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는 결국 아이를 낳게 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버님'이라고 할 때는 솔직히 조금 소름이 끼치는 부분도 있었죠. 만약 영주가 자연스럽게 말리지 않았다면 영주는 꼼짝없이 아들에게 맞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나마 대단하고 기특한 부분은 영주의 임신으로 아이들은 아무 영향도 받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표현은 좀 생각하기 싫고 끔찍할 수도 있있지만 그 아이들이 살아남아서 목숨을 보전한 것은 그런 표현이 아니면 설명이 안 될 만큼 운이 좋은 일이었죠.
어쩔 수 없이 형제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내고는 있지민 세 사람이 긴장한 얼굴로 주먹을 주고받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주먹질을 한다는 게 얼마나 세 사람의 사이가 떨어졌으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얼마나 멀어진 사이길래 그렇게 남처럼 행동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도대체 아이들과 남자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식구들이 좀 남처럼 지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까지 먼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남같이 구는 사이가 된 것인가요.
방호식(최영준)과 정인권(박지환)의 갈등은 보는 사람을 긴장하게 할만큼 무서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무기를 들고 휘드를 듯한 긴장감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어쨌든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말리고 '자식 간수 못했다'는 '무조건 애 떼라는 말이나 아이들에게 아이게 들게 상처를 주는 말이지만 인권이나 호식은 그런 말 한디에 자신들의 행동을 뒤돌아볼 아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간수하지 간수하지 못했다는 건 적절치 못한 발언이지만 어쨌든 이미 배속에 들어선 아이를 급하게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미 태어나기 직전 상태인 아이를 어쩌라는 것인지.
사람들 표현 중에 '애가 애를 낳는다'는 표현이 있죠. 두 아이가 아무리 상황이 급해도 그 어린 몸으로 어떻게 아이를 책임지라는 건지 결국 그 어린 꼬맹이를 책임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린애를 '혹'이라고 표현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본심인지는 모르지만 그 얼굴도 못본 어린애보다는 배속의 아이들 보다는 내가 가진 아이가 더 귀하고 소중한 법입니다. 어찌되었든 이 상횡에선 영주(노윤서)나 정현(배현성) 그냥 아직까지 남의 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아이를 지우라고 하는게 더 간단한 방법이갰죠. 아마 어른들 이라면 대부분 아이를 지우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이미 배는 불러왔고 임신 중단 시기도 지났으니 방법이 없긴 할 것입니다.
어쩌다 그 어린애들은 임신까지 하게 된 것일까요. 노윤서는 아이를 임신한 성태에서 힘겹게 벌어온 돈을 영주 혼저 쓰라며 건내주고 아이들은 자신들이 부모를 상처주고 있다는 자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영주는 학교는 어떻게 한 거냐며 정현에게 시비를걸고 '여자믿지 말라'며 한소리 합니다. 여자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아무 상환없는 여자를 믿지 말라고 한 것인지 몰라도 둘 사이에 모르는 일이 있는 것 만은 확실한 것 같죠.
한때 친구였던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 화해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