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김준의 첫사랑 월아와 첫번째 주군 최송이

Shain 2012. 3. 5.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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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의 난으로 시작된 고려 중기 무신정권은 백년간 지속되었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자면 무신과 문신의 힘이 고루 필요한 법인데 무력을 그 속성으로 하는 정권이다 보니 최고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었고 백년의 짧은 기간 동안 무려 11명의 권력자가 나타났습니다. 그 중 가장 오래 정권을 잡은 인물은 드라마 '무신'에 등장하는 최충헌(주현)과 최우(정보석)입니다. 극중 시기가 1217년인데 1211년 고려 희종은 최충헌의 암살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폐위된 적이 있습니다. 그 사건이 극중 최우의 부인 정씨(김서라)가 언급한 월아(홍아름)의 가문이 멸문한 일인 듯합니다.

무신정권 하의 고려 왕은 허수아비와 마찬가지로 격구 시합을 가자 찾아온 최우 형제에게 고종(이승효)은 모든 정사는 당신네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합니다. 최고 지위임은 분명하지만 국가 중대사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은 없다는 뜻입니다. 고종 역의 이승효는 드라마 '제국의 아침(2002)'에 출연했던 혜종 역의 노영국(현재는 대집성역)에게 왕의 몸가짐을 배운 것인지 신하들을 향해 허공으로 손을 뻗는 과장된 손짓을 종종 보여줍니다. 아랫 사람들을 거느리고는 있으되 직접 지휘하지 못하는 처지를 빗댄거 같아 아주 재미있더군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규보를 살리기 위해 생트집을 잡는 최충헌.

김준(김주혁)의 지루한 격구시합, 한계를 뛰어 넘으며 위기를 헤쳐나가는 김준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되고자하는 최우와 최향(정성모) 형제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격구 장시 대신 무기까지 동원하는 청군의 과격함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형을 밀어내고자 하는 최향의 의지입니다. 최충헌은 그 두 형제를 두고 어린아이가 칼을 쥐고 있는 꼴이라 비유합니다. 잘못 말리다간 내가 다치고 잘 달래서 뺏자니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그의 예상처럼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이 납니다. 이미 최충헌은 큰 싸움을 앞두고 이규보(천호진)를 보호하기 위해 생트집을 잡아 멀리 보내 버립니다.

김준의 승리는 최향에 대한 기선 제압인 동시에 김준이 승려를 버리고 무신으로 새로 태어난 계기가 되었습니다. 김준의 아버지나 다름없는 수법(강신일)은 말을 타고 도장을 누비는 김준이 더 이상 승려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준에게 미련을 못 버리고 소주를 들이키는 수법에게 수기대사(오영수)는 방하착(放下着)이라며 내려놓으라 권하지만 월아도 김준도 수법에겐 끌어안고 가야할 업입니다. 수법이 있어 적을 살려두고 정정당당하길 원하는 김준이 남들과 다른지도 모릅니다. 김준은 자신만 살기 위해 살생하는 노예들과 다르다며 행동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송이는 단순한 여인이 아닌 무신(武臣)의 일원

죽기 직전의 부상당한 몸으로 아씨를 위해 뛸 수 있게 격구 시합에 내보내 달라 애원하던 김준의 태도로 송이는 김준이 자신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착각하게 됩니다. 시합에 나선 김준은 어린 시절부터 유일한 사랑이던 월아에게 손을 흔들었지만 같은 곳에 서 있던 송이는 김준이 감히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리하고 상황판단이 빠른 송이가 그런 실수를 하게된 기저에는 김준과 남매처럼 자랐다는 노예 월아를 경쟁자로 생각치 않는 자신감도 있지만 김준의 남다른 성정탓이기도 합니다.

김준은 격구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이 죽었다 생각하고 포기했을 때도 기적처럼 일어나 시합을 이기는가 하면 자신의 적을 살려두는 인정을 베풀다 경기에서 질 뻔하기도 합니다. 지독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다음 시합에 나가게 해달라 조르는 그는 최양백(박상민)의 말대로 아예 종자가 다른 놈이었습니다. 송이는 그런 김준이 일개 가병이 되는 것보다 더욱 큰 것을 원한다 생각했고 그것이 자신이라 여긴 것입니다. 차기 권력을 두고 싸우는 아버지 형제의 싸움에서 한치라도 밀리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송이가 그런 그의 배짱을 신뢰한 것입니다.

