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문화

이육사의 '절정' 시대를 품지 못한 시인은 시인이 아니다

Shain 2011. 8. 16.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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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기억에 시인 '이육사'는 그냥 저항 시인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참고서에서도 그의 인생이나 그가 쓴 시의 문학적 가치를 논하기 보다 마치 문학인이 '항일 운동'을 했다는게 옥에 티라도 되는 양 '저항 시인'이란 이름을 붙여 부르곤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흔히 접하던 이광수나 서정주, 모윤숙이야 말로 연약한 문학인이란 이름으로 현실에 눈감은 비겁한 인간 군상이고 그들이 시대를 외면하며 써내려간 글의 문학적 가치라는게 이육사가 평생에 걸쳐 극복하고자 했던, 시대적 비운에 비하면 그닥 극적인 일도 아닌데 말입니다.

8월 15일 오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절정'을 보았습니다. '절정'은 이육사가 남긴 시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저항 시인'이라는 별명으로만 불리웠던 한 남자. 이원록이라는 본명 보다는 한때 죄수번호였다는 264를 호로 삼았다는 별난 남자의 이야기는 10여년 전만 해도 그닥 알려진 게 많이 없었습니다. 그가 한반도에서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떤 시를 써내려 갔는지 어떤 경위로 감옥에 17번이나 들어갔으며 만주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드라마로 표현된 그의 인생은 상처와 고통 뿐이었습니다. 평생 그의 옥살이를 봐야했던 아내 안일양(서현진)과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의 어머니 허길(고두심), 그가 세상을 바로 보는 눈을 가졌음을 알고 있기에 고달프게 살 것임을 예감했던 유학자 할아버지(오현경)와 독립을 보지 못하고 그의 눈앞에서 죽어간 친구 윤세주(이승효). 여러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최고의 악기를 타고났지만 그 때문에 시대를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었던 한 시인의 이야기가 안타깝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항일운동을 한 이육사에 대한 정보가 알려진 건 얼마되지 않습니다. 작품 몇가지만 전하고 나머지 인생의 몇장면이 세상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던 이육사, 몇년전 제작된 다큐멘터리를 보니 만주에서 죽어갔음을 알려줄 같은 문중의 목격자가 나타나 시인이자, 항일운동가였던 그의 인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온라인 '이육사 문학관(http://www.264.or.kr/)'을 비롯한 다양한 곳에서 그의 시와 인생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저항 시인'으로 불리던 수십년 세월에 비하면 응당한 관심을 받게 된 셈입니다.

역사 이전에도 점령당하는 민족이 있었고 근현대 이후에도 세상엔 식민지가 된 많은 나라가 있지만 식민지 상황에서 벗어나 독립을 이룬 나라는 생각 보다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또 자신들의 나라가 식민지라기 보다 강대한 한 나라의 일부로 경제적 이익을 누리면 그만이라 여기는 곳도 있습니다. 식민지로 지내온 세월이 워낙 오래 되어 자생할 능력이 없는 지역이기도 하고 독립해서 생기는 이익 보다 식민지로 남는 것이 이익이라 여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나라가 '독립'을 원하는 건 아닌가 봅니다.


과거엔 지역공동체나 민족이 함께 만드는 것이 국가였기에 국가를 지킨다는 것이 내 가족과 핏줄을 지킨다는 뜻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또 패망한 나라의 비극을 보며 국가가 없는 설움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국가의 의미가 다소 많이 퇴색해 마치 새로 이사간 곳의 주소를 바꾸듯 필요에 따라 바꿀 수 있는 것이 국적이고 나라라는 개념이 강해졌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내가 속할 수 있는 나라와 지역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 사람들은 수십년전의 사람들이 그리 갖고 싶어했고 그리워한 나라, 대한민국이란 그 나라를 얼마나 되찾고 싶어 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모든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가족들까지 포기하며 그들이 갖고자 한 나라 그 대한민국을 국민들은 어쩌면 방치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조상들이 갖고자 했던 나라이자 지키고자 했던 그 나라의 가치를 모른다쳐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소중함을 안다면 광복절의 의미가 새로울 법도 한데 나날이 이 나라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국적을 쉽게 바꾸고 버리듯 문학계에도 일명 친일문학가라 불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은 정말 나약하고 고문에 견디기도 힘들고 또 일본이라는 거대한 힘의 상징 앞에서 다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드라마는 이육사가 초인이기에 한낱 여리고 갈대같은 다른 문인들을 한 수 아래로 본 것이 아님을 표현합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 바닥을 구르고 누구 보다 미식가에 멋쟁이였음에도 밥알 하나 찾기 힘든 초라한 식사를 먹는 볼품없는 옷차림의 그가 친일 문학가들 보다 보다 강하고 잘나서 고문을 버틴 것은 아닙니다.


그가 '저항 시인'으로 불리며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는 동안 많은 문학인들이 내선일체를 외치며 한국인들이 태평양 전쟁에 나설 것을 종용했습니다. 극중에서 등장한 서진섭(백종민)의 모델은 '누가 일본이 망할 줄 알았나'라는 말로 유명한 서정주이고 극중 노윤희(윤지혜)의 모델은 친일 문학가 최정희(혹은 노천명이나 모윤숙이 될 수도 있겠군요)라고 합니다. 그들이 시대를 외면한 글을 쓰며 문학인으로 불리는 동안 육사 이원록은 글을 쓰고 항일 운동을 했습니다.

물론 예술, 그중에서도 문학은 목적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만 몇몇 '문학가'라 불렸던 친일 소설가들처럼 시대를 외면하고 써내려간 멋과 인생이 진정한 문학이라 생각치는 않습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지 내가 발을 디딘 땅에 어떤 아픔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하는 그들의 글은 빈껍데기인 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육사야 말로 진정한 시인이고 진정한 문학가이며 단지 '저항 시인'이 아닌 시대의 문인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그의 시를 읽고 그의 인생을 보고 두 편의 특집 드라마를 보는 내내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돌아보지 않았던 시인 이육사. 북경의 한 감옥에서 쓸쓸하게 처형당했음에도 그의 죽음 조차 모르고 있었던 한국 정부. 항일 운동가이자 시인이자 진짜 영웅이었던 그를 '저항 시인'으로만 기억하던 우리의 무관심. 무력이 꼭 필요하다 역설했던 윤세주(이승효)와 비교되는 그의 비폭력 항일운동도, 시대의 슬픔을 온몸으로 감싸안던 그의 모습도 끝까지 서글프게 다가왔습니다. '진짜 눈을 가진' 이육사의 인생 한번쯤 느껴보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출연 배우들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윤세주 역의 이승효는 '선덕여왕'에서 타고난 무장 알천을 연기했듯 이번에도 일제에 대한 분노가 항일운동의 저력이 되는 군인같은 인물을 멋지게 연기했습니다. '짝패'에서 의적 역할을 하던 서현진은 독립운동에 투신한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순종적인 듯 따뜻하게 남편을 감싸주는 아내 역에 최적이었고 조선 출신 일제 고등계 형사 박이만(엄효섭)이 이육사의 시를 읽으며 끝내 흔들리는 장면은 최고의 명장면이었습니다. 아이돌 출신 연기자 김동완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배역을 맡은 것 같더군요. 우연찮게 건진 최고의 드라마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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