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유나의 거리

유나의 거리, 강데렐라 유나의 마지막 선택은 사람이었다

Shain 2014. 10. 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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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경 작가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작가들 중 하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틀전 세상을 떠난 신해철씨를 비롯한 많은 예술인들의 지지와 응원 속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한때는 '마왕'이라 불리며 젊은층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던 신해철이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한 시대의 철학을 대변하는 사람은 충분히 대중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음악인 신해철이 대중의 요구와 생각을 정확하게 읽어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 먼저고 나중이냐를 떠나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과 음악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방송작가들 중에 김운경 작가를 최고로 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김운경 작가는 사람을 극적 흥미를 유발시키는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를 가장 중요한 테마로 삼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는게 체질에 맞고 좋다'는 유나. 자동차와 아파트를 엄마에게 돌려준 유나는 홀가분하게 웃는다.


누가 그랬던가요.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고 말입니다. 한 사람의 우주를 지켜본다는게 지루할 수도 있지만 그 누구의 삶이든 애정어린 시선으로 들여다 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유나의 거리'가 장물아비나 소매치기, 조폭같은 직업을 미화시키는게 아니냐고 말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거친 직업이 아닌, 나머지 반쪽인 인간을 보라 말하고 있습니다. 못되게 구는 사람들도 이면에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실존인물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 이상 인간을 탐구하는 노력은 격려받을 필요가 있죠.


한만복(이문식)의 다가구 주택에는 유나(김옥빈)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문간방 장노인(정종준)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준 짱구엄마(이재신)는 고시원에 살고 있습니다. 창만(이희준)이 매일 아침 차를 대기시켜놓는 그 골목에도 다닥다닥 붙은 작은 살림집들이 있습니다. 자신을 떠나 부자가 된 엄마(송채환)를 만난 유나는 그 복잡한 거리를 떠나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서 말그대로 신데렐라가 되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동안 못해준 것을 채워주는 듯 유나의 엄마는 유나에게 많은 걸 주고 싶어했습니다.


유나가 부자가 된 것을 알게 된 바닥식구들은 유나를 앞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유나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기자들에게 시달리는 영미(정유민)와 영미아빠(한갑수)의 사정도 알게 됩니다. 유나의 엄마는 유나에게 더 이상 옛날에 알던 그쪽 사람들을 만나지 말고 캐나다에 가서 네 과거를 모르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합니다. 거기다 유나를 보내기로 마음먹은 창만은 유나에게 한번 떠나면 쉽게 만날 수 없을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가끔 놀러 오라'고 말이죠. 모든 주변 사람들이 유나를 위해서 유나의 과거를 모두 버려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나는 엄마에게 헬스클럽 티켓과 자동차키를 반납하고 아파트에도 들어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소매치기같은 범죄는 저지르지 않겠지만 바닥식구들을 만나지 않는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강데렐라'를 포기하는 일은 엄마의 배경과 돈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같지만 생각해보니까 유나의 입장을 이해 할 것도 같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버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반면 옛날에 알던 친구들과 창만을 떠나는 일은 긍정적인 유나의 모습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유나는 남의 지갑을 털어 생계를 유지했지만 적어도 조폭이나 강도처럼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소매치기 일이 얼마나 나쁜 일인지 알게 된 후로는 소매치기 일을 더이상 하지 않습니다. 이게 소매치기라는 직업 이면에 숨은 유나의 좋은 점입니다. 유나는 힘든 처지의 바닥식구들과 다세대 주택 사람들을 가족처럼 챙겨주고 꽃뱀 주제에 이리 저리 치이는 미선(서유정)을 돌봅니다. 돈 한푼없이 인간성만 좋은 창만의 장점을 알아주고 사랑합니다. 그들을 외면하는 일은 유나의 장점을 버린다는 뜻이고 부정한다는 뜻입니다. 


콜라텍에 다녀온 그날밤 유나는 떠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유나의 거리' 등장인물들은 한마디로 딱 잘라 나쁜 놈이라 할만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창만이 다영(신소율)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폭행한 만복의 거친 행동 뒤에는 딸을 아끼는 마음도 있지만 창만을 아들처럼 가깝게 여긴 섭섭함도 숨겨져 있습니다. 다영을 좋아하지 않는 창만을 구박하고 유나를 흉보면서도 다영을 감싸주는 홍여사(김희정)에게는 의붓자식도 친딸처럼 사랑해주는 따뜻한 엄마의 마음이 있습니다. 자신처럼 꽃뱀의 길을 걷게 된 진미(주민경)를 미워하지 말라는 미선의 마음 속에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죠.


의붓딸 다영과 소주 한잔을 나누는 홍여사는 '김을 먹을 줄 모르고 여자를 볼 줄 모른다'며 창만을 흉봅니다. 다영도 걱정하고 창만을 아까워하는 홍여사의 작은 심술에 흐뭇하게 웃음이 났습니다. 창만이 그래도 '참 좋은 오빠'라고 받아들이는 다영도 귀여워 보였죠. 자신을 야밤도주라 놀리던 밴댕이(윤용현)과 화해하며 '연상의 여인' 운운하는 칠복(김영웅)의 주정도 재미있습니다.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건 이렇게 장점과 단점까지 모두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외로웠던 유나는 창만을 통해 이렇게 사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제가 어딜 가든 저랑 친했던 언니, 동생들 버리고 갈 순 없어요.


잘못된 과거를 고치는 건 좋은데 그 과거 속에서 만난 사람들까지 포기하는 건 속정깊은 유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밤중에 콜라텍을 다녀와 차속에서 잠든 장노인을 두고 창만과 대화를 나누는 유나는 '가끔 놀러오고 전화하라'는 창만의 말에 불쑥 '나 사실 가기 싫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못 잊을 거'라는 창만과 유나의 대화가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유나의 마음을 돌려세웠겠죠. 유나의 마음 속에서는 새로 얻게 될 아파트나 자동차 보다 창만이 더욱 소중했던 것입니다. 돈 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유나의 선택이 어쩐지 마음을 울립니다.


잘못된 과거가 죽도록 싫다고 해서 과거 속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창만이 콜라텍 매니저로 지내며 다영과 결혼할 수도 있는 현실적인 선택을 두고 다세대 주택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것처럼 유나도 보다 안락한 삶을 두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약간은 싱겁게 마무리된 것도 같지만 '보고 싶다'는 말에 달려온 창만과 그런 창만을 안아주며 우는 유나의 모습이 정말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창만이 야생으로 날려보내려던 황조롱이가 다시 품안으로 날아들었군요.


날려보낸 황조롱이가 다시 손위에 앉다. 창만의 진심이 소매치기 유나를 변화시키고 되돌려세운 비결이다.


노래방에서 양순(오나라)에게 유나가 아파트와 자동차를 모두 정리했다는 말을 말을 듣고 차를 타고 달려가는 창만의 모습이 일순간 기뻐 보인 것은 착각이 아닐 것입니다. 창만은 부자가 된 유나를 순수하게 기뻐해줄 수 없는 자신이 못됐다고 자책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잡는 이런 이기심은 환영입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냉정하게 굴던 유나가 '창만씨 곁에 있고 싶다'고 말합니다. 유나의 뒤를 쫓으며 소매치기를 그만 두게 만들고 싶다고 했던 창만이 드디어 유나를 변화시켰습니다. 창만은 이로서 한 사람의 우주를 구한 영웅이 된 것입니다. 그 어떤 드라마의 해피엔딩 보다 이 장면이 감동적이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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