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소서노가 여왕이라면?

Shain 2010. 12. 12. 16:23
728x90
반응형
2006년 방송된 'MBC 주몽'의 소서노(한혜진), 졸본부여 연타발의 딸이자 남자 못지 않은 기개와 지략을 가진 인물로 표현되는 그녀는 초반의 기세와는 달리 사랑 때문에 많은 걸 포기하는 약한 여성이 되어갑니다. 운명처럼 사랑하는 주몽이 아닌 다른 남자 우태와 결혼했고, 함께 국가를 세우면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듯 했지만 예씨 부인(송지효)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 마저 포기해 버립니다.

드라마 '주몽'의 단점 중 하나는 소서노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한 것입니다. 두번째 남편의 아들이 아닌 온조와 비류의 왕위 계승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나라를 세움에 공헌하고 그에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새로운 나라를 세웠던 여인이니 어떤 웬만한 영웅 보다도 대담한 소서노입니다. 그녀의 삶이 '사랑'에 좌우된 건 못내 아쉬운 부분이더군요.

운명적으로 주몽을 사랑했지만 희생하는 것으로 표현된 'MBC 주몽'의 소서노(한혜진)


'KBS 근초고왕'의 소서노는 그와는 달라졌습니다. 주몽의 뒤에서 활을 날리며 짧은 순간 등장한 그녀는 남편에게 혼인 예물을 내던지고 자신의 부족을 이끌고 욱리하(한강)로 내려갑니다. 나라 이름을 밝지(백제, 일설에 의하면 온조라는 말이 백제라는 뜻이라고도 해석합니다)라 짓는 그녀는 자신의 부족장, 나아가서는 한나라의 국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누누히 말하지만 드라마 속 백제는 사서 그대로가 아니라 대부분 창작된 내용입니다. 등장인물 중 비류왕, 근초고왕, 진고도, 진정, 고국원왕 사유와 조불, 소우, 고노자 등은 사서에 기록된 인물이지만 사서 속 관계와 드라마 속 관계가 약간씩 다릅니다. 드라마는 소서노를 '국조모(國祖母)'라 부르지만 나라의 시조는 온조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그대로 사서를 따르고 있네요.


왜 소서노가 왕이 되지 못 했나

한 부족을 이끌고 욱리하로 남하해 국가를 세운 여인 소서노. 그녀를 따라 이주한 사람의 숫자가 한 나라를 세울 정도였고 그 세력은 주변의 땅을 모두 흡수할 정도였으니 두 아들을 거느린 모습이 마치 왕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왕권을 두고 남편에게 머리 조아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선 것은 왕권 다툼을 하다 자신의 아들과 부족이 목숨을 잃을까 염려해서였을 것입니다.

중국이나 유교적인 관점에서 왕이 '여자'라는 건 거부감이 아주 크지만 모계사회에서 부족장이 여자인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오래된 전설 속 '마고할미'의 존재가 여신이나 족장을 의미하는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초기의 백제는 나라가 작았고 소서노의 존재가 부족장 그 이상이었으므로 당연히 그녀가 왕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습니다.


특히 비류와 온조의 세력이 양분되어 있다면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도 어머니의 세력 조율이 필수적이지 않았을까요. 때마침 이런 의문에 해답을 줄만한 기사가 한편 떴습니다. 바로 온조가 백제의 시조가 아니라 소서노가 백제의 시조이자 초대왕이란 내용인대요(오마이뉴스 : 백제 시조는 소서노, 아들 온조가 죽였다).

삼국사기에 등장한 백제의 제사 즉 천지신명, 동명왕(부여의 시조왕), 소서노의 제사를 순서대로 지냈음을 지적하고 시조라는 온조의 제사[각주:1]가 그들의 제사 보다 등한시 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소서노 여왕설은 신채호가 '조선상고사'에서 주장한 내용으로 신채호는 사서를 기반으로 소서노가 아들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그 때문에 비류와 온조가 갈라진 것이라는 거죠.

이 부분에서 사서 속에 기록된 '할머니가 남자로 변한다'라는 표현을 소서노가 죽고 온조가 왕이 됐다는 말로 풀이합니다. 제법 그럴듯한 추측에 무릎을 치게 하는 내용이죠. 물론 이 모습이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이 위대하게 생각한 여성상은 아니었을 것 같네요. 한 성씨의 대표격인 위치에 있지만 정권 도전은 생각 못하는 해비 해소술(최명길)이나 진비 진사하(김도연), 고구려 제 2왕후 부여화(김지수)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죠.



근초고왕, 눈물 대신 웃어제끼다

곰제별궁에서 몰래 큰 소리로 울며 자식을 죽이고 아내들에게 못할 짓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비류왕. 부여구(감우성)은 '아바지처럼 혼자 울지는 않겠노라'며 그 자리를 떠나지만 진사하가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자결하고 어라하가 되라는 말을 남기고 죽자 찢어지는 가슴에 눈물 대신 웃음을 터트립니다. 평생의 연인을 잃고 어머니까지 잃은 부여구는 아버지의 울던 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죠.

가족 보다 백제를 먼저 생각하는 '어라하'의 존재. 영웅적이면서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그들의 눈물은 조금은 불편하지만 사극을 보는 또다른 재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영웅'이 등장하는 드라마 특유의 감정선 때문에 살기 위해 거짓말하고 인격을 바꾸는 다른 형제들의 '인간적인' 모습이 몹시 어리석어 보이죠. 부여몽의 비극적인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부여구의 할아버지, 늙은 흑강공 사훌(서인석)의 애원으로 부여준(한진희)이 12대 어라하인 계왕에 오르는 조건으로 부여구는 목숨을 건지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여찬(이종수)을 태자로 세우긴 하겠지만 계왕의 정권은 고구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겠죠. 고국원왕 사유(이종원)는 백제를 복속시킬 생각이 가득하기에 정권 유지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비류왕을 독살로 처리했지만 그는 무려 41년 동안이나 백제를 다스린, 제법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극중에서도 술수에 속아 힘을 발휘하지 못 했지만 뒤를 받쳐준 진씨가 해씨 보다는 훨씬 든든한 뒷배입니다. 오히려 백제 12대 왕인 계왕이야 말로 즉위 2년 만에 사망해 독살당한 것이란 이야기가 있죠. 부여구가 돌아올 때까지 백제는 한동안 해비 해소술과 계왕의 정권 다툼 때문에 시끄러울 듯 합니다. 오늘밤 방송분에서는 부여구가 요서로 떠날 수 있을까요.



  1. 드라마에서는 백제 시조 온조의 사당을 '묘시조온(廟始祚溫)'이라 하고 소서노의 사당은 곰제 별궁에 있다고 표현합니다. 현재 남아 있는 온조의 사당은 '숭렬전(崇烈殿)'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본문으로]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