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통쾌한 미스김도 어쩔 수 없는 직장 딜레마

Shain 2013. 5. 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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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오늘이 벌써 근로자의 날이더군요. 운좋게 연휴가 걸리지 않으면 휴가도 월차도 쓰기 힘든 직장인들에게 날씨좋은 5월 1일은 정말 꿀같은 휴일입니다. 비록 단 하루라 멀리 여행은 갈 수 없지만 칼퇴근도 마음놓고 할 수 없는 직장인들에겐 포기할 수 없는 하루가 오늘입니다. 직장인들이 무언가에 쫓기듯 열심히 업무를 하다가도 습관적으로 시계를 보고 달력을 응시하는 건 어쩌면 퇴근하고 싶고 직장을 떠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먹고 살자면 무슨 일이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계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해야하는게 사람이고 그중에서도 한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의 역할은 더욱 막중합니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도 많고 나홀로가족도 많아 '먹고사니즘'에 투신한 여성들도 많다지만 전통적으로 가장의 역할은 남성의 것이었습니다. '직장의 신'의 고정도(김기천) 과장은 황갑득(김응수)처럼 잘 나가진 못해도 평생을 가족을 위해 뛰어온 평범한 가장입니다.

'고장난 시계'처럼 느린 고정도 과장. 나이든 직원을 쓸모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직장.

경제가 어려워질 때 마다 자신을 '고장난 시계'에 비유하는 고정도처럼 꽤 많은 가장들이 직장을 떠나야했습니다. 모든 것이 최첨단이 된 이 시대에 손글씨를 잘 쓰고 발품을 팔아 정보를 얻는 고정도같은 가장들은 낡은 부품처럼 젊은 계약직 인력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고정도의 월급이면 훨씬 능력이 뛰어난 단기 계약직 4명을 더 고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업들은 앞다투어 정년퇴직을 장려했고 계약직 증가는 가속화되었습니다. 초라한 고정도의 권고사직과 파견계약직 정주리(정유미)의 슬픔은 이렇게 맞물려 있습니다.

미스터리한 과거를 가진 만능사원 미스김(김혜수)은 이런 기업을 향해 능력으로 큰소리치는 수퍼갑 계약직을 선택합니다. 제 아무리 큰 회사라도 뭐든지 해내는 계약직 미스김에게 허리를 굽히게 되어 있습니다. 미스김은 마치 모든 계약직들이 꿈꾸는 미래이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리는게 당연한 직장세계의 최고 이상인양 당당히 계약직의 길을 갑니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와 잔정은 배제하고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근무 시간 이외의 업무는 반드시 수당을 받습니다.

회사를 고용과 계약관계로 생각하는 미스김은 고정도 과장을 '짐짝'으로 평가한다.

회사가 사원을 소모품 취급하며 마구 버린다면 사원도 회사를 비즈니스 대상으로 보면 그만이라는 미스김의 선택은 보는 사람들을 통쾌하게 합니다. 미스김은 언제 단절될지 모르는 관계에 정붙이는 쓸데없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정주리의 처지가 딱하고 무정한(이희준)의 인간적인 태도를 이해해도 일절 긍정하지 않습니다. 추가 수당도 주지 않는 야근은 왜하며 짜증나는 회식엔 왜 참석하느냐고 댓구하는 깔끔한 미스김의 태도는 '가족같은 사원' 운운하며 혹사당하는 직장인들을 속시원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천하무적 미스김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기업이 아무리 사원들을 고장난 시계부품처럼 갈아치우고 기계처럼 부려먹어도 어쨌든 직장은 사람사는 곳이란 점입니다. 장규직(오지호)처럼 회사멍멍이가 되어 동료들에게 험한 소리하는 남자에게도 속사정은 있고 무정한처럼 사람좋은 직장상사에게도 물러터졌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전혀 어울릴 것같지 않은 정규직 구대리(이지훈)와 계약직 박봉희(이미도)는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아이를 가졌습니다.

깐깐한 옹아집(권성덕)이 인정한 아날로그 고정도 과장의 손글씨. 고장난 시계의 가치를 인정받다.

결국 미스김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냐'며 '같이 밥먹고 가자'는 고정도 과장의 말에 옛 직장상사(이덕희)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제대로 업무처리를 하지 못한채 늘 졸고 근무시간에 노래를 부르는가 하면 기분에 취해 막걸리를 마시는 고과장은 딱딱한 기업의 눈으로 보자면 무능력한 고령의 직원일 뿐입니다. 요즘처럼 아날로그 방식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고과장의 손글씨 능력이나 정보력은 쓸모가 없었고 회사를 그냥 돈버는 곳으로 대하는 미스김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고과장을 계약직들의 월급이나 빼앗아가는 짐짝 취급했던 미스김이 고과장의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도운 것은 직장이 사람을 소모품 취급한다는 현실에 마음깊이 분노한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평생 직장을 꿈꾸며 입사했던 은행에서 정리해고 당했던 미스김, 그리고 그 은행에서 폭발사고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직장선배가 죽었습니다. 어쩌면 직장동료를 가족같이 여기는 장규직 보다 훨씬 더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냉정한 미스김이 탄생했다는 뜻입니다.

'밥 먹고 가라'는 말에 결국 눈물을 흘린 미스김. 천하의 미스김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

시청자들은 미스김의 활약을 보면서 그것 참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입맛이 씁니다. 짤릴 불안없이 계약직으로 당당하게 살려면 미스김처럼 여러 개의 자격증을 갖추면 됩니다. 어떻게든 회사 실적을 올려주면 계약직이라도 회사에서 서로 모셔가려할 것입니다. 실제로도 많은 기업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논란에서 그런식으로 개인의 능력을 탓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자격증 딸 시간도 없이 회사에 휘둘리고, 나이들면 박봉희나 고정도가 될 뿐 미스김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장규직같은 정규직들이 직장에서 미래를 보장받는 것은 아니니 '미스김'이 될 수 없는 아슬아슬한 현실이 자꾸 떠오르는 것입니다. 박봉희같은 계약직도 마음놓고 출산하고 재계약할 수 있는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고정도처럼 고장난 시계도 아름답게 정년퇴직할 수 있는 곳이면 얼마나 좋을까. 통쾌한 미스김을 볼 때 마다 그런 직장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니 유쾌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한 그런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요. 여러모로 참 공감가는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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