 예능 출연자로서 종종 인식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때문에 일부 사극 배우들 중에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자제하는 배우도 있다는데 어제 '해피투게더'같은 경우 사극 배우라는 선입견 때문에 숨겨왔던 그들의 입담과 끼를 마음껏 발산한 기회였던 것같습니다.











'정도전'을 통해 정통사극이 부활하고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만 퓨전사극의 범람으로 한동안 정통사극 연기자들이 빛을 보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정통사극 제작이야 말로 공공재인 KBS의 의무이고 공중파의 사명이어야하지만 시청률 때문에 평가절하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경우 사극 배우들은 속어로 '군기'를 중요시할 정도로 서열을 세운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하지 않고서는 빡빡한 현장 분위기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배우의 스케줄을 사극 촬영에 맞추지 않고 겹치기 출연을 하거나 지각하면 퇴출되는 경우도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극 배우라는 자부심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것이 사극 촬영이라고 하더군요.


유동근 하면 '용의 눈물(1996)' 등으로 이미 한번의 전성기를 맞았던 배우고 사극 배우의 대명사같은 인물입니다. 그런 대배우의 출연료와 사명감에 대한 철학은 사극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실제로 기존 출연료의 반액 정도로 출연을 수락했다는 자막 내용처럼 정말 인기와 출연료 때문이라면 사극 배우가 아닌 스타 연기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선동혁이 언급한 배역에 대한 중독성이 '정도전'을 명품으로 만들었다는 말에 수긍이 가는 대목이죠. 만들기도 어렵고 히트하기는 더더욱 어려운 사극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은 어쩌면 사극 배우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사극 촬영의 어려움과 배우로서의 자부심. 명품 사극의 탄생 비결.


뭐 그런 사극의 의미를 제외하고서도 '회상신에 등장하면 출연료의 반이 나온다'는 직업 비밀 공개되는 장면도 너무 웃겼고 배우들끼리 농담을 주고 받으며 기분좋게 웃는 장면도 흐뭇해서 보는 내내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선동혁이 뜬금없이 이마를 얻어맞은 애드리브 장면를 폭로하는 장면이나 평소에 많은 걸 속에 담고 있는 듯이 꽁하게 털어놓는 조재현도 웃겼습니다. 막내 이광기와 주거니 받거니 장난치는 박영규는 역시나 명불허전입니다. 마지막엔 왜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가 가장 공들인 캐릭터라는 정몽주 임호씨가 안나왔나 했더니 상대방송국에 출연중이라 못 나왔다는 재밌는 내용도 알게 되었구요.


그 어떤 직업이라도 어느 정도 연륜이 쌓이면 자신의 경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됩니다. 배우들도 수십년 연기경력이면 스스로의 연기력에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게 당연합니다. 하물며 그 어렵다는 사극 연기자들이라면 어디가서 '배우'라고 말하는데 부끄러움이 없겠지요. 유재석이나 박미선같은 MC들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사극 배우들의 존재감. 어제 방송은 '정도전' 출연자들의 뜻깊은 자부심이 잘 드러난 방송이라 더욱 보기 좋았던 것 같습니다.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씩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얼굴을 보았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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