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김태희 발연기 논란을 보며

Shain 2011. 1. 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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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비해 'MBC 마이 프린세스'의 김태희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졌습니다. 일주일 쯤 지나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영될 시점이니 그럴만 합니다. 김태희가 푼수 공주역으로 '발군의 연기를 보여줬다' 또는 '여전히 발연기였다'라는 평가는 개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장이지만 때로는 타인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도 있는 부분이니 '어떤 말이 맞다'라고 단정하기는 힘들겠죠.

'예쁜' 배우 김태희, '서울대' 김태희라는 수식어는 김태희라는 배우의 장애물입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부분이 연기에 그닥 도움줄 리 없지만 '지적인 이미지' 배우 1순위가 되는데는 큰 기여를 한 게 사실이라 '서울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뷰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발목을 잡고 있는 수식어이기도 합니다.




처음 주목 받았을 때 단역부터 시작해 연기경력을 쌓았으면 그런 '얼굴 이쁘고 학력만 좋은 배우'라는 폄하에서 벗어났을 수도 있겠지만 하필 CF 스타로 각광 받아 주연급으로만 활약한게 독이 된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유명세나 수식어에 비해 부족한 연기력이 도드라지게 됐고 언제부터인가 '연기력이 좋지 않은 배우'란 또다른 말이 김태희를 따라 다니게 됩니다.

'연기력'은 지적당하지만 예뻤던 배우는 예전에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중년 연기자가 된 금보라, '즐거운 나의 집'에서 모윤희 역을 맡았던 '황신혜', 역시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김혜수' 역시 예쁜 얼굴이 눈에 띄어 주목을 받았으면서도 데뷰 때 '연기력'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함께 받던 배우들입니다. 김혜수는 지금은 연기까지 인정받는 톱스타 배우라 할 수 있지만 황신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여전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죠.

이들 배우에 대한 '편견'은 나름 정확하기도 하고 나름 억울하기도 합니다. 같은 실력으로도 자신에게 맞는 작품을 꾸준히 선택해 성장한다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지만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이 고정된 '수식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배우도 있습니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얼굴 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데뷰 당시(83년) / 첫사랑 촬영 당시(86년)의 황신혜



의외로 황신혜의 '조각같은 얼굴'은 83년 MBC 공채 탤렌트로 뽑혔을 당시엔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컴퓨터 미인'이란 별명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당시엔 '서구적인 얼굴'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죠. 데뷰 후 한동안은 화장품 모델로 오히려 더 주가를 높입니다. 그 당시 TV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하던 배우는 허윤정, 이기선 등의 동양적 외모를 가진 탤렌트였습니다.

86년 방영된 첫주연작 'MBC 첫사랑'에서 윤하(허윤정)의 고아시절부터 알던 오랜 남친 지수(유인촌)를 유혹해 빼앗는 역할을 맡았을 때는 시청자들의 미움과 비판을 동시에 받게 됩니다. 지수를 자신의 남편으로 만들자 상심한 허윤정은 해진(황신혜)의 외삼촌 재천(남성훈)과 결혼하고 윤하의 결혼식날 남편이 옛애인의 이름을 부르자 질투를 참지 못해 남편에게 공기총을 발사하고 맙니다.

짝사랑할 때의 숨겨진 감정, 그리고 질투하는 격한 감정까지 표현해야하는 어려운 역이었는데 데뷰 초기의 황신혜는 특유의 불분명한 발음과 표현 때문에 지적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주연급으로 활약하긴 했지만, '예쁜 이미지'는 유지되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죠. 시대가 바뀌어 현대적인 미인상으로 각광받고 난 이후에도 '연기력' 문제는 항상 도마에 올랐습니다.


김혜수의 데뷰작 영화 '깜보(1986)' 이 당시 배화여고 2년생이었다고 한다.



이런 황신혜도 노력을 아예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MBC 똠방각하(1990)'에서는 화려하고 요란하고 과장된 몸짓의 다방 마담 미스 류춘희 역할로 동네에서 땅판다고 설치는 남주인공 김덕수(연규진)을 홀리는 역할을 맡습니다. 늘 고운 주인공 역할만 맡던 황신혜같지 않은 역이지만 '연기자'로서 나아기지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죠.

1986년경 16살 나이로 데뷰해 베스트셀러극장 등에서 주연을 맡은 김혜수 역시 황신혜와 마찬가지로 주연급을 놓치지 않는 배우지만 데뷰 초기 워낙 어린 나이로 주연을 맡아 20살 이후엔 '베스트셀러 극장' 등의 단막극에 출연하며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술집 작부 출신 광부 아내 역을 맡아 사투리 연기를 펼칠 땐 어색하기는 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신혜에 대한 '편견'은 일부 남아 있지만 초기의 부자연스러운 발음과 표정 연기를 고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지금은 색깔있는 연기자로 성공한 배우입니다. 김혜수 역시 모든 연기가 가능한 톱스타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죠. 이 두 사람은 주연급으로 계속 활약할 수 있었음에도 변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이 현재의 두 사람이 있게 만든 원천일 것입니다.




최근엔 많은 연기자들이 '연기수업'을 받고 드라마에 임하기에 가수 출신이란 것도 그닥 문제가 되지 않고 바로 드라마에 합류하곤 합니다. 'KBS2 드림하이'나 '프레지던트'의 제이, 성민 등도 아이돌 출신 배우입니다. '아이리스'의 탑 역시 대표적인 가수 출신 배우고 소녀시대의 윤아 역시 주연급 배우로 활약합니다. 과거 논란이 일었던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죠.

과거와 달리 이들은 신인으로 출연해도 미숙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제대로 연기를 해내는 경우가 많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항상 '연기력 부족' 논란에 시달리게 됩니다. 너무 일찍 스타가 되어 연기경력을 쌓지 않은 채 경험해 보지 않은 내용을 표현하자니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습니다. 혹은 시청자가 이해할 수 없는 붕떠버린 연기가 됩니다.

김태희가 겪었던 부족함은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연기자로서 꼭 거쳐야할 '수련'의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는 점은 앞으로 극복해야할 난관이고 이번 '마이 프린세스' 출연을 계기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으면 합니다. 이번 드라마가 성공하면 자신을 뒤따라 다니던 수식어를 벗어나 설명이 필요없는 '연기자 김태희'로 거듭날 계기가 될 수 있겠죠. 시청자 역시 기쁘게 색안경을 벗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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