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풍선

독서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푸념

Shain 2009. 9. 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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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접했을 때가 언제인지 잘 기억은 못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최고 오래된 수상집은 88년도 판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책들은 시기에 맞춰 산 것이 아니기에 3쇄본인가를 구입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수상작품이 발표될 때 마다 한권씩 구입하게 되었다. 그중 몇권은 이가 빠진 상태지만 최소 15권 이상의 수상집이 책꽂이에 나란히 꽂혀 있다. 모을 땐 정성들여 모았는데 빌려준 책은 제대로 수거하지 못한 듯하다.

외지 생활을 오래한 편이라 책들도 많이 손상됐고 먼지와 햇빛을 참지 못하고 빛 조차 바래버렸다. 문자를 나열하는 모양새, 내부 편집과 디자인은 해마다 달라지는 것인지 90년대 초기 작품집은 다락방에서 꺼낸 60년대 소설책 만큼 낯선 느낌을 풍기기 시작했다. 아마 10년 쯤 더 소장한다면 할아버지 서재에 있던 책들처럼 종이 냄새 보다 먼지 냄새가 더 많이 나게 될 지 모른다. 내 방에 있는 대부분의 책은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다.

잃어버린 책들은 모두 어딜 갔을까. 얼핏 보아도 몇권 정도 공백이 보인다. 2009년 수상작 모음집의 제목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가지 즐거움' 김연수의 작품이 대상이다.



첫번째, 책은 왜 이리 무거울까

한번 읽은 책은, 읽은 순간 이미 머리 속에 각인을 한 셈이니 읽고 난 후엔 종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책에 집착을 보인다는 건 추억이 담긴 사진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행동일 수 있다. 선물 받은 책 조차 쉽게 버릴 수 있다는 친구에 비해 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거주지를 옮겼고, 나이테를 늘이듯 한 권 두 권 책을 재산처럼 늘여가기 시작했다. 보관할수록 가치가 오르는 소장본도 아니건만 책값이 야속하게 그 사이에 제법 많이 올랐다.. 라는 점을 여실히 느끼면서.

또 어디론가 떠나야한다는 부담과 함께 양손바닥을 아프게 누르던 책을 묶은 비닐끈의 압력, 그 따끔한 물리적 무게와 여유롭지 않았던 어린 시절부터 책을 위해 투입한 지폐의 무게, 책과 함께 한 세월과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들, 그들과 함께 가져가야할 기억들의 무게, 그리고 그 책을 만나고 몇번쯤 곱씹어 생각해야했던 갑갑한 불면증. 애초에 책을 사며 다졌던 마음, 점점 비워지는 각오에 비해 책은 상대적으로 무겁다.


두번째, 책은 왜 이리 가벼울까

불면증이라 그랬다. 정도가 가볍긴 했고 마음을 버릴 만큼 큰 앓이를 한 건 아니지만 책을 읽고 많은 걸 그려보던 밤이 있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세상을 바꿀 법한 이론, 혹은 알고 싶어서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은 지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현기증을 느끼던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같은 느낌 마저 일었다. 그렇지만 모든 책이 그렇게 묵직한 무게를 주는 건 아니다. 어떤 의미로, 책은 바람에 날리는 깃털 만큼 가볍다.


세번째, 책은 재가 되기 쉬운 종이

새 집으로 이사가는 동안 말릴 틈도 없이 어머니는 나의 보물같던 동화책을 모두 태워버리셨다. 이사하면서 먼지가 묻고 수해를 입을 때 책이 상했으니 다시 집안으로 들이기 보단 태우는게 마땅하셨을 거다. 그리고 어떤 책이든 책꽂이에 자리하는 그 순간부터 낡기 시작한다. 수해를 겪지 않은 책들 조차 바람에 연기에 햇빛에 태우지 않아도 서서히 재가 되어 간다. 나날이 흐려지는 기억처럼 책에 물리적인 수명 역시 참 덧없다.


네번째, 그럼에도 책을 가진다는 것은 뿌듯하다

재가 되기 쉬운 종이가 재산이 되긴 힘들 것이다. 유난히 풀벌레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가을 밤에 깨어 우두커니 홀로 앉아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귀를 간지럽히는 음악 보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텔레비전 화면 보다 전화 조차 걸 수 없어 애를 태우는 연인 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잠을 재워줄 도구를 발견할 것이다. 열띤 마음을 가라앉히는 존재는 오도카니 책상 위에 놓인 낡은 책이다.

다른 어떤 것 보다 친구가 되어 주는, 그 책과 함께 한 기억, 위로 받았던 추억이 떠올라 안심할 것이고 그 책에서 풍기는 오래 되고 익숙한 냄새에 취할 것이고 흐릿하지만 두루뭉술한 옛날 생각에 흐뭇하게 웃게 될 지 모른다. 많은 책을 가졌음은 틈틈히 꺼내어 돌이켜볼 수 있는 과거를 많이 가졌음이니 갈피가 다소곳이 꽂혀 있는 책을 보는 것 만으로 뿌듯할 일이 많지 않겠는가.



다섯번째, 항상 아쉬워서 뒤돌아보는구나

애초에 책을 읽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은 없었다. 어느 어느 책을 읽겠노라 마음 먹었다 해서 꼭 지켜야하는 까닭이 되는 건 아니다. 책의 여유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책이 사람을 뒤쫓는 때가 되면 더 이상 안식을 얻을 수 없는 짐이 되고 만다. '필독서'라는 표현의 맹점은 책 자체의 본질 보다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성을 강조한다는데 있다. 지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 도구가 책이든 전자사전이든 컴퓨터든 관계가 없다. 효율성의 문제로 책이 선호되는 것 뿐이다.

가까이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그 다짐을 잊지 않으면 어느새 스스로 굴레를 씌우게 된다. 스스로의 게으름에 여력이 나지 않을 땐 자그맣게 죄책감을 키우곤 한다. 미안할 까닭도 없고 집착할 까닭도 없으나 아무도 모르게 누려보고 싶은 몽상 탓이리라. 결국 욕심과 미안함은 끝이 없이 반복되니 오히려 고민의 씨앗이 되고 만다. 푸념하면서도 가까이 두는 이 마음은 평생 동안 놓치 않고 살아야할 미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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