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고종과 김준 맹수들 사이에서 두 사람이 살아남는 법

Shain 2012. 3. 1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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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원칙적으로 적장자 세습을 고수했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아들 태종이 그 원칙을 어긴 대표적인 왕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왕실의 혼란을 줄이고 왕권을 안정시키려는 목적으로 되도록 정실에게서 태어난 큰아들에게 우선권을 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형제가 왕위를 물려받은 경우는 몇명되지 않습니다. '고려는 덕망이 있는 형제에게도 왕위를 물려줄 수 있다'는 훈요 십조 덕분인지 조선 보다 훨씬 형제 계승이 많았습니다. 조선 세조처럼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숙부도 있었습니다.

드라마 '무신'에 등장하는 고종(이승효)는 강종의 아들입니다. 고려 의종 때 무신정변이 일어나고 왕권이 신하들에게 휘둘리자 왕의 존재는 허수아비가 되고 맙니다. 의종이 살해당하고 그의 동생, 명종, 신종이 차례로 옹립되었으나 명종은 무신 정권에 반기를 들다 유폐당합니다(1197년). 그들 형제 중 막내인 신종은 등극 7년 후 병이 심하여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줍니다. 그 왕이 바로 최충헌의 암살을 시도하였던 희종입니다(1211년 암살시도). 희종이 쫓겨나고 등극한 왕이 명종의 아들인 강종인데 강종은 명종이 폐위될 때 함께 쫓겨났다 왕위를 위해 돌아왔고 그 맏이인 고종도 태자로 책봉됩니다.

격구 시합 연회에서 신하들의 무례한 말에도 별다른 대구를 못하는 고종.

의종이 그대로 왕위를 지켰다면 명종이나 강종, 고종 모두 왕위는 꿈도 못 꿀 처지였고 하다 못해 아버지 강종이 명종에게 연루되어 사망했다면 고종은 왕실 근처에는 오지도 못한채 강화에서 살았어야 할 처지였습니다. 사촌 희종이 폐위되고 아버지가 바로 왕위에 등극하고 이년 후(1213년) 고종도 왕위에 올랐으니 어찌 보면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셈입니다. 스무살이 갓 넘은 어린 왕은 어떤 심정으로 최충헌 무리들을 바라보았을까요. 할아버지를 폐위시킨 최충헌은 고종의 서출 여동생을 첩으로 삼아 고종의 매부이기도 했지만 가깝게 느끼기에는 너무나 무서운 사람들입니다.

할아버지 명종도 무신정권에 대항하다 쫓겨났고 사촌 희종은 최충헌을 죽이려다 쫓겨났는데 눈밖에 나면 어떤 꼴이 될지 어릴 때부터 몸소 느끼고 있었을 고종입니다. 젊은 왕의 기개가 아무리 남다르다 한들 일단 살고 봐야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을 것도 같습니다. 무려 46년간 왕위에 있었으니 쉽게 쫓겨나던 다른 왕들에 비하면 장수한 셈입니다. 무조건 살고 보자는 마음을 먹고 왕위에 있었다면 성공한 것입니다. 거란족의 침입, 몽골의 침입으로 속을 끓이고 재위 내내 단 한번도 제대로 권력을 손에 쥐어본 적 없지만 호랑이 굴에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왕입니다.



치열한 접전을 앞둔 최우, 최향 형제의 신경전

실존인물들이 대거 등장해 대부분의 사건을 고려사를 기반으로 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기록을 자세히 보니 극중 김준(김주혁)의 나이나 최우(정보석)의 이름 등 몇가지 설정은 임의로 한 것같습니다. 또 김준에게는 본래 '충'이란 이름의 동생이 있어 함께 정권을 도모했습니다. 극중 만전(백도빈)이 최우의 권력을 이어받을 때 큰 공을 세워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전체 생애를 고려해봤을 때 지금은 꽤 어린 나이여야 정상이겠더군요. 송이(김민선) 역시 원종의 장모가 될 여성이니 지금쯤 결혼한 상태여야 그녀의 딸과 고종의 아들이 혼사를 맺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충'의 존재를 극중 누군가와 의형제를 맺는 것으로 설정한다던가 김약선(이주현)과 송이의 혼인을 서둘러야 이야기의 아귀가 맞게된다는 것인데 뭐 그 부분은 두고 볼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부터 최우의 가병으로 소군장에 임명된 김준의 고난은 끝이라기 보다 이제부터 시작이니 말입니다. 월아(홍아름)를 험한 세상에서 구해주기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각오하고 격구 시합에 뛰어들었고 이제는 천대받고 인간 대접받지 못하는 노예가 아닌, 한 사람의 떳떳한 무신이 되고자 하는 김준은 세상을 쉽게 살 팔자가 아닙니다.

