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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이 워낙 큰 인기를 끌었고 또 그 내용이 언론 등을 통해 자주 소개된 적이 있어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결말은 별로 반전이랄 것이 없었습니다. 죽을 사람도 행복해질 사람도 정해져 있었다고나 할까요. 얼마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옮겨놓느냐와 설명이 충분치 않던 소설 속 캐릭터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관건이었을 것입니다. 소설 자체가 워낙 판타지 성격이 강해 대부분의 팬들은 그 이야기를 완전히 구현하긴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연기자가 '환상'을 완벽하게 연기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시청자들도 그 부분까진 바라지 않았겠죠.

다만 한가지 이 이야기의 얼개라 할 수 있는 '무속' 즉 '하늘의 뜻'이 잘 연출되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해를 품은 달'이란 소설의 제목은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왕의 초상에도 배경으로 그려지고 왕이 머무는 전각의 병풍으로 사용되는 이 그림에는 한쌍의 '해와 달'이 그려져 있습니다. 극중 어린 이훤(여진구)도 그 그림을 보고 '해를 품은 달'이란 봉잠을 만들도록 지시한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하나의 달과 해가 짝을 이루는 것처럼 중전과 왕이 운명적인 짝을 이루어야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이훤 양명 보경 운

결국은 모든 것이 처음부터 정해진 순리대로.

마지막회에서 극중 주인공들을 짝사랑하던 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훤의 성심을 바라던 보경(김민서)은 폐비가 될 자신의 운명에 자결을 선택하고, 양명(정일우)는 동생의 반란 평정을 도와주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자신의 사랑이 타인을 사랑하는 삶에도 싫증나고 술이나 마시는 한량인 척 사는 것도 싫다 했습니다. 허염(송재희)을 지키기 위해 설(윤승아)이 목숨을 잃었듯 짝사랑은 모두 죽음으로 끝이 나버렸습니다. 그들의 죽음이 슬프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극중 인물의 이름은 자연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이훤(李暄)이 해의 운명을 타고난 이름이라면 양명(陽明)은 밝은 햇빛을 의미하고 진짜 해가 될 수 없는 이름입니다. 煙雨(연우)가 내렸다 사라지는 안개비라는 이름에서 달을 뜻하는 '월(月)'이 되었고 그들 주변을 맴도는 운(雲)은 구름이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허염(炎)은 불꽃이라는 뜻에 알맞게 설(雪)을 녹이고 민화(旼花)를 활활 태워버리고 맙니다. 보경(寶鏡)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거울, 즉 달을 비추는 거울의 신세를 면치 못할 팔자였습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 그래서 그들의 짝사랑은 죽음으로 끝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삶과 죽음

생각해보면 다른 어떤 드라마 보다 많은 인물이 죽고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은 그리 우울하거나 서글프지 않았습니다. 대왕대비 윤씨(김영애)가 죽었는데도 국상을 치르는 장면이 연출되지 않고 양명군의 죽음도 꽤 슬펐지만 그대로 끝이었지요. 중전의 자결도 애처로웠습니다. 결국 부부가 된 연우와 월이 교태전에서 알콩달콩 연애를 즐기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영원한 그들의 조력자인 형선(정은표)는 손재주없는 이훤을 위해 가야금을 대신 연주해 줍니다. 이훤이 연우에게 선물을 준비하면 형선이 더 바쁜 것은 여전합니다. 가야금줄이 끊긴 걸 아는지 모르는지 형선의 가야금 소리는 끊기질 않습니다.

