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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 가시나무새 전설 정말 있을까

Shain 2011. 3. 1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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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와전된 기사들, 정확치 않은 내용들 때문에 다툼이 붙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과거 논문이나 리포트에 신문기사를 당당히 참고문헌에 기재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은 신뢰도가 많이 저하되어 감히 참고자료 목록에 올리기 껄끄러운 경우도 많습니다. 가끔 정확치 않은 사실을 유포할 때는 한번쯤 조사를 하는게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연예란에서 그런 부분을 기대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가시나무새'가 방영하기 시작할 때 쯤 이 드라마가 콜린 맥컬로우(Colleen McCullough) 원작을 드라마로 옮겼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여자 주인공 두 명에 남자 주인공 한 명인 이 드라마가 무슨 수로 콜린 맥컬로우의 '가시나무새'라는 걸까 의아했는데 방영되는 내용을 보니 실제로도 전혀 다른 드라마더군요. 하여튼 덕분에 진짜 원작 소설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떠올랐습니다. 1983년 미국을 강타한 화제작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각주:1]'입니다.


미니 시리즈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의 첫 시작 부분

미국 ABC 채널의 이 '가시나무새'는 1977년 베스트셀러였던 소설을 흥미롭게 드라마로 옮겨놓았고 호주를 배경으로 펼쳐진 신부와 소녀의 금지된 사랑, 광활하고 아름다운 호주의 풍경 등을 시청자들에게 선사한 명작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헨리 멘시니가 주제곡을 맡아 그해 에미상과 골든 글로브를 모두 석권하기도 했었습니다. 추기경이 된 카톨릭 신부가 몰래 숨겨두고 사랑한 여성이 있다는 파격적인 내용이 결코 가볍게 다가오는 내용은 아니었죠.

켈트족의 전설이라는 '가시나무새'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 만한 내용입니다. 태어나자 마자 가시 나무를 찾아다니고 가시에 찔려 죽어갈 때는 이 세상에 어떤 생명체 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켈트족 전설에 나오는 새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콜린 맥컬로우도 책 서문과 본문 중에 그 전설에 대한 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찔려죽을 것을 알면서도 가시를 찾아 헤매는 가시나무새.

주인공 매기(레이첼 워드)와 랄프 드 브리카사르 신부(리처드 챔벌레인)에겐 서로가 상처를 입을 것을 알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가시나무였고 평생을 희생해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면서 죽어간 주인공들이었죠. 가시나무새의 고통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은 처절한 고통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시나무새'는 오래된 전설 속의 교훈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멋진 소설이었습니다.

ABC 드라마 '가시나무새(The Thorn Birds)'의 한장면, 화재 후 살아남은 장미


황량한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드로게다 목장, 부모들의 무관심 속에 자라난 소녀 매기 클레어리와 불복종을 이유로 오지인 호주에 부임받았던 젊은 미남 신부의 사랑은 필연적인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를 화재로 잃고, 엄청난 화재에서 살아남은 장미를 매만지던 매기는 자신의 고모였던 메리 카슨의 엄청난 유산으로 로마 카톨릭으로 돌아간 랄프 신부의 위로를 받으며 사랑을 고백합니다.

랄프 신부의 성경책 속을 떠나지 않는 마른 장미는 랄프가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자 상처입니다. 주연 리처드 챔벌레인은 추기경으로서의 야망도 연인에 대한 사랑도 포기하기 힘든 신부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냈습니다. 드넓은 목장을 달리는 레이첼 워드의 매기도 세계를 매혹시킬 만큼 아름다웠죠. 192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까지 묘사되어 소설과 드라마는 명작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멋진 러브스토리로 승화된 가시나무새의 전설, 그렇다면 켈트족에 전하는 원 전설은 어떤 내용일까요. 콜린 맥컬로우의 77년 소설 서문과 랄프 신부의 대사로 소개된 그 전설은 가시나무를 찾아 가시에 찔려 죽는다는 새의 전설을 이야기해주지만 고대 켈트족에 진짜 그런 전설이 있는 지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가시나무새의 전설을 올려놓은 사이트는 콜린 맥컬로우가 소설에 썼던 원문이나 랄프 신부의 대사를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입니다.

