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세월호 침몰, KBS와 MBC 대안언론에게 뺏긴 언론의 명예

Shain 2014. 5. 1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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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32일째. 어제 화제가 된 크롬캐스트 뉴스를 보고 wifi가 설치된 집에서는 TV를 통해 각종 대안언론을 볼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함께 실종자 가족, 유가족들에게 환영받은 대안언론의 단점은 TV를 통해 접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시력이 나쁘고 PC에 익숙하지 않은 연령대에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뉴스가 대안언론 뉴스였죠. 그러나 생각해보니 전국민에게 수신료를 뜯어가는 공중파 방송을 두고 굳이 그런 기기를 사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더군요. 대안언론은 공중파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지만 애초에 공중파와 존재 이유가 다른 언론입니다. 국민의 목소리가 되어야할 공중파가 주인이 아닌 권력자의 편을 들 땐 뜯어고쳐야 합니다.

5월 9일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사과했던 길환영 사장. KBS 내부에서 사퇴 요구가 거세진 까닭은?




그런가 하면 어제 포털 최고 화제는 '열애설'과 '박근혜 대통령의 유가족 면담'이었습니다. 박태환과 예진, 정우성과 일반인, 김규리와 오승환의 열애설이 터졌지만 기이하게도 모두 사실무근이거나 본인들이 거부한 내용이었고(심지어 김규리, 오승환은 만난 적도 없다고 합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유가족 면담은 뭔가 대단한게 이루어진 듯했으나 실속이 없었다는 평입니다. 특검요구가 수용되고 위로하고 눈물짓는 사진 몇장을 남겼을 뿐입니다. 어제 하루 포털은 뭐가 그리 바빴는지 상대적으로 KBS, MBC의 폭로와 이상호 기자의 구원파 인터뷰, 언론인에 대한 고발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KBS 기자를 '기레기'라고 불렀습니다. 심한 경우 '개병신'이라는 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MBC는 아예 존재 자체를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YTN, 연합, 조중동 기자들도 별로 다를 바 없습니다. 반면 JTBC '뉴스9'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유가족들이 세월호 희생자의 동영상을 가장 많이 제공한 방송사로 등극했습니다. 많은 유가족들이 신문고뉴스, 뉴스타파, 고발뉴스, 국민TV, 팩트TV는 허용했지만 다른 언론들에겐 거칠게 항의했습니다. 지은 죄가 있어서, 대부분의 언론은 항의 한마디 못하고 물러났습니다.

김시곤 사퇴 이후 내전을 치르는 KBS.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18명의 간부들이 사퇴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흔들리고 있는 건 정치권 뿐만이 아닙니다. 행여 돌아선 민심이 6.4 지방선거에 영향이라도 기칠까 우려하는 정부 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한때 막내기자들의 반성문 게재, 김시곤 보도국장의 망언으로 수신료 거부운동까지 일어난 KBS는 때아닌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KBS 기자들은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며 합동분향소에 찾아갔고 KBS 보도본부 부장단 18명과 임창건 보도본부장은 16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길환영 사장의 퇴임을 요구하며 보직사퇴했습니다.

이어 16일 저녁 보도국장 자리에서 사퇴한 김시곤 씨는 세월호 보도, 해경에 대한 비판 자제, 김시곤 보도국장의 사퇴를 청와대의 입김으로 결정했다고 폭로합니다. 또 김인규 사장 때부터 사장이 뉴스 큐시트를 받기 시작했고 정연주, 이병주 사장은 뉴스에 관여를 안했다고 증언합니다. 그동안 정권에 유리한 보도를 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공영방송이 청와대의 조정을 받아 뉴스 보도를 했다는 건 심각한 내용입니다. '뉴스가 멈출 수도 있다'는 임창건 보도본부장의 말에 길환영 사장은 '감수하겠다'며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망언으로 사퇴한 김시곤 보도 국장은 길영환 사장과 청와대에 대해 폭로했다.


그런가 하면 언론에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기색입니다만 MBC 역시 몸살을 겪고 있습니다. MBC는 과거 총파업으로 다수의 기자들이 퇴직해야했고 파업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 역시 3개로 갈려 MBC 언론 보도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일부 MBC 보도국 간부들이 망언을 내뱉기도 했습니다. 이성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삭발을 하며 1인 시위를 시작했지만 자기 반성을 할 수 있었던 KBS, SBS와 달리 MBC는 이미 침몰한 배입니다.







내전치르는 공중파, 진실을 말한 언론은 고소당하다

공중파 방송이 이런 혼란을 겪는 동안 대안언론은 무사했을까요? 공중파 방송에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은 다이빙벨의 진실 즉 생존자 구조를 하려면 다이빙벨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진실을 공개하지 않을 때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 입수 과정을 생중계했던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MBC로부터 고소당했습니다. 'MBC가 언론이기를 포기한 노골적인 왜곡 보도로 박근혜 대통령을 옹위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을 적시해 MBC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게 주요 고소 내용이라고 합니다. '기레기'라고 비난받는 MBC가 오히려 대안언론을 고소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상호 기자의 말대로 '훼손될 명예가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최근엔 세월호 유가족과 진도 팽목항 현장을 파헤치는 기자들일수록 고소 대상이 되는 듯합니다. 해경은 JTBC '뉴스9'을 고소했습니다. '출동한 대원들이 죽을 것 같아 안 들어갔다'는 보도를 한 JTBC 기자를 15일 전남 목포경찰서에 고소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세월호 참사로 총체적 무능이 드러난 해경이 침몰 현장에서는 느려도 고소는 빠르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습니다. MBC나 해경이나 자신들이 임무, 지켜야할 진짜 명예가 무엇인지 모르는 듯하죠.

