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신들의만찬, 아동학대의 관점에서 본 드라마 가족극이 될 수 밖에 없다

Shain 2012. 5. 1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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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전 우리 나라는 전쟁과 가난으로 많은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고생해야했습니다. 입양되어 생계를 해결하고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고아원같은 보호 시설에도 입소하지 못한 채 각종 사회범죄에 노출되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한때는 많은 아이들이 국제 입양되어 '고아수출국'이란 오명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등장한 방귀남(유준상)과 수지(박수진)는 70, 80년대에 해외 입양되어 미국에서 자라다 한국으로 돌아온 등장인물들입니다. 그때만 해도 입양이란 배곯지 않고 헐벗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그 어떤 집에 입양되어도 혼자 자라는 것 보단 낫지 않겠냐는 입장이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입양해서 잘 사는 아이들도 많지만 파양되어 다시 버림받거나 학대 당하는 등 더 큰 고통을 당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입양숙려제, 입양허가제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양부모의 자격을 검증한다고 하지만 각각의 사연으로 아이들을 데려간 양부모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아이를 괴롭히는 경우 과연 아이에게 입양이 더욱 나은 선택이었나 고민하게 됩니다. 작년에 방송된 미드 '로앤오더(Law & Order: SVU)' 12시즌엔 'Locum'이란 제목의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대리인이란 뜻의 이 단어는 극중 어린아이의 '양부모'를 뜻하는 것같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습니다. 입양된 그 어린아이가 유괴된 친딸의 대신이었던 것입니다.

부모로 인해 마음고생을 한 네 명의 등장인물들. 일종의 아동학대다.


극중 양부모는 입양된 아이를 과잉보호합니다. 늘 곁에 끼고 학교에 가지 못하게 홈스쿨링을 시키고 컴퓨터를 사용할 땐 그 사용기록을 모두 삭제하더라도 복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둡니다. 위험한 사람들이 널 노린다며 팔에다 전자추적 칩을 심고 낯선 사람과 말도 못하게 합니다. 더욱 심각한 건 아이의 외모를 잃어버린 친딸과 비슷하게 바꿔버린 것입니다. 본래 금발이었던 머리색을 갈색으로 염색시키고 스케이트를 타다 코를 다쳤을 때는 코를 높이는 수술도 받게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강요에 아이는 결국 집을 가출해 버리고 그 부분이 사건의 시작이 됩니다.

사실 '신들의 만찬' 1,2회에서 진짜 하인주가 실종되고 하영범(정동환)이 하인주(서현진)를 자기 딸 대신 데려가기로 결정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엄마잃은 아이를 유괴해 딸도 구분 못하는 아내를 위해 딸 역할을 하라 시킨 것은 명백한 아동학대입니다. 송연우를 그대로 입양하여 키우는 것과 송연우를 하인주로 바꿔 친딸을 대신해 키우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밥먹이고 입혀줘서 키웠으면 양부모는 정말 할 도리를 다한 거고 아이는 무조건 고마워해야하는 걸까요. 하긴 고준영(성유리)도 김도윤(이상우)도 학대받고 자란 아이들이니 송연우의 사연이 아무리 억울해도 눈에 안 들어오나 봅니다.



부모에게 학대받은 세 아이들 모두 요리사

아무리 통속극이고 극적인 연출을 위해 과도한 설정을 일삼는, 일명 '막장 드라마'라지만 극중 세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아동학대는 심각한 상황입니다. 고준영은 죽은 딸 노릇을 강요당하진 않았어도 죽은 딸을 대신해 거둔 양엄마 때문에 친부모를 모르며 자랐고 김도윤은 아리랑 명장에 미친 엄마 백설희(김보연) 때문에 쌍둥이 형이 홀로 죽어가는 걸 봐야했습니다. 쌍둥이는 서로의 감정을 느끼는데 유난히 예민하다고 하니 자신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준영은 그것도 모자라 망나니 양아버지(엄효섭)에게 10대 시절에 버림받기까지 합니다.

하인주가 다른 아이를 대신하며 겪어야했을 노이로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진짜 인주의 오빠인 하인우(진태현)는 여기는 네 방이 아니라며 얼른 나가라 하고 단한번도 고운 눈길로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습니다. 언제라도 하인우가 엄마 성도희(전인화)에게 자신의 정체를 폭로할까 하영범이 진짜 하인주를 찾아와 자신을 나가라고 할까 걱정이 되어 불안합니다. 다섯살 어린 여자아이가 겪기에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지만 많은 사랑받고 싶은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 양아버지가 적어 준 하인주의 특징을 외우며 진짜 하인주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악몽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뜻한 안식처이기 보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부모들.