'해와 달'이라는 하늘의 운명을 맺기 위한 폭풍이 불고 검은 기운이 밀려왔으나 해가 뜨고 달이 뜨면 어둠이 걷히고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슬퍼도 그들 때문에 잠시 슬퍼했다 해도 '해피엔딩'은 처음부터 당연한 이치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운명을 거스르고 싶어했던 사람들, 궁안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죽어간 윤대형(김응수) 일파들과 또 감히 탐내서는 안되는 해와 달의 사랑을 원했던 사람들이 죽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입니다. 하늘을 거스르면 죽음 뿐이라는 교훈이 실현된 셈입니다. 하물며 그것이 사랑일지라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해품달'에서 국무 장녹영(전미선)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고 억울한 혼이 있으면 굿을 해주던 그녀가 인간들의 욕망이 얽힌 흑주술을 시술했으나 다시 천기가 이어지도록 도와주고 또 줄초상(?)이 난 궁의 영혼들을 위해 위령굿을 하고 자신의 수명을 제물로 바쳐 죽는 것은 신의 뜻을 전해받은 이의 운명입니다. 녹영과 아리(장영남)는 그들의 운명을 말해주는 것만으로 자신들의 사명을 다했다 생각하고 생에 대한 집착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리, 녹영, 잔실(배누리)로 이어지는 무녀들은 속세의 사랑을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요즘은 굿을 한다고 하면 '치성을 드린다'라는 말 또는 액땜을 위한 '푸닥거리'를 전부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소원이 이루어지길 비는 치성이나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액땜과 달리 굿은 꽤 넓은 의미를 가진 무속 행위 중 하나였습니다. 인간의 운명에 어긋난 곳이 있을 경우 잘 조절해달라 빌고 이치에 어긋난 일이 있을 때 바로잡기 위해 하던 행위이기도 합니다. 극중 언급된 성수청(星宿廳)은 한예로 국가를 위한 제사를 지내고 기우제같은 큰 굿판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무속이 많은 부분 전승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의식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신앙이었습니다.

자신의 남은 수명을 제물로 위령굿을 지내고 죽는 장녹영.

양명, 보경, 설의 죽음에는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헤어지게한다는 것 즉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해와 달의 인연을 끊으려하면 천벌을 받는다는 섭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히 보경은 감히 해를 동경한 미천한 존재로 자결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죄 때문에 무서워서 벌벌 떨다 죽습니다. 달의 자격은 없지만 달의 운명을 타고난 여인, 감히 하늘의 섭리를 바꾸려한 죄로 그녀의 최후는 비참하고 애절합니다. 반면 양명은 두 개의 해는 존재할 수 없어 사라져야했던 태양이지만 꼭 죽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해는 하나여야 세상 만물이 편안해지는데 또다른 해의 운명이었던 자신을 감당할 수 없어 양명은 지쳤습니다. 아버지 성조(안내상)는 형제의 분란거리를 없애기 위해 양명에게 애정을 주지 않습니다. 어머니 희빈 박씨(김예령)은 만날 때 마다 왕의 안녕부터 비는 충성스런 후궁입니다. 그 뜨거운 운명을 감당할 수 없어 죽음을 자청한 것입니다. 마치 불에 닿으면 녹을 수 밖에 없는 설이 자신이 죽을 줄 알면서도 염을 위해 칼을 뽑아든 것도 피할 수 없는 선택이듯 두 사람은 그럴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민화공주 역의 남보라가 끝까지 좋은 장면을 선보여줬군요. 노비가 되어 자신에게 내려진 벌을 받은 민화공주가 허염을 뒤쫓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는데 다정하게 공주를 감싸앉는 염이 보기 좋았습니다. 워낙 허염이 키다리 아저씨같던 커플이라 사랑하는 사람의 죄를 감싸안아준다는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두 사람 키차이가 꽤 많이 나더군요. 비로서 허연우와 민화공주는 서로가 서로에게 시누이이자 올케가 되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끝까지 아쉬운 캐릭터와 연기자가 많아 저 역시 이 드라마에 백퍼센트 만족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가 넘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남긴 건 이야기 자체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는 안되는 걸 알면서도 빠져드는 사랑의 운명. '해와 달'의 사랑도 사랑이지만 한갖 인간에 불과한 사람들이 한번쯤 꿈꿔보았을만한 그런 사랑의 감정에 매력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솔직히 그 느낌을 드라마가 잘 표현해냈다고는 못하겠고 원작의 느낌이 아쉬운 것도 맞습니다만 판타지가 현실이 되는 건 그만큼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러려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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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redtop.tistory.com BlogIcon 더공
    2012.03.16 13:33 신고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해 봤어요.
    너무 재미있게 봤거든요. ^^

  2. Favicon of https://atala.tistory.com BlogIcon 아딸라
    2012.03.16 14:12 신고

    저도 약간 다르게 구성해서 다시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기본 틀이 참 매력있는 이야기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