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백광현의 시술이 허황되다고 단정하기전에

Shain 2013. 1. 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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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마의'에서 언급된 '치종지남'의 저자 임언국은 일본 의학사학자인 미키 사카에가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 앙브루아즈 파레(Ambroise Pare, 1510-1590)에 비견하며 극찬한 인물입니다. '동의보감' 허준은 알아도 '십자형 절개'로 유명한 임언국의 이름은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술을 익혔다는 임언국의 외과술이 조명받지 못한 건 유교 중심의 조선이 외과술을 등한시한 편이기도 하지만 그의 저서인 '치종지남'이 임진왜란 때 일본에 빼았긴 탓도 큽니다.

그러나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로 몸에 칼을 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한방 외과술 역시 한방의 한분야로 발달해왔습니다. 그 기록이 적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입니다. 거기에 한방의학에 부정적 시선을 가진 현대인들은 한방 외과술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냐는 자세로 '마의'를 시청합니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외과학은 천시받는 분야였고 음지에서 이발사들이 그 명맥을 이었는데 처음부터 동양에서 외과술이 더 뒤쳐졌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해부학이 시도된 것처럼 한방에서도 알게 모르게 인체의 신비를 연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명환의 '시료청'이 잘못됐음을 알리기 위해 시료청이 거부한 환자들을 살리는 백광현.


항생제를 쓰고 마취를 하고 봉합과 소독을 하거나 양약을 먹는 현대의학이 발전한게 100년 정도 됐을 겁니다. 그런 세부적인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도 외과술은 전세계적으로 존재해왔고 나름의 방식으로 소독하여 감염을 예방하곤 했습니다. 오히려 항생제를 쓰는 요즘 보다 자연치유력이 좋았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학이 발달한 요즘에도 외과술은 옛날처럼 기피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골든타임'같은 의학 드라마를 봐도 돈벌이가 되지 않고 다듭한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외과는 성형외과같은 곳에 비해 의사들이 꺼리는 곳입니다.

현대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피보는 자체를 꺼려하는 건 동서양이 모두 똑같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살려야할 사람들은 존재해왔고 가르고 잘라야할 상처는 있었습니다. 한방외과의라고 하면 작은 상처를 째고 치료한다고 단순히 생각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흔히 보는 작고 날카로운 침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냐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종기라고 하면 본래 살갗에 생기는 옹(癰)과 뼈와 관절 등에 생기는 저(疽)를 합쳐 부르는 것으로 보다 폭넓은 질환을 의미했습니다. 드라마에서 언급된 유옹(유방암)이나 부골저(골수염같은 것) 등이 그것입니다.

백성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고자 한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있었다.


특히 백광현을 비롯한 한방외과의들은 일제강점기 때 사라진 9가지 모양의 다양한 침(피침)으로 시술을 했는데 그 모양이 현대외과에서 이용하는 각종 메스와 흡사합니다. 부항을 떠 독기를 빼기 위해 작은 항아리나 대나무를 이용하고 봉합을 위해 상백피실(뽕나무 껍질로 만든실), 머리카락을 이용하고, 소독에는 소금물, 마취에는 초오산을 이용하는 등 의서에 쓰여진대로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시술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던 사람들이 조선에도 있었다는 말입니다.

전에도 한번 이야기했지만 지금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백광현의 여러 수술은 모두 실제 전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연출된 것입니다. 그 시대에 어떻게 저런 시술이 가능하며 소독약과 항생제는 어떻게 처리했냐며 드라마가 너무 허황되다는 평이 많지만 모든 치료 장면은 '마의'의 자문위원으로 활약하는 방성혜 한의사가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제 방영된 한 절름발이의 에피소드만 해도 '지사공유사 부경험방(知事公遺事 附經驗方)'에 적힌 내용으로 무명의 의원이었던 백광현은 절름발이의 환도혈에 침을 놓아 그를 똑바로 걷게 하였고 그로 인해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오규태의 탈저를 본 백광현은 다리를 절단하면 살 수 있다고 제안한다.


어제 방송분에서 현종(한상진)은 남인의 수장이었던 오규태(김호영)의 치료를 이명환(손창민)의 특별시료청에 부탁합니다. 이명환은 돈을 내고 쉽게 고칠 수 있는 환자만 시료청에서 받고 나머지 환자들은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시료청의 완치율을 높이는 수단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 삼사의 수의 이명환이 치료를 포기하자 오규태는 낙심하였지만 오규태의 아들(주희중)은 백광현을 찾아내 다리 절단을 하면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됩니다. 소갈(당뇨)로 인한 오규태의 탈저를 백광현은 무사히 치료를 할 수 있을 것이고 현종이 오규태를 등용하면 무상 의료를 펼치고 싶어하는 백광현의 뜻도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백광현의 치료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백프로 픽션이자 불가능한 일로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현대인의 관점에서 소독약 하나 변변치 않은 한방외과술이 사람을 살린다는 설정이 믿기 힘든 일이겠죠. 자문의원 방성혜가 제시하는 '지방공유사'라는 책은 원래 일본 다케다 과학진흥재단 쿄우쇼쿠에서 원본을 소장하고 있고 국내에 사본이 한부 존재하는 작자 미상의 책입니다. 피침이 사라지고 '의방유취'와 '치종지남'이 약탈된 것처럼 백광현의 치료기록이 일본에 있어 우리가 몰랐을 뿐 그의 기록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한방외과술이 사술이라고? 한방외과술의 기록은 현대인들에게도 무시받는 것 아닐까.


만약 백광현이 시술했다고 알려진 기록 속의 외과술이 허황되거나 말이 안된다면 기록을 실제로 시뮬레이션 해보거나 남겨진 서적의 역사성, 조작 가능성 등을 연구해보면 될 일입니다. 초오산이라는 동양의 마취제가 현대의 마취약 보다 쓸모없다고 주장하려면 실험결과같은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쪽이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신의'라고 불리던 우리 나라의 외과술의 역사를 제대로 찾아보거나 읽지도 않은채 무조건 말이 안된다고 하는 건 역사를 부정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일본에 빼앗긴 역사를 우리의 선입견 때문에 한번 더 잃는 셈이기도 하구요.

백광현이나 임언국은 '허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의원이고 우리들은 그들을 잘 모릅니다. 자료가 없어서 이기도 하고 그동안 우리가 등한시해왔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실존하는 기록을 근거해 만든 드라마임에도 무조건 말이 안된다고 하는 건 역사에 대한 폄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방이 만능이었다는게 아니라 뛰어난 외과의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현대인들은 무조건 믿지 않으려 합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를 신기하다고 생각하기 보다 허무맹랑하다고 여기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한방외과술은 허술하다는 것을 전제로 드라마를 시청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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