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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멋진 남자 이상우 촌놈 김성수로 특별한 진화

Shain 2014. 2. 1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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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삼아 친구들끼리 '촌놈'이라 놀리는 경우는 있어도 '촌놈'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 긍정적인 표현이 아니죠. 세련되지 못하고 시대에 뒤쳐지고 어딘가 모르게 둔한 느낌 마저 주는 '촌사람'이란 말을 대놓고 상대방에게 퍼붓는 사람은 드물것입니다. 꼼꼼히 생각해보면 차별적인 요소 이전에도 '촌놈'이라는 놀림 자체는 '사람은 세련되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표현처럼 느껴집니다. '촌스럽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드라마 주인공처럼 멋진 옷차림에 경우에 맞는 매너, 감정 표현에 쿨한 사람은 세련된 사람이고 촌스러운 사람은 놀줄 모르고 생각이나 옷차림이 구시대적이고 수수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새로 쓴 역사가 우릴 구원해줄거야' 촌놈 김성수의 투박한 재결합 프로포즈.

'따뜻한 말 한마디'의 이상우는 생각해보면 촌스러운 남자 역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을 보면 한번도 거칠거나 과격한 표현을 해본 적이 없을 것같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여주인공의 흑기사 역할을 했습니다. '마의(2012)'에서 이명환(손창민)의 아들로 출연했던 이상우는 누나처럼 함께 자란 강지녕(이요원)을 위해 백광현(조승우)을 구해주기도 하고 아버지의 비리를 직접 밝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매너좋고 세련된 남자가 '촌놈' 역할을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따말'의 김성수가 보여준 촌스러움은 전통적인(?) 촌스러움과 좀 다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어째서 김성수의 저런 반응이 '촌스러움'일까 생각될 정도로 그의 감성은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의 가치관 입니다. 너무 흔하게 봐서 촌스럽다고 느끼기 힘들죠. 김성수는 신동소리를 들으며 자란 시골 출신 장남으로 은행에서 최연소 인사과장 자리에 오릅니다. 나은진(한혜진)과 열렬히 사랑하던 대학 시절에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대학생같은 모습이 좀 있었지만 지금의 옷차림과 말투는 분명히 세련된 도시 남자의 그것입니다.


 

그러나 아내 나은진과 부딪힐 때 보면 그의 '평범한 촌스러움'은 그대로 드러납 니다. 아이를 달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어린 아내에게 '너 혼자 애 낳냐, 왜 이렇게 유난이냐, 우리 엄마는 애 셋 낳고도 밭일 하셨다' 뭐 이런식으로 퍼붓습니다. 결국 은진은 상심을 견디다 못해 주부우울증 증세를 보였고 김성수는 바람을 피웁니다. 그런데 그 바람에 대처하는 김성수의 태도 역시 뻔뻔합니다. 바람피우고 가정으로 돌아온 흔한 유부남과 비슷했던 것입니다. 죽도록 싹싹 빌었는데 지금까지 이러면 어쩌냐는 식의 반응, 여전히 아내의 출산이 유난했다고 말하는 무신경함은 웬수같습니다.

'특별한 거 주려고 노력하지마. 이미 특별하잖아 우리' 은진의 따듯한 말에 김성수는 감동한다.

 

결정적으로 은진이 다른 남자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듣고 김성수의 '촌스러움'은 폭발하고 맙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과 관계를 가졌던 김성수는 경찰까지 출동할 정도로 살림살이를 다 부수며 화를 냅니다. 그의 행동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남자인 나는 바람을 피워도 되지만 어떻게 여자인 네가 바람을 피우냐'고 말입니다. 바람피웠던 남편이 자기가 저지른 일은 생각하지 못하고 아내에게 불같이 분노하는 모습은 어디선가 흔히 들었던 이야기지만 확실히 도시 남자의 '쿨한' 반응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상우가 연기한 '촌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촌스러움'과는 달리 부부 문제에 합리적이지 못한 이율배반적인 가치관, 부부 생활을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는 평범함을 말하고자하는 것같습니다. 겉으로는 세련된 도시 남자로 살아가지만 아내에게는 농경시대의 가치관을 요구하는 불합리함을 뜻하는 것 이죠.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다니던 아내가 신체적 변화에 겁을 먹고 사회와의 단절을 두려워하는 걸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유한 집 출신의 유재학(지진희)과는 다른, 친숙한 남자들이기도 하죠.

송미경과의 이혼소송, 이별여행으로 미경을 잡아보려는 유재학. 분명 김성수는 이런 타입이 아니다.

'촌놈' 김성수가 겪은 불륜의 폭풍. '불륜'이라는 주제는 생각만 해도 찜찜하고 불쾌한 그 느낌 만큼이나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부부끼리는 이해해도 가족의 강요, 남의 눈 때문에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배우자가 증오스러운데 자식 때문에 같이 살아야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집니다. 남들의 눈을 의식한 '세련됨'은 일종의 감정의 숨김, 가식일 경우도 있습니다. 유재학이 대놓고 싹싹 빌며 송미경(김지수)에게 매달리지 못하고 일종의 이별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세련된 도시남자의 은근한 유혹같은 셈이죠. 김성수는 늘 뭐라고 말할지 고민합니다. 김성수는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로 나은진을 잡습니다.

나은진의 시어머니(성병숙)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었듯 김성수의 처가에 대한 마음도 진심이었습니다. 세련되지 못한 이 남자는 바람피운 아내를 잡는게 남들 보기에 볼썽사납고 손가락질받을 일임을 알지만 아내의 불륜으로 느낀 사랑을 어떻게든 지키려 합니다. 은진의 불륜이 소문난 그 아파트에 그냥 살자고 합니다. 은영(한그루)과 민수(박서준) 문제로 처가에 좀 더 껄끄러운 사람이 됐지만 촌놈처럼 우직하게 처가 식구들을 돕고 곤란에 처한 은진을 다독입니다. 김성수 이 남자의 순박한 사랑은 세련됨으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듬직함이 묻어 납니다. 그는 다시 찾아온 사랑을 체면 때문에 외면하지 않습니다.

세련되고 잘 생긴 얼굴로 투박함을 연기하는 이상우. 이질적이면서도 매력적이다.

다른 배우가 김성수 역할을 한다면 어딘가 모르게 훨씬 얄밉고 쥐어박고 싶은 캐릭터가 되었을 것같은데 이상우는 세련된 방식으로 촌놈 김성수를 연기해냅니다. 아내를 추궁할 때는 집요하다가 안쓰럽게 바라볼 때는 어쩔줄 몰라하는 따뜻한 모습이 도시적으로 잘 생긴 외모와 묘하게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립니다. 불륜으로 김성수와 나은진의 사랑은 산산조각났습니다. 그러나 깨진 부부로 살던 둘 사이에 새로운 사랑이 꽃핍니다. '지금하고 있는 이 사랑이 내가 무지 괜찮은 인간으로 느끼게 해준다'는 김성수의 진심. 얄밉던 남편이 믿음직한 남편으로 거듭나는 이 연기 정말 멋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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