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가방 매니저, 운전기사에서 기업형 연예기획사의 출현까지

Shain 2012. 6. 2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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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왜 연예계 이야기를 하는데 정치인이 등장하느냐 묻습니다. 정치인들이 술자리 마다 연예인들을 동원하고 그들의 사적인 욕심을 위해 연예인들을 유린하지 않았다면 또 정권 홍보와 권력 유지를 위해 연예인들을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면 연예계 역사에서 정치는 자연스럽게 빠졌을 것입니다. 또다른 이는 왜 연예계와 정치인 관련 이야기는 모두 '카더라 통신' 뿐이냐고 묻습니다. 연예인과 정치인들의 만남이 요정이나 룸살롱, 호텔, 기생집같은 밀실이 아니라 공식석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면 목격담이나 증언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총 64회로 다음주면 종영됩니다. 70년대 초에 시작한 이야기가 이제는 80년대 중반에 접어들었네요. 초라한 쇼단 보디가드로 시작해 거대 연예기획사의 최고봉이 된 주인공 강기태(안재욱)는 각종 시대의 영광과 그림자를 몸소 겪은 인물입니다. 그의 주변을 맴도는 밤의 대통령 장철환(전광렬)은 기태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동시에 연예인들에게 각종 부당한 접대를 요구하는 권력자입니다. 돈과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장철환에게 연예인들의 인권이나 명예는 사소하고 하찮은 '작은 희생'에 불과합니다.

서서히 마무리되어가는 그들의 이야기.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그들의 세계.


마지막회 전후로 강기태의 실제 모델인 '연예계의 대부' 최봉호씨에 대한 포스팅을 할까 했는데 아무래도 최봉호씨의 개인사와 연예계 에피소드를 분리하는게 힘들어 다음주로 미루기로 하고 이번주에는 '가방모찌'로부터 시작해 연예계의 권력자들이 된 연예기획사 관련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해볼까 합니다. 이혜빈(나르샤)와 조태수(김뢰하) 에피소드는 실존모델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장면 같은데 말입니다. '가방모찌'는 어떤 사람의 가방을 대신 들고 다니며 수행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60, 70년대까지는 일본어를 쓰던 사람들이 많아 영화계와 연예계에도 출연료를 의미하는 '캐라'라던가 '아도로크쇼'같은 용어가 일반적이었죠.

당시 활동하던 사람들의 증언으로 1960년대의 매니저는 뒷수발을 들어주는 '심부름꾼'이었다고 합니다. '매니저'라는 직함도 없이 자동차 없는 연예인들을 위해 현장까지 각종 분장도구나 옷가방을 들어주곤 했으며 때로는 보디가드 역할도 합니다. 여성연예인들을 위한 미용 담당 역할을 하는 매니저도 있었습니다. 또 멀리 공연을 가는 연예인들에겐 운전사 노릇을 합니다. 강기태가 극 초반 보여준 '쇼단' 무대나 밤무대를 돌아다니자면 그들의 도움이 필수적이었지만 그만한 대접은 받지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운전 담당 '로드 매니저'와 스케쥴 매니저 또 종합 PR과 전체적인 이미지 관리를 해주는 기획사가 분리되는 형태죠.



국내 최초의 직업 매니저와 연예기획사는 누굴까

신성일이 연재한 '청춘은 맨발이다'라는 회고록을 보면 70년대 배우 윤정희가 자기 관리에 꽤 철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정희의 매니저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나이많은 이모였다고 합니다. 고운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당시 귀한 과일에 속했던 귤을 손이 노래질 때까지 까먹고 지방 촬영 중에는 밤마다 다리가 붓지 말라며 붕대로 다리를 감아주기도 했답니다. 요즘은 각종 피부 관리와 헬스로 외모를 가꾸는데 당시에는 윤정희 정도만 신경써도 꽤 노련한 매니저에 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연예인들을 잘 뒷받침해주는 이런 매니저는 '별을 만드는 그림자' 노릇을 하지만 김추자의 매니저처럼 폭행 사건의 원인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각종 자료를 뒤져보면 우리 나라 최초의 매니저는 1925년 윤심덕의 노래를 레코딩하도록 주선한 이기세였다고 합니다. 물론 전문 매니저라기 보단 각종 섭외를 담당해주는 역할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형태의 '매니저'가 등장한 건 1960년대로 하춘화의 전 매니저였던 이한복과 패티김의 매니저였던 김병식 등을 최초의 직업 매니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매니저 이한복의 경우 이후 김세레나, 남진같은 사람의 매니저도 맡은 적이 있는데 하루에 17번 무대에 오르던 하춘화의 스케줄을 관리하다 무대 펑크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증언합니다.

