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해를 품은 달

해를품은달, 원작의 맛을 잘 살린 악녀 민화공주와 보경

Shain 2012. 3. 2.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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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아역들이 놀라운 연기력이라며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반면 성인 연기자들은 등장 초반 하나같이 연기력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지금은 폭풍 눈물을 쏟아내는 이훤 역의 김수현 조차 처음에는 신경질적이고 미숙한 어린 왕이란 지적이 있었을 정도니까요. 허연우 역의 한가인은 최근 동그란 얼굴과 눈을 빗댄 '한토마스'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이래저래 사극에는 알맞지 않은 연기자란 비난이 끊기지 않고 있는데 저 역시 현대극에서는 한껏 매력을 뽐낸 한가인이 빛을 발하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반면 원작에 비해 역할이 늘어난 두 캐릭터 즉 민화공주(남보라)와 중전 윤보경(김민서)는 나날이 발전하는 연기로 보는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이훤과 허연우 사이에 끼어드는 양명(정일우)의 역할이 지지부진한 요즘 허염(송재희)을 얻기 위해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게 이용된 민화공주는 어제의 한장면으로 자신의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은월각의 울음소리가 그친 것을 느끼며 허연우가 살아돌아왔음을 알게 된 보경 또한 공포에 질린 겁먹은 연기로 악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정받는 캐릭터로 변신했습니다.

민화공주를 인질로 허연우의 죽음을 덮자고 하는 대왕대비 윤씨.

캐릭터를 살리고 죽이는 것은 설득력있고 적절한 연출이기도 하지만 연기자 본인의 표현 또한 그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원작의 민화공주는 너무도 자기 밖에 모르는 철없는 성격이라 순진한 척하는 최고의 악녀라는 평가까지 받았습니다. 아무리 어린 시절 할머니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한들 자신의 오빠이자 왕인 이훤이 추궁하면 죄의식을 느낄 법도 한데 남편 허염이 자신을 단죄할 때까지 죄를 모른척하는 모습이 압권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동정받을 만한 역할로 태어난 것은 남보라의 열연 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훤과 함께 눈물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더군요.

허연우 만큼 학문을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본래 보경도 똑똑하고 영리한 세자빈 후보였습니다. 조카를 보고 흐뭇해하는 아버지 윤대형(김응수)의 뜻을 한눈에 알아챌 만큼 눈치도 빠른 보경입니다. 그녀는 여차하면 아버지가 자신을 버리고 이훤을 왕위에서 끌어내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화려한 구중궁궐이 외롭고 무서운 곳으로 느껴진 것은 이훤의 냉대가 뼈에 사무쳤고 교태전의 진짜 주인은 자신이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듯 마지막에 기대야할 가족 조차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중전 보경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맙니다.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만든 민화공주의 눈물

김수현과 남보라가 연기 호흡을 맞춘 건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짜 악연이 얽힌 오누이처럼 상당히 대사를 잘 주고 받더군요. 드라마 '해품달'에서 가장 큰 발전을 보인 배우 중 하나는 남보라가 아닌가 싶습니다. 허염을 몰래 짝사랑하는 설(윤승아)이 아직까지도 연기 논란에 시달리는 것에 비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민화공주의 역할은 외척에 휘둘리는 어리석고 눈먼 역할이면서도 허연우와 이훤의 사랑을 끝까지 맺어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훤의 아버지가 어쩔 수 없었던 것도 민화가 주술에 개입했기 때문입니다.

성조(안내상)는 동생 의성군(김명수)의 죽음에 어머니가 얽혀 있음을 알고 눈을 감아야했듯 이훤과 민화의 목숨 때문에 허연우의 죽음을 밝히지 못했습니다. 민화공주는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아느냐'고 묻는 아버지가 허염과 결혼하라 했던 것이 이리 큰 형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서방님과 살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자기 스스로 죄를 고백하기로 마음 먹은 그 순간에도 끝없이 눈물 만 흐릅니다. 소중한 허염의 아이까지 가졌는데 어떻게 그 험한 형벌을 받을 것인가. 아이와 지아비가 받을 고통에 이제서야 천벌을 받았다 싶습니다.