월아를 위해 나를 이용한 것이냐는 송이의 날카로운 추궁.

격구 시합을 이긴 김준 앞에서 세 마리의 맹수들이 그를 시험합니다. 늘 나긋나긋하고 상냥하게 여성스러움을 무기로 사람들을 상대하고, 강하고 거친 면모는 전혀 드러내지 않던 송이는 김준에게 왜 나를 속였느냐 추궁합니다. 여인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다 내어주는데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해 월아를 구하려던 것이냐 묻는 송이는 친절한 여주인이 아닌 엄한 주군의 위엄을 보여줍니다. 김준의 목숨을 구해주고 격구 시합에서 활약하도록 모든 도움을 아끼지 않은 송이로서는 당연한 질책이자 질문입니다.

김준은 송이의 질문에 솔직하게 진심을 담아 대답합니다. 월아를 구하기 위해 시작한 시합이지만 노예로서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말에 송이는 흡족하게 돌아섭니다. 여인의 사랑은 월아가 먼저 가졌는지 모르지만 남자답게 사실을 인정하고 은혜를 이야기하는 김준에게는 만족한 것입니다. 송이 역시 처음엔 김준에 대한 관심 보다 아버지 최우가 숙부 최향(정성모)에게 격구를 이겨 기선 제압을 하길 바랬으니 아직까지 깊은 사랑이라 할만한 감정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김준이 다음으로 맞닥뜨린 맹수는 최향입니다.

김준에게 내사람이 되라 떠보는 최향.

최충헌(주현)에게는 동생 최충수와 조카 박진재를 제거한 전력이 있습니다. 권력을 둘로 나눈다는 것은 당시 같은 상황에선 전혀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최충헌의 가신이던 최준문(윤철형), 지윤심(구보석), 유송절(최재호), 김덕명(안병경) 등은 모두 최향을 다음 권력자로 밀고 있습니다. 최우는 상대적으로 이공주(박상욱), 대집성(노영국), 주숙(정선일), 송길유(정호빈) 등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장용(이석준)같은 책사를 곁에 두고도 노골적으로 김준을 탐내는 최향은 최충헌의 죽음이 다가오자 형을 밀어내고 권력을 탐합니다.

자신들의 술자리에 격구시합에서 우승한 노예 김준을 치하한다고 해놓고 무릎꿇은 김준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최향은 그의 성정을 떠보는 것입니다. 술한잔 받으라며 일부러 잔이 철철 넘쳐흐르게 붓는 것은 고의로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이 노예놈이 이런 굴욕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냐 싶은 것입니다. 사나운 최향의 생각대로 김준의 눈빛은 살아있는 전사의 그것입니다. 그의 충성을 받을 수 있다면 든든한 아군을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면천을 미끼로 김준을 얻으려 해보지만 김준은 거절합니다. 결국 최향은 김준으로 인해 격구시합에 졌고 그의 마음도 얻지 못해 최우를 이기지 못한 셈입니다.

고종과 김준, 너무나 대조적인 두 젊은이의 생존법.

최우는 동생과의 권력다툼을 우려해 앞으로 내가 불러도 오지 말라는 최충헌의 말을 지킵니다. 그럼에도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최향의 부름에는 응합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마지막 선전포고를 할 순간임을 직감한 것입니다. 동생의 수하들이 자신들 죽일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순순히 초청에 임하는 그는 역시 권력을 차지한 최후의 일인답습니다. 최우가 김준에게 내린 시험은 두 망나니 아들 만전과 만종(김혁)을 맡기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무서움에도 인간성을 바꾸지 못한 두 아들을 김준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만전은 최우의 뒤를 이은 차기 권력자입니다.

월아를 수법(강신일)에게 보내려했던 김준은 그런 살벌한 세계의 질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살리타이(이동신)는 거란을 한달도 안되 밀어내고 곧 고려를 노릴 것입니다. 고종이 자신의 권력을 모두 내려놓고 생존을 도모했다면 김준은 거친 그곳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남아야합니다. 언제 베일지 모르는 험난한 세계, 최향과 최우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곧 일어납니다. '강한 자가 아니면 결코 이겨나갈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김준이 어떤 방법으로 월아를 지킬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최우의 집권 과정이 꽤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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