위에서 언급한 'Locum'이란 에피소드의 어린 여자아이는 자신에게 친딸의 외모를 강요하며 과잉 보호하는 양부모 때문에 가출하고 양부모에 대한 공포를 호소합니다. 험한 위탁가정에서 자라 따뜻한 보호나 풍족한 생활을 겪어보지 못했음에도 부유한 양부모 가정이 싫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냥 입양된 것과 다른 아이를 대신하는 건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린 송연우를 '하인주의 것이 모두 네 것'이라며 달콤한 말로 꼬여낸 하영범도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범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친아들 인우는 점점 더 부모와 어긋나고 양어머니를 속이는 범죄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이 더더욱 하인주를 옥죄어 옵니다. 아무리 설정이라지만 이건 아동학대입니다.

두 여주인공이 요리를 두고 대결하는 '요리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종영을 앞둔 후반부에 와서 갑자기 드라마가 '가족극'으로 탈바꿈할 수 밖에 없었던 큰 이유는 바로 이 아동학대에 있습니다. 최재하(주상욱)를 제외한 세 명의 주인공 모두가 부모로부터 학대당한 상처가 있다 보니 그 상처를 치유하지 않고서는 행복한 요리,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그 학대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 즉 부모들은 아직까지도 아이들에게 완벽한 안식처 노릇을 해주지 못합니다.

그냥 송연우로 입양된 것과 하인주를 대신하는 것은 다르다. 하인주의 극복이 필요한 시점.


아리랑 명장을 꿈꾸던 고준영도 한 명의 요리사이지만 평생을 명장이 되기 위해 노력한 하인주 역시 당당한 한명의 쉐프이고 김도윤은 해밀이란 이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는 요리사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행복한 마음으로 요리를 할 수 없는 처지로 부모와의 갈등을 우선 해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전환기에 있습니다. 해밀 김도윤이 어머니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것을 폭로했던 이유는 바로 그 마무리를 위한 것이겠지요.

시청자들 중 대다수가 요리사이면서 음식에 독을 섞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버섯까지 사용하게 한 하인주의 악행을 비난합니다만 각본 자체가 세 주인공들 중 하인주에게 가장 불리하도록 셋팅된 것도 사실입니다. 아리랑 명장인 친 엄마와 떨어져 살았는데도 요리에 대한 소질을 일깨울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친딸, 성격도 좋고 꿋꿋하고 천재적인 재능까지 갖춘 그 딸은 하인주가 되고자 했던 송연우가 넘어설 수 없는 그런 것을 타고났습니다. 더군다나 아주 어릴 때 잠깐 같이 지냈을 뿐인데도 20년이 넘어서까지 상대를 알아보는 첫사랑까지 엮여 있으니 하인주에게 너무 많은 패널티를 주었습니다.

행복한 요리 드라마가 되려면 갈등을 풀어야한다. 두 사람의 자리잡기.


하영범 가족에게 닥친 가장 큰 과제는 고준영과 송연우 그리고 하인우와 성도희 모두가 한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가짜 하인주 노릇이 아니라도 2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송연우 역시 딸이라는 위안, 친부모를 찾아 해묵은 정을 나누고 살아야하는 고준영의 정착 등 성도희가 지금 하인주를 보듬어야 하는 까닭도 무리없이 친딸에게 자리를 찾아주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일단 송연우를 안심시켜야 두 사람 모두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셈이니까요. 그 과정이 끝나야 셋 모두 요리사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가족들의 갈등 해결(좀 길지만)을 거쳐야 요리 드라마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며칠전 출연배우와 작가의 불화설이 불거져 나왔을 때도 그렇고 한편의 요리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써 기억상실과 출생의 비밀, 삼각관계가 부조화스럽게 어우러진 이 드라마가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요리로 치자면 자극적인 양념만 너무 강하고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인스턴트 식품같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불량식품입니다. 요즘 불량식품같은 드라마가 점점 더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끝 마무리를 잘 했으면 싶은 건 연기자들의 연기가 아깝고 또 그 고생이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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