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미생

미생, 장그래에게 자신감을 준 한마디 '우리 애'

Shain 2014. 10. 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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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나온 신문기사 중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7시간 49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그 주요 원인은 과도한 노동시간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한국인의 연간 평균 근무시간은 2163시간으로 세계 2위이며 그에 비해 노동생산성은 굉장히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고 하죠. 한마디로 많은 시간을 직장에 투자한 만큼 피곤하게 살고 바쁘지만 효율은 좋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 통계수치였습니다. 아름답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오늘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야근을 하고 피곤에 지친 몸으로 퇴근을 하겠죠.


오과장의 '우리 애'라는 말이 가져온 변화. 회사생활에 주눅들어 있던 장그래는 처음으로 자신있게 행동한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드라마로 옮긴 tvN의 '미생'. '미생(未生)'이라는 제목은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뜻인 동시에 바둑에서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상태 혹은 그 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살아있지 못하다는 말이 주는 미미한 생동감처럼 이 드라마의 초반부는 우울하고 착 가라앉아 있습니다. 고졸 검정고시 학력에 변변한 자격증 하나 없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가 원인터내셔널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모습은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지죠. 충분히 스펙을 쌓고 도전해도 험난한 직장생활에 맨몸으로 부딪힌 인턴은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합니다.


복사기 다루는 법도 모르고 복사지 찾다 시간을 허비하고 자기 혼자 일을 좀 더 잘해보겠다며 무리하다 야단맞고. 어떻게든 상사에게 일하는 법을 배워보려 서성대다 걸리적거린다며 혼나고 어쩌다 한번 일을 잘 해내도 쉽게 칭찬받기 힘든 하루하루. 말이 좋아 낙하산이지 변변한 사무직 경험도 든든한 빽도 없는 장그래의 하루하루는 말그대로 살얼음판입니다. 동료 인턴 김석호(조현식)의 실수로 기밀서류를 떨어트렸단 오해까지 받자 인턴일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혼이 나게 됩니다.







그 오해가 딱풀을 빌리러 온 김석호 때문이란 걸 알게 된 오과장(이성민)이 장그래를 '우리 애'라고 인정하기 전에 장그래는 원인터를 겉도는 방관자였습니다. 낙하산 타고 왔다는 상사들의 눈총과 자신을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고 왕따시키는 동료 인턴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는 늘 '우리'가 아닌 언젠가 떨어져나갈 낙오자였습니다. 차라리 대놓고 못살게 구는 동료 인턴들은 무시하면 그만인데 장그래를 괴롭히도록 방조하는 장백기(강하늘)같은 타입은 상대하기도 벅차죠.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는 장그래에게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혼자서 누군가를 상대하는 게임입니다. 어른이 될 때까지 바둑 밖에 몰랐던 장그래가 아는 것은 바둑판이 돌아가는 이치 뿐입니다. 우유 배달 아르바이트나 목욕탕 청소같은 굳은 일은 해봤지만 누군가와 팀이 되어 '우리'의 일부가 되어 일해본 경험은 전혀 없습니다. 장그래가 오과장의 '우리 애'라는 말에 눈물흘리고 자신을 걱정하며 눈치껏 조언해주는 김동식(김대명)의 얼차려가 무슨 의미인지 깨닫게 되는게 진짜 직장 생활의 시작이겠죠. 그 격려에 힘입어 장그래는 자신의 PT파트너로 한석율(변요한)을 선택합니다.


오과장이 '우리 애'라고 감싸주자 눈물흘리는 장그래.


때때로 길을 걷다 회식하는 직장인들과 마주치곤 합니다. 지독한 야근과 눈치보는 직장일에 지친 사람들이 왜 밤마다 술집에서 '위하여'를 외치고 있는지 왜 노래방에서 소리소리 질러대는지 이해가지 않을 때가 있죠. 아무리 회사일이 중요해도 어서 빨리 회식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혼자 쉬었으면 싶을 때가 많습니다. 장그래 역시 그런 사람들을 무심하게 지나치며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오성식의 '우리 애'라는 말로 장그래는 왜 직장인들이 서로 유대감에 목말라하는지 그들이 함께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닫게 된 듯합니다. 곱창구이에 곁들여 먹는 소주 한잔의 맛을 말입니다.


눈치 빠르게 직장에 적응하고 있는 것같은 괜찮은 스펙에 눈치까지 갖춘 장백기도 똑똑하다 못해 이미 정직원이라는 평가를 받는 1위 인턴 안영이(강소라)도 아직까지는 이런 직장생활의 또다른 면을 잘 알지 못합니다. 두 사람 모두 똑똑하고 잘난 자신의 능력이 직장생활에서 잘 융화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될 것입니다. 단단히 맛을 보게 하려 벼르고 있는 선배도 있을 것같구요. 어쩌면 장그래는 그들 보다 한수 먼저 배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한팀이 아니면 일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한석율에게 파트너를 수락하는 장그래의 눈빛이 입사하고 처음으로 주눅들지 않고 자신감 있었죠.


타고난 스펙에 상관없이 한번쯤 겪어야할 과정.


그러나 늦은 밤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아이들을 위해 치킨을 사들고 집에 돌아가는 오과장. 잠에서 깬 갓난아기가 아빠의 손가락을 꼭 쥐며 방긋 웃는 모습에 하루의 피로도 아내의 잠투정도 모두 잊고 좋아하는 김석호. 전철 한구석에서 쪽잠을 자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김동식. 바쁜 회사일로 미처 정리되지 않은 집을 보며 한숨쉬는 안영이(강소라). 세계적인 근로시간을 기록하는 우리들의 직장생활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직장'에 대한 또다른 질문으로 남겨놔야할 것같습니다. 무엇을 위한 '우리'이고 무엇을 위한 '한수'인지 늘 스스로를 되짚어보는 장그래라면 금방 알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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