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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드라마와 MBC 글로리아

Shain 2010. 10. 3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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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 드라마 'MBC 우리들의 천국(1990)'은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대학생들의 생활을 조명한 드라마였다. 지금이야 거리나 TV에서 흔하디 흔한게 대학생이지만 당시엔 대학에 진학하지 않거나 못하는 학생들이 제법 많았다. 성적이 떨어져서 못간 거면 넉넉한 집안은 재수나 삼수를 택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 대학에 못 가는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가정환경이었다.

1기의 캐릭터들은 원래 홍학표(박진수)와 정명환(오성대)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불치병에 걸린 최진실, 후배인 염정아, 운동권 선배인 문성근, 배종옥 등 약간은 진지한 문제도 생각해볼 수 있는 드라마였지만 2기의 주인공들은 김찬우, 장동건을 비롯한 부유하고 화려한 인물들로 바뀌어 버린다.

극중 등장하는 성대의 별명은 '빈대'였다. 시골 출신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정명환은 늘 아르바이트로 정신이 없고 종종 도시락도 얻어먹으며 날이 좋으면 서클룸에서 자고 추워 잠자리가 없으면 선배들 집에 얹혀살곤 하는 캐릭터였다. 꽤 많은 그 시절 대학생들이 동질감을 느꼈다고 한다.


MBC 우리들의 천국, 당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불치병을 앓는 삼수생 역으로 인기를 끌었던 최진실과 고민하는 대학생 역이었던 홍학표. (출처 : 1991. 경향신문 기사)



한 에피에서 정명환은 '빈대붙기'를 하던 중 운동권이라 감시당하고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는 문성근(구회성)의 집에 얹혀 살다 레포트 때문에 문성근을 관찰하게 된다. 생활이 어려운 정명환의 처지를 알길래 살갑게 대해주진 못해도 내치고 싶진 않았던 문성근이지만 자신을 힐끗거리며 관찰하는 정명환에게 화를 내고 만다. '도대체 뭐가 알고 싶냐'며 방에서 나가달란 문성근의 말에 쫓겨나 서클룸에서 잠을 자는 정명환이 참 처량했다.

정명환이 맡은 오성대의 캐릭터는 형편이 좋지 않은 대학생들의 표본이었다. 드라마는 과감히 운동권 선배와 정명환의 이야기를 드라마의 한축으로 넣었지만 홍학표의 전공은 '연극영화학'이었다. 그리고 교수 아버지에 정명환을 동생들의 과외 선생으로 둘 만큼 당시로서는 매우 민주적이고 부유한 가정환경을 가진 학생이었다. 이렇게 대조적인 서민 코드는 그 다음해 완전히 제거되고 만다. 지금은 장동건 주연의 우리들의 천국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예전엔 '달동네' 같은 극빈층이나 서민들 만을 대상으로 한 드라마들도 있었지만 서민 드라마의 계보는 생각 보다 잘 이어지지 않는다. 빈곤한 현실을 TV에서 보고 싶지 않은 시청자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하고(오성대의 캐릭터는 동질감을 느꼈다지만 외면받았다) 제작자 입장에서 광고를 섞기에는 부유층 드라마가 낫다. 요즘은 '루저물'이 종종 이 서민 드라마의 역할을 대신한다.

최근 많이 볼 수 있는 루저(Looser)  드라마에서 이런 서민층 코드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들은 현재에 대한 만족, 의욕없는 무기력, 자발적인 빈곤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 과거 서민층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비참함이나 마음아픈 장면들은 거의 없다. MBC 드라마 글로리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또 딱히 서민층이라기도 루저라고 평가하기도 애매한 인물들이다.

첫회부터 여주인공 나진진의 언니 나진주가 술취한 사람들에게 성추행되는 장면이 방송을 타 화제가 되었던 이 드라마는 배경이 아에 삼류 나이트클럽이다. 한물간 가수 정우현(이영하)가 이끄는 이곳에서 나진주는 장미를 팔고 나진진은 의상 가방을 담당하고 있다. 설정 만으론 시청자가 외면하고 싶은 지지리 궁상 가난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할 것도 같다.




배두나가 맡은 주인공 나진진은 사고로 부모를 잃고 5세 지능을 가진 언니 나진주(오현경)를 데리고 아웅다웅 살다 보니 서른살이 된 사람이다. 언니를 끌고 버스에서 껌파는 일부터 안해본 일이 없다. 직업도 변변치 않고 깡패 끄나풀이나 하던 볼 것 없는 하동아(이천희)는 형이 남긴 피붙이, 10살 짜리 하어진(천보근)을 데리고 살고 있다. 그들은 김밥을 파는 오씨 할머니 댁에 세들어 사는 가진 것 없는 서민이다.

또다른 주인공 이강석(서지석)은 엔터테인먼트 회사 사장으로 부유층 자제이고 정윤서(소이현)는 그만두긴 했지만 발레리나 출신의 재벌집 딸이다. 이 두 사람은 그 대단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본부인을 따로 둔 아버지의 혼외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의미로는 네 사람 모두가 루저이지만 상대에게 서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사람들이다.

나이트클럽 '추억 속으로'에서 일하다 우연히 무대에 오른 주인공 나진진은 노래부르기가 좋아 서른살에 가수가 되기로 맘먹는다. 클럽에서 종종 노래하던 가수 여정난(나영희)의 아들인 이강석을 만나 서로 좋아하게 된다. 정윤서는 항상 돈 잘 버는 집으로 시집가라 추궁하는 엄마(정소녀)의 압박을 피해 집안에서 준비한 상대 이강석, 이지석(이종원) 형제가 아닌 하동하와 사랑에 빠진다.




최근 방영 내용에서 사고를 당해 정신연령이 5세 밖에 되지 않는 나진주가 납치되고 하동하와 정윤서의 애절한 사랑이 결혼으로 맺어진다. 이강석과의 사랑이 무르익고 스타오디션에 진출한 나진진으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셈이다. 혼외자를 두고도 가정을 이끌어가는 아버지들과 아들들의 가정사도 꽤 재미있게 묘사된다. 그들은 가해자같지만 정서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서민 드라마라기도 루저물이라고 하기도 뭐한 이 드라마 글로리아는 부유층의 냉정한 관계와 대조되는 서민들의 뜨거운 가족애로 보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셋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넓은 재벌집에 사는 사람들 보다 안정되어 보인다. 시청자의 반이상 아니 삼분의 이 이상이 서민인 나라지만 TV에서 실종된 버린 서민들을 저렇게라도 볼 수 있다는데 위안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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