오라버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도 후회는 없다는 민화공주.

너무 귀여움을 받고 자라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철부지 공주. 떼쓰면 못할 일이 없고 원하는 것은 뭐든지 갖고야 마는 성격이라 오빠의 연인까지 무고(巫蠱)하게 되는 민화공주. 자신이 사랑하는 허염이 누이의 방에서 찢어지는 가슴을 달래고 시어머니 신씨(양미경)가 가끔씩 정신줄을 놓고, 시아버지 허영재(선우재덕)는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결하고 마는 그 모습에 마냥 웃고 행복할 수 만은 없었습니다. 진정한 형벌은 자신에게 고맙다며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허염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민화공주를 '악녀'라고 단정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어려 판단 능력이 없을 때 할머니의 욕심에 희생된 희생자라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는 사람 마다 그렇게 평가가 달라질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논란이 많은 역할로 원작에서의 처벌, 즉 지위를 박탈당하고 노비가 되는 형벌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많았습니다. 왕족이란 본디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역모에 연루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것처럼 자신의 책임과 지위를 망각한 그녀의 행동은 벌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무슨 뜻인지 조차 모르는 아이였으니 지나친 것 아니냐는 의견입니다.

회임을 기뻐하는 남편 앞에서 자백하지 못하고 우는 민화공주.

원작의 중전 보경은 존재감이 전혀 없이 궁궐에서의 삶을 불안하게 여기다 자결하고 맙니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로 사라지는 것이 중전이라 전체 이야기에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캐릭터로 원작에서도 너무나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였습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그렇게 죽어가는 캐릭터의 마음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한 캐릭터였죠. 아마 원작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그 성격을 자연의 속성에 빗대어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다 가는 미물의 역할이 원작의 중전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민서의 연기로 되살아난 중전 보경은 이훤을 간절히 원해 아버지의 음모에 동참하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권력욕에 휘둘리며 눈치보는 가여운 입장입니다. 대비(김선경)를 비롯한 윗전들에게는 살갑게 이훤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보려 애써도 이훤은 보경에게 잠깐의 동정은 보여도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는 법이 없습니다. 허연우가 되돌아왔음을 감지하며 불안해서 울먹이는 보경의 악몽. 한쌍의 '해를 품은 달'이 만났으니 교태전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의 힘도 귀신의 힘도 운명도 이제는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중전이 비련의 여인으로 변모하는 순간입니다.

아버지의 미소를 보며 그 속내를 감지하는 중전 보경.

대왕대비나 윤대형은 전형적인 악역이고 야심만만한 권력자이지만 민화공주나 중전은 사랑 때문에 희생당하는 비운의 캐릭터입니다.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자면 두 주인공의 알콩달콩한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설득력있는 악역들의 고통도 필수적입니다. 특히나 민화공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허염과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시련을 앞둔 단계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노란 저고리 입고 어린아이처럼 종종거릴 때는 지났다는 것이죠. 그녀의 석고대죄와 반성이 계속 동정받는 역할이 될지 악녀로 남을지 결정할 것입니다.

역량있는 조연급 배우들과 주연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신인급 연기자들이라 민화공주는 초반의 우려를 씻고 새로 태어나는 모습이 참 반갑네요. 20회 방영 분량 동안 이 정도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김민서 역시 색깔있는 캐릭터에 알맞은 배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배우 중 한사람입니다. 진짜 연기자는 남들이 모두 비난하는 악역도 불쌍하게 보이도록 연기한다더니 캐릭터 설정이 잘 된 것인지 민화공주와 보경이 눈물을 그럴싸하게 흘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칭찬해줘도 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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