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신, 열심히 일해도 쫓겨나는 정주리와 장규직

Shain 2013. 5. 2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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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의 장규직(오지호)은 누구 보다 안정된 정규직을 추구하던 사람입니다. '내일 보자'라는 말을 제일 좋아하고 무정한(이희준)이란 친구를 돌봐줄줄 아는 규직은 직장이야말로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0년이 넘게 다니던 대한은행에서 해고된 엄마 전미자(이덕희)는 직장 복귀 때문에 아버지(정원중)과 싸웠고 갑작스런 화재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같은 시기에 아버지도 자살하고 말았죠.

그랬던 정규직이 절친한 친구 무정한의 좌천 위기를 두고보지 못하고 큰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황갑득(김응수)의 지시로 정주리(정유미)의 아이디어를 빼앗아 도시락 기획안을 발표하려던 정규직은 미스김(김혜수)의 한마디가 계속 떠올라 도저히 발표할 수가 없었습니다. 덕분에 대신 기획안을 발표한 무정한은 사업을 계속 맡아 진행하게 되었고 상무(이인철)의 미움을 받게 된 장규직은 대기발령 상태로 지내다 원주로 좌천되었습니다.

대기발령을 받게 된 장규직은 구석 자리로 밀려나고 미스김은 그에게 잡일을 시킨다.

 

회사 멍멍이로 불릴 정도로 간 쓸개 다 빼주며 충성했던 장규직이 그동안 쌓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얄짤없이 장규직을 내칩니다. 인정이나 의리가 있을 법도 한데 회사에는 장규직이 아니라도 주어진 업무를 해낼 인력이 많습니다.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회사는 예전처럼 평생직장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짤릴 위기에 처한 고정도(김기천)와 정주리를 위해 나서다가 무정한같은 위기를 맞기도 하고 그동안 주욱 잘하다가 딱 한번 어긋난 정규직처럼 밀려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극중 장규직과 무정한은 계약직들에 비하면 기회가 많습니다. 두 사람이 친구 사이라 서로를 배려해주고 도와주는게 도드라지는거고 그들 정규직끼리는 나중에 황갑득이 되느냐 고정도가 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어쨌든 지금 보다 좋은 상황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미스김의 말처럼 희망이란게 전혀 없는 계약직 내지는 파견직들이죠. 직업에 따라 어떤 직종은 오히려 옆자리 계약직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규직의 자부심을 갖고 있던 장규직은 자신은 계약직들과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았다.

 

흔히 신입 계약직들에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충고를 건내는 선배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얼핏 들으면 농땡이부리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회경험이 많은 그들의 충고는 알고 보면 복합적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정규직이 되겠다는 혹은 성과를 내서 윗사람에게 인정받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답이 돌아오지 않으니 큰 기대없이 업무에 일하라는 뜻이기도 하고 열심히 일한다는 의욕 자체가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일 때도 있습니다. 또 본의 아니게 그런 태도가 옆사람에게 '민폐'가 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민폐' 말하자면 이런 뜻입니다. Y장에서 정규직이 되고 싶어하는 정주리는 입사 이후 계속 크고작은 사고를 쳤습니다. 금빛나(전혜빈)도 똑같이 신입이고 사고뭉치지만 회사를 그만둬도 사는데 별로 지장없는 금빛나는 여러 사람들이 감싸주곤 합니다. 그녀와 달리 계약직 정주리는 복사기를 고장내서 이대로 계약해지 당할까봐 속이 타들어갑니다. 그런 마음에 각종 커피, 담배 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그녀에게 미스김과 선배직원들은 자존심을 지키라며 충고합니다.

열심히 하다가 쫓겨날 뻔했던 계약직 정주리, 부하직원을 감싸려다 퇴출될 뻔한 무정한.

 

기업은 일단 계약직이나 파견직의 '의욕'을 높이 사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정 시간 동안 고용된 소모인력이고 그 기간 동안 맡은 업무를 다해주면 그걸로 대만족입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계약직이 을이면 고용한 갑에게는 담배 심부름까지 불사하는 계약직이 훨씬 쓸모가 있을지 모르나 계약직들은 '어떤 계약직은 담배 심부름도 하던데' 한마디에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잡일하는 사람 취급을 받아야합니다. 오랫동안 같이 일할 정규직 입장에서 사소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과는 아예 다른 상황입니다.

또 정규직들이 열심히 일하면 승진을 할 수 있고 회사의 이익이 오지만 계약직이 두 사람 분량의 일을 해내면 옆자리 동료가 해고됩니다. 거기다 정주리처럼 기획안을 열심히 쓰다 화장실에서 잠든다고 해서 누군가 그 마음을 알아줄 것을 기대할 수도 없고 건강을 해친다고 해서 도움을 줄 기업도 없습니다. 적당히 열심히 하라는 말은 여러 의미로 '같이 살자'라는 뜻도 되고 오랫동안 계약직이라도 유지하고 싶으면 페이스를 지키라는 말도 됩니다. 정주리는 오히려 공모전 1위에 입상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을 힘들게 만들었죠.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연결고리. 정규직, 비정규직, 직장의 문제는 결국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 방송분으로 드디어 '직장의 신'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과거가 드러났습니다. 대한은행 화재사건 때 미스김과 장규직의 엄마 전미자는 은행에서 정리해고당해 계약직으로 근무중이었습니다. 장규직은 그 사건으로 부모를 모두 잃고 금빛나와 헤어졌고 Y장에 입사했습니다. 은행장이던 금빛나의 아버지는 그 대한은행을 합병, 인수했습니다. 정주리는 대한은행 화재사고를 목격했고 무정한은 그 자리에서 시위를 막는 전경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면 뒤엉킨 그들의 관계는 절대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문제가 한 개인의 문제 만은 아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랍시고 대립해봤자 결국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이야기죠.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에피소드 제목이 참 와닿습니다. 

 

안정된 직장 생활은 행복한 가정과도 직결됩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심리적인 안정을 주는 것도 물론이지만 결혼과 육아의 기본 조건이 직장 수입이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직원이 열심히 근무하면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던 시대도 있었는데 현대사회는 무조건 열심히 일하는게 미덕인 시대는 아닙니다. 미스김과 장규직의 엄마가 열심히 일해도 쫓겨났고 회사에 헌신한 장규직이 밀려나고 뛰어난 아이디어를 낸 정주리가 짤릴 뻔하는 모습,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씁쓸한 현실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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