1919년에서 1969년까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신부와 매기의 일생


사실 켈트족 또는 앵글로 켈트족에게 구전되어 온다는 기도문(Prayer)이나 시에서 전하는 전설들이 이 소설의 원작자가 전하는 전설처럼 선명한 내용일 거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고대의 자료라면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고 현대어와 약간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겠죠. 소설 구문이 아닌 원문을 찾아 읽어보고 싶었던 저로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고대 켈트족의 시나 기도문을 올려둔 곳은 많았지만 가시에 찔려 죽는 새에 대한 이야긴 찾지 못 했습니다. 짧게 올려진 가시나무새의 이야기는 고대 켈트족의 오랜 전설이라며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책 서문에 적힌 글이 소설가 콜린의 글인지 진짜 전설인지 확신할 수가 없네요. 켈트족의 기도문에서 해당 부분을 찾는다면 다시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There is a legend about a bird which sings just once in its life, more sweetly than any other creature on the face of the earth. From the moment it leaves the nest it searches for a thorn tree, and does not rest until it has found one. Then, singing among the savage branches, it impales itself upon the longest, sharpest spine. And, dying, it rises above its own agony to out-carol the lark and the nightingale. One superlative song, existence the price. But the whole world stills to listen, and God in His heaven smiles. For the best is only bought at the cost of great pain.... Or so says the legend.
- 가시나무새의 전설, 콜린 맥컬로우 'The Thorn Birds'

'The Thorn Birds: The Missing Years'의 프로모션 이미지(왼쪽)와 원작의 이미지(오른쪽)


한편 83년 큰 인기를 끌었던 가시나무새는 1996년에 다시 한번 '미드퀼[각주:2]'이 제작됩니다. 'The Thorn Birds: The Missing Years'는 제목으로 미국 CBS에서 방송되었는데 랄프 신부 역은 리처드 챔벌레인이 그대로 출연했지만 주연인 매기를 비롯한 나머지 인물들은 당연히 모두 바뀌었습니다. 원작 출연진이 당시로서도 엄청난 스타급들이라 그대로 출연시키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본편의 이야기가 1919년경을 시작점으로 잡는다면 이 미드퀼은 1943년쯤을 이야기의 시작으로 잡습니다. 매기가 랄프 신부의 아이를 루크의 아이로 위장한 채 드로게다 목장에서 정착했을 때로 랄프 신부가 대주교가 되기 전까지 생략된 20년쯤의 이야기입니다. 살아남은 두 오빠가 전쟁에 참가해 매기 홀로 목장 경영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전남편 루크가 찾아와 애원하는 등의 내용이죠.

돈에 집착하며 매기를 등한시하던 남편 루크가 찾아온다는 것은 삼류 통속극에서는 자극적인지 몰라도 어쩐지 본 이야기의 기본 느낌하고는 맞지 않습니다. 데인이 랄프의 아들이란 걸 말하지 않고 20년간 살아온 세월의 고통은 가시나무새의 전설에 비교될 정도로 '신에 도전한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신이 랄프를 빼앗아 갔으니 아들 데인 만은 몰래 키우겠다는 매기의 의지였습니다.

KBS 드라마 '가시나무새'


이 미드퀼은 덧붙여 소설의 내용을 무시한 무리한 설정으로 비난을 받습니다. 원작에서 17살이 되어 신부가 되겠다고 했던 아들 데인이 3살에 신부가 되겠다고 했던 걸로 설정한다던지 랄프 신부가 모든 걸 관두고 매기 옆에 정착하고 살겠다고 하는 등 전작의 인기를 등에 엎고 화제를 몰려고 했을 뿐이란 비난을 받기 충분했다고 합니다. 특히 귀족 출신으로 점잖고 느린 말투의 매기 엄마(무려 진 시몬스였습니다)가 빠른 말투의 수다꾼으로 변해버린 건 충격이었다는군요.

'가시에 찔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지만, 가시나무새는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소설은 신부로서의 야망을 이루려는 랄프 신부의 경건한 아픔으로 묘사되었지만 고통을 감내해야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는 포기할 수 없는 테마인가 봅니다. 내용은 다르겠지만 여주인공이 엄청난 고통을 겪으리란 건 분명하지 싶네요. 다시 한번 한국의 드라마로 태어난 '가시나무새'의 이야기도 기대해 봅니다. 오늘 따라 헨리 멘시니의 오리지널 음악이 참 아름답게 들리네요.


* 어제 오늘 계속해서 블로그 스킨 수정 중입니다. 페이지 오류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
  1. 미니시리즈 '뿌리(Roots)' 다음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미국 드라마입니다. [본문으로]
  2. Midquel - 드라마나 영화의 스핀오프 방식 중 하나로 프리퀼이 본편의 전 이야기를 다룬다면 미드퀼은 본편에서 생략된 중간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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