월아와 송이.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여자의 사랑.

정숙첨(정욱)의 딸 정씨가 월아를 가여워하며 몸종으로 거둬준 것처럼 대부분의 여인들은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거친 정쟁에 따라 운명이 바뀝니다. 알아주는 집안의 딸이었던 월아의 어머니가 노예로 살다 자결했듯 송이처럼 명문가 영애가 될 수 있었던 월아도 거친 운명에 휩쓸려 명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송이는 다른 여인들과 달리 자신 역시 무신(武臣)의 일원으로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는 역량을 갖췄습니다. 무엇 보다 그녀는 자신과 배포가 맞는 남자다운 남자를 만나 천하를 호령하리라는 야망을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최충헌에게 물려받을 권력은 송이 자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송이의 남편으로 김약선(이주현)을 점찍어둔 최충헌의 한수는 그런면에서 탁월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장기판을 배치하는 노련한 최충헌은 최우의 약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않으며 아들이 없어 정해진 후계자가 없다는 점은 최우를 두고 두고 괴롭힐 것입니다. 천출인 만종(김혁)과 만전(백도빈)은 있으나 마나한 자식입니다. 그런 최우의 사위로 점잖고 욕심없는 김약선을 추천한 것은 송이의 야심을 활용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김약선이라면 최우의 충직한 가신이 되어 아내의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줄 것입니다.

송이와 김약선은 정치적으로 최적의 결합이지만 송이의 마음은 이미 다른곳에.

앉은 자리에서 할아버지 최충헌의 뜻이 아버지 최우에게 있음을 알아내는 송이. 최향의 기를 누르기 위해 김준을 살려내고 격구시합에서 아버지가 지휘하는 홍군이 승리하도록 김준에게 전의를 붙여준 그녀. 노예 김준에게 송이는 월아와 같은 여인이 아닌 첫번째 주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자 자신에게 명을 내리는 주군 송이. 현재의 김준에게는 송길유(정호빈), 이공주(박상욱), 최양백 보다 송이의 명령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월아를 수법 스님에게 돌려달라 청한 김준을 보며 송이의 흥분된 마음이 무너진 것은 당연합니다.

최충헌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한 도사가 주었다는 환약,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하루 동안 젊은 시절처럼 기운이 팔팔나게 해준다는 검은 약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요. 최충헌은 장남 최우에게 더이상 나를 만나러 오지 말라며 경고를 해두었습니다. 1219년 최충헌은 그 삶을 마감하고 자신의 권력을 장남에게 물려줍니다. 자신 역시 조카를 비롯한 경쟁자들을 제거했으며 세 명의 왕을 폐위시키고 고려의 실권을 장악했던 독재자 최충헌. 힘과 힘을 겨룸에 있어 정의란 어느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에게는 힘이 곧 정의였을 것입니다.

김준이 원한 것이 고작 월아가 돌아가는 것이라니. 송이의 충격.

드라마에 묘사된 것과는 좀 다르지만 '다시는 내게 오지 말라'는 최충헌의 밀담은 실제 고려사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최향은 형을 유인하려 최충헌이 위독하다 속이나 최우는 가지 않고 자신을 찾아온 최준문(윤철형)을 잡아들입니다. 실패한 최향은 계속 유배지를 전전하다 1230년 죽습니다. 최충헌은 죽기 직전 악공 수십명을 불러 하루 종일 연주하게 하고 한밤에 죽었다고 합니다. 장례는 왕에 버금가는 규모로 치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적인 전쟁이 한발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최충헌이 검은 환약을 먹는 그 날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그러는 것일까요.

잔인한 장면을 그리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다 칠전팔기의 상투적인 묘사도 그닥 좋아하지 않음에도 진아(眞我)의 경지에 이르러 한계를 뛰어넘는 김준의 묘사는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OST 역시 적절하게 사용되어 전반적으로 드라마를 세련된 분위기로 연출하고 있습니다. 다만 월아와 송이, 그리고 김준의 연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는 좀 속어로 '깬다' 싶을 정도로 껄끄럽습니다. 남성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사극에 서정적인 '멜로'는 역시 무리인가 싶습니다. 그 부분이 시대가 달라 생긴 문제인지 아니면 멜로와 남성사극의 부조화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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