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정도전

정도전, 이성계를 믿었던 사람은 모두 배신당했다

Shain 2014. 4. 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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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도회군은 고려의 역사를 마무리지은 역사적 사건으로 조선의 개국 세력이 한 곳으로 뭉치는 계기가 됩니다. 고려의 실질적인 기둥이나 다름없던 이인임, 최영은 위화도회군이 일어난 1388년에 죽었고 우왕도 그 해에 물러났습니다.  역사 속의 이성계는 군사 5만의 지휘권을 차지할 수 있는 요동정벌이란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최영의 무모한 야욕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회군한 것일까 궁금하지만 역사의 주체는 틀림없이 이성계였죠.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성계(유동근)에게 역성혁명을 주도할 아무런 욕심이 없지만 날씨 때문에 위화도 회군을 해야했고 그로 인해 조선 개국에 휘말린 것으로 묘사 됩니다. 은밀히 이성계를 움직이는 것은 물론 정도전(조재현), 윤소종(이병욱), 이방원(안재모)을 비롯한 개혁세력들이죠.

 

최영을 탄핵하고 우왕을 폐위하는 이성계.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가 어쩔 수 없이 죽여야하는 인물이 늘어난다.

 

이성계가 처음부터 역성혁명을 원해서 적극적으로 위화도 회군을 주도했고 의도적으로 최영(서인석)을 비롯해 우왕(박진우) 등을 제거한게 아니라는 관점은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요동정벌에 나섰으나 폭우와 역병 때문에 군대를 개경으로 돌려야 했으니 왕명을 거역한 것이고 반역의 누명을 쓰지 않으려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를 탄핵하고 죽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됩니다. 이성계 자신이 원치 않아도 이미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탄  동료들이 역사를 움직일 것이고 이성계는 그 기차에 올라탄 이상 운명에 휩쓸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인간 이성계의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쿠데타의 주체일 수 밖에 없는 인물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 건 다분히 '미화'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역사를 현대사에 꿰맞추는 식의 해석은 상당히 위험하지만 조선 건국을 두고 군부정권의 군사쿠데타 정당성을 찬양하는 입장도 있고 부정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물론 '민주주의'라는 단어 조차 없었던 고려 말의 위기 상황이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혼란과 어떻게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역사를 움직인 사람의 입장을 운명적으로 해석하는 것 보다는 적극적인 개입으로 설명하는 것이여러 모로 옳치 않나 생각됩니다.



 

 

결정적으로 지금 '정도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이성계의 '운명'적인 쿠데타 이후 이성계와 한때 뜻을 같이 했던 사람들 대부분을 이성계가 직접 제거했거나 이방원(안재모)이 죽였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조선 개국의 핵심 세력인 정도전 역시 이방원에게 제거되는 인물입니다. 이성계를 기습하려다 실패한 우왕의 대사대로 '이성계를 믿었던 자들의 최후'는 대부분 죽음이었습니다. 이성계와 사돈사이였던 이인임(박영규)는 간신히 목숨을 구해 유배를 갔지만 곧 죽을 운명이고 최영 역시 곧 참수당할 것입니다. 우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성계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웃지 못할 비극이지요.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조민수(김주영) 역시 곧 제거될 것인데 조민수도 이인임이나 최영과 마찬가지로 문하시중 출신으로 고려의 권력을 가진 귀족 세력이었습니다. 실제로도 위화도회군 이후 이인임을 불러오려 했다는 내용이 있고 이인임이 이숭인(정희태)의 당숙이었던 것처럼 이인임과 육촌 사이(조민수의 어머니가 성주 이씨인 이조년의 조카로 이인임과 외가 쪽으로 육촌 사이)입니다. 조민수는 이성계와 함께 우왕을 폐위하는데는 동의했지만 왕위에 창왕을 올릴 것이야 공양왕을 올릴 것이냐로 갈등했고 당시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이성계는 어쩔 수 없는 운명 때문에 최영을 죽였나 적극적으로 역사를 움직이고 싶은 의지가 있었나?

 

국민들에게는 추앙받지만 정치에는 다소 미숙했던 것으로 묘사되는 최영장군은 영웅으로 묘사되어야 마땅한 인물입니다. 비록 고려 귀족의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고는 하나 이성계가 한 사람의 장군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당연하고 궁궐 안에서의 대결 장면도 최영의 영웅성을 부각시키키 위해 특별히 마련된 서비스 장면이겠죠. 백발을 휘날리는 노익장이 장년의 이성계를 상대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겨루는 장면은 끝까지 꼿꼿했던 최영의 인품을 느끼게 합니다. 자질이 모자라고 멍청한 우왕이지만 최영은 끝까지 지지해주었고 작게나마 그런 진심이 우왕을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성계가 그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성계를 믿었던 자들은 모두 이성계로 인해 죽는다' 이 말은 마치 하나의 저주처럼 끝까지 이성계를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신진사대부의 핵심 세력이자 그래도 이성계의 충심을 믿어준 정몽주(임호) 역시 이성계와 뜻을 같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제자인 이방원에게 살해당할 운명입니다. 날카로운 느낌의 조준(전현)처럼 개국 세력은 하나둘 늘어갈 것이고 그들이 원하는 조선은 고려와 다르기에 누군가는 제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성계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은 하나씩 하나씩 제 수명에 따라 죽는게 아니라 나라를 세우기 위해 또는 권력 때문에 죽임을 당할 운명입니다. '정도전'의 묘사를 빌리면 스스로 거골장 팔자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거골장이 되는 셈이죠.

이인임, 최영, 우왕, 조민수, 정몽주 등 이성계를 믿었던 사람은 모두 죽는다. 이 비극에 이성계의 의지는 없단 말인가?

 

어제 새롭게 등장한 조준은 고려의 공양왕 옹립과 이성계 추대에 크게 공헌한 인물로 결론만 놓고 말하자면 조민수를 직접 탄핵한 인물도 바로 조준 입니다. 정도전 등과 함께 전제개혁안을 제시해 토지 개혁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조선 개국의 뼈대를 만들 인물들은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성계 개인에게는 조선 개국의 역사가 자신을 믿었던 사람들을 배신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고통스런 역사이지만 관련자가 아님에도 그 역사 때문에 죽어야했고 그 역사로 인해 삶이 바뀐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이성계가 운명에 끌려가는 묘사 보다는 그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선택으로 묘사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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