해경이 고소한 JTBC 5월 14일 방송. '죽을 것같아 안 들어갔다' 고소는 구조 대책 보다 빨랐다.


한편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 조문논란과 관련해 CBS를 고소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지난 4월 29일 합동분향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위로하던 할머니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닌 '청와대 측이 섭외한 인물로 드러났다'는 노컷뉴스 기사가 김기춘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관련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CBS 측의 입장 표명이 아주 명쾌하며 언론인답습니다(CBS 언론노조 전문보기, CBS에 대한 청와대의 소송을 적극 환영한다). "청와대가 CBS를 '받아쓰기' 언론이 아니라고 공식 인정해줘 그저 반갑다"라는 문장에는 언론인의 자부심마저 느껴집니다.

1954년 최초의 민간방송으로 시작된 CBS는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역사적 위기를 맞고 많은 인력이 해고됩니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살아남은게 기적이지요. 60년 역사의 언론답게 속시원하게 써내려간 일갈이 진짜 언론은 저렇게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합니다. MBC와 청와대, 해경의 권력은 비판하는 언론을 고소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터넷 언론과 작은 언론사들은 갖추고 있는 기자정신을 왜 돈많은 언론은 모르는 것일까요. 기자는 기자의 역할을 할 때 가장 환영받는 것입니다.





손석희의 인기를 갖고 싶다면 달라져라

JTBC '뉴스9'은 손석희 앵커의 프로그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널리즘 판타지 드라마 '뉴스룸' 윌 맥어보이가 손석희라고 이야기합니다. 빠르게 입수된 정보도 사실 확인과 취재를 거쳐 보도하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유가족을 대할 땐 누구 보다 배려합니다. 반면 정치인 인터뷰를 할 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핵심을 찌르는 손석희 앵커의 진행방식은 '아나운서'와 '앵커'가 어떻게 다른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앵커는 뉴스쇼를 장악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아나운서는 대본대로 뉴스를 읽어주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뉴스에 대한 손석희 앵커의 진정성과 파악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일본 TBS 기자의 인터뷰 내용(참고, 일본 TBS 기자 "세월호 참사 JTBC 보도가 가장 훌륭해")대로 메이저 언론이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 마이크를 들이댈 때 손석희 앵커는 해경과 정부에게 질문했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시청률을 MBC '뉴스데스크' 수준으로 끌어올린 '뉴스9'을 부러워했습니다. 손석희를 따라 뒤늦게 팽목항 현장으로 내려간 방송국도 있고 '뉴스9'이 밝혀낸 특종의 후속 보도를 취재한 언론도 있습니다. 일개 종편 방송국 앵커에 불과하던 손석희는 순식간에 세월호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런데 손석희가 쌓은 신뢰가 쉽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한국의 윌 맥어보이로 불리는 손석희. '언론인'의 신뢰는 결코 하루아침에 얻어지는게 아니다.


사실 MBC도 한때는 국민들이 총파업을 지지하며 격려해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동아일보도 70년대에는 광고가 끊겼을 때 많은 국민들이 백지광고를 게재하며 응원해주던 신문이었습니다. 지금의 MBC는 손석희 앵커가 수의를 입었던 시절에 지키고 싶어했던 그 MBC가 아니고 지금의 동아일보도 70년대의 동아일보가 아닙니다. 지금 JTBC에 입사한 손석희 앵커의 최대 난관은 삼성을 정조준해서 취재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 과거 MBC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더 과감하게 언론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992년 MBC 파업때 파업주동자로 몰려 20일간 구치소 신세를 진 손석희 앵커 말고도 MBC는 또다른 파업 참가 언론인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손석희와 MBC에 대한 신뢰는 그때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수많은 언론인들이 MBC에서 해직되면서 MBC는 잊혀졌고 손석희만 남았습니다. '뉴스9'의 인기도 갖고 싶고 권력의 보호까지 받고 싶다면 언론인으로서 욕심이 과한 것입니다. 언론인에 대한 신뢰는 절대 하루 아침에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김시곤 보도국장이 길환영 사장의 속사정을 폭로했다고 해서 바른 언론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신뢰는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공중파가 '대안언론'에게 뺏긴 명예를 되찾고 싶다면?


일부는 KBS에서 벌어지는 내전이 수신료 인상을 위한 쇼는 아닌가 의심할 만큼 KBS는 신뢰를 잃었습니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당분간 포기하고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야할 것입니다. MBC는 거대 언론인 자신들의 고소가 왜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듯합니다. CBS와 JTBC를 고소한 해경과 청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CBS의 명쾌한 성명서 내용대로 '고소'는 이 시대의 진짜 언론인이 어쩔 수 없이 치러야할 통과의례인가 봅니다. 그만큼 우리 나라가 언론 아닌 앵무새들에게 둘러싸여 살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죠. 고소당하는 대신 국민들에게는 더 큰 신뢰를 얻게 될 것입니다. MBC와 KBS는거대 언론의 명예를 빼앗겼다고 고소하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부족한 신뢰를 쌓아야할 때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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