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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 고증과 똑같은 캐릭터의 배우들 많이 아쉬웠다

Shain 2013. 7. 3.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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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정이'의 주인공 유정(문근영)은 임진왜란 때 남편 김태도와 함께 일본으로 끌려간 여성 사기장 백파선으로 일본 아리타 도업의 어머니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는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존중받는 한 여성사기장의 이야기를 실존인물 광해, 임해, 선조와 연결시킨 건 꽤 흥미롭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도자기 장인과 관련된 드라마가 거의 제작되지 않아 아쉬웠는데 잊혀졌던 조선의 백자를 되살린다는 면에서도 재미있는 드라마입니다. 평소 좋아하던 문근영과 괜찮다고 생각해온 배우 이상윤이 출연하더군요.

첩지머리인지 가체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빈 김씨의 머리모양.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거기다 정이의 아역을 요즘 잘 나가는 아역배우 진지희가 맡고 아역 출연으로 뼈가 굵은 박건태, 노영학 그리고 능숙하게 초반부 로맨스를 이끌어낸 김지민과 정이의 배다른 오빠인 이육도 역의 오승윤 등 아역들의 연기도 꽤 볼만했습니다. MBC 퓨전사극이 성공하는 공식 중 하나는 탁월한 아역의 선택이란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이미 성인이 된 배우 노영학이 출연한 드라마는 아역으로 화제가 되는 드라마가 되곤 했으니 최우선으로 선택됐으리라 봅니다. 워낙 사극 출연을 자주해서 그런지 박건태나 노영학 모두 승마를 잘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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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불의 여신 정이'는 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전체 이야기는 어딘가 모르게 익숙합니다. '출생의 비밀'을 갖고 태어난 한 주인공이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타고난 천부적 재능으로 인정받는 줄거리는 소재만 달랐을 뿐 여기저기서 흔히 보던 내용입니다. 거기다 주인공의 재능과 사랑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이야기의 잔가지를 엮고 줄거리를 보태줄 뿐입니다. 아역들이 엮는 로맨스나 필연적으로 대립하게 되어 있는 라이벌과 숙적의 등장까지 이젠 거의 퓨전사극공식으로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덧붙여 출연하는 배우들까지 자신이 맡았던 과거 캐릭터와 유사합니다. 정이의 양아버지 유을담 역의 이종원은 김태도의 아역 박건태와 함께 출연했던 '김수로(2010)'의 조방(이종원)은 어린 김수로(박건태)를 양아들로 키워 애지중지 키우다 죽음을 맞는 역입니다. 수양딸인 정이를 키우다 죽는 설정에 상처를 준다는 점까지 유사합니다. 특히 서현진이 연기하는 심화령은 평소 서현진이 자주 맡던 짝사랑 캐릭터와 거의 같습니다. '신들의 만찬(2012)'에서 보여준 하인주는 사랑도 재능도 주인공에게 모두 빼앗기는 캐릭터였습니다.

퓨전사극의 흥행공식이 되어버린 아역들의 출연. 명연기에도 구태의연하긴 했다.


이외에도 손행수역의 송옥숙이나 유을담을 질투하는 분원난청 이강천(전광렬)이나 어린 광해(노영학)를 시기하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질투하는 임해군(이인성 군이 노영학 씨 보다 무려 세 살이나 어린데 형 역할을 맡았네요. 간만에 봐서 반갑습니다), 감초 역할인 심종수(성지루) 등 기존에 흔히 보던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나 역할은 이번에도 드라마의 재미를 반감하는 부분입니다. 워낙 많은 퓨전사극에 질리다보니 가끔은 소위 '퓨전사극'들이 흥행공식에서 벗어난 시도를 했으면 싶을 때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불의 여신 정이' 첫회에서 본 인빈 김씨(한고은)는 깬다는 말로는 잘 표현이 안되더군요. 안 그래도 이 드라마는 곳곳에 시대 고증에 어긋난 부분이 많습니다. 조선 후기도 아닌 중기에 양반 출신이 도자기 장인을 대대로 했다거나 도자기 장인이 도포를 입고 '나으리'라 불린다거나 편수를 한자로 옮긴 변수(邊首, 공장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등 여러모로 불편한 장면이 많더군요. 인빈 김씨의 머리 모양은 잘못된 고증의 정점을 이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종원은 이번에도 주인공이 사기장인이 될 동기를 부여해주고 죽는 양아버지 역할.


궁중 여인들의 머리는 흔히 큰머리, 어여머리, 첩지머리로 구분되는데 영조, 정조 이후에는 가체의 폐해가 너무 커 궁중 여인들도 첩지 머리가 일반적인게 되었습니다. 인빈 김씨가 올린 가체는 궁중 여인들의 어여머리도 아니고 신분낮은 백성들의 평범한 얹은머리도 아닌 희한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혹시 비녀에 있는 그 무늬 용무늬인가요? 후궁이 감히 용무늬가 들어간 비녀를 착용한다는 것은 중전과 맞먹겠다는 의미인데 아무리 인빈이 선조의 조강지처 노릇을 한 후궁이라지만 설마 용잠을 쓰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이 드라마가 앞으로 선조(정보석)와 인빈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려갈지 의문입니다만 인빈은 아주 어릴 때부터 궁중생활을 하고 광해군에게 대접받으며 죽었던 여인이라 눈치가 빨랐습니다. 임진왜란 전후로는 백성들의 지탄을 받을 행동을 많이해 밉상이었고 못된 구석이 있었지만 일찍 죽은 편인 공빈과는 그리 오래 겨루고 다툴 기회가 없었구요. 선조가 죽고 난 후에는 인목대비와 반복하는 광해군 편에서 서서 광해군이 인빈과 사이가 꽤 좋았다고 합니다. 사서에 기록된 광해군과 양화당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지 두고볼 일입니다.

의심많고 변덕이 심한 선조와 인빈 김씨의 측근 이평익 기대해볼만하다.


다음 회에는 임해군이 태조대왕의 그릇을 깨트리고 선조에게 주목받던 광해군은 정이의 도움으로 그릇을 붙이려다 유을담이 그 일에 연루되어 죽는 내용으로 전개하려는 것 같습니다. 정이와 같이 자란 오라버니이자 연인인 김태도(김범)를 등장시킨 것으로 작가가 '무사 백동수'에 이은 또다른 무협 활극을 계획중이란 생각도 듭니다만 문근영이 있는한 여성 사기장 이야기이라는 큰 축을 깨트리진 않을 거 같네요.

아무튼 눈에 딱 띄는 이상한 부분도 많고 그럭저럭 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역시 이런 류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연기에 있습니다. 특히 인빈 김씨의 오라버니였다는 김공량이 떠오르는 이평익(장광)은 신선하면서도 노련한 연기가 아주 마음에 듭니다. 어쩌면 사극에 필요한 얼굴은 자주 출연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장광씨처럼 기본 연기가 되고 사극을 묵직하게 바쳐주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MBC가 본래 주말극으로 계획된 이 드라마를 월화극으로 끌어온 이유가 뭘까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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