'빛나라 기획'은 단순한 매니지먼트사가 아닌 영화, 밤무대, 방송, 음반등을 총괄하는 기업형 연예기획사.


'빛과 그림자' 방영 초반에 신정구(성지루)가 김추자, 하춘화가 순양에 온다며 거짓말을 했다가 바쁜 스케줄을 핑계로 유채영(손담비), 최성원(이세창)으로 출연진을 교체한 건 그런 분위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들 매니저의 활약은 점점 더 두드러져 70년대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남진, 나훈아는 각종 무더기 팬레터를 보내고 박수 부대를 끌고 다니던 매니저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하죠. 또 대마초 사건으로 가요계를 영영 떠나버릴 뻔 했던 조용필이 '가왕'이란 별명을 얻으며 탑스타가 된 것도 매니저와 기획사의 저력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최봉호씨가 우리 나라 최초의 연예기획사라 할 수 있는 '삼호프로덕션(삼호기획)'를 설립한 건 70년대이나 그때까지는 '매니저'나 '기획사'나 보다는 레코드사가 강자였습니다. '은하수 다방'같은 곳에서 죽치며 가수 스케줄을 관리하던 매니저들이 유세를 부리긴 힘들었다는 겁니다. 레코드사에서 직접 가수와 작곡가를 전속 계약하고 수익을 배분하는 식으로 사업을 했기 때문에 방송국도 매니저 보다는 레코드사의 영향력을 훨씬 두려워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81년 삼호기획도 음반 사업에 뛰어들고 80년대 중후반에는 기획사가 레코드사를 소유하는 형태로 운영합니다. 현재는 대형기획사에서 음반을 기획, 제작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죠.

최근엔 당연스레 영화기획과 연습생 훈련까지도 세분화되어 운영된다.


80년대 김완선, 인순이 등을 히트시킨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 매니저이자 음반제작자였던 한백희는 자신도 미군 부대 출신의 가수였습니다. 연예계의 큰손으로 불리며 독특한 기획력으로 많은 가수들을 스타로 만들었던 그녀는 김완선, 이주노, 손무현을 비롯한 재능있는 신인 연예인들을 '감금'하고 연습만 시켰다고 할 정도로 혹독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극중 노상택(안길강)이 가수들의 노래를 직접 들으며 컨셉을 잡아주고 강하게 훈련시키는 모습처럼 그때부터 훈련생들을 키우고 기획된 스타들을 발굴하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죠. 댄싱 스타 김완선은 그렇게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수들의 연예기획사가 이렇게 발전한 반면 배우들을 관리, 훈련시키는 기획사는 상당히 늦게 출발한 편인데 그 이유는 '전속 탤런트 제도'에 있습니다. 신인 배우를 선발해 자신의 방송국에 전속시키고 선배들에게 교육하게 하거나 단역으로 훈련시켜 주연급까지 크도록 만드는 전속제도는 방송국으로서는 적은 월급에 훌륭한 인재를 넉넉하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제도였습니다. 80년대 중후반까지도 이런 전속계약이 많아 딱히 방송국에서 월급주며 관리하는 배우들을 기획사에서 컨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90년대 초부터 배우 전문 기획사가 생겨났고 SBS 방송국이 개국하면서 배우를 위한 기획사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죠.

화려하게 빛나는 연예인들이 존재하려면 그를 뒷받침하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연예계의 대부 강기태.


극중 강기태가 활약하는 시기, 즉 81년까지만 해도 매니저는 개인적인 부탁으로 하는 일이라 정식 직업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세금을 내지 않는 직업군으로 찍혀 세무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칼라 TV 보급과 함께 사업이 팽창하고 가수들과 배우들의 무대도 넓어져 최봉호씨를 비롯한 연예기획사들과 가수 매니저들이 83년 '전국공연단체연합회' 산하기관으로 '연예프로모터연합회'를 설립하기도 합니다. 이런 양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0년대 연예인 매니저 중에는 PD에게 뇌물을 주고 브로커 활동을 하다 구속된(90년) 인물도 있고 폭력배를 동원해 연예인들을 협박하다 검거되는 등 여전히 음지의 직업이란 인식이 강했습니다.

극중 강기태는 정말 힘없고 '빽없는' 연예기획사 사장이었습니다. 재능있는 가수들이 노력해서 무대 출연의 기회를 얻어도 엽서와 음반판매 순위 조작으로 1위를 빼앗기기도 하고 정치권의 압력으로 술자리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한때 연예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어 많은 돈이 투자되고 SM같은 기획사는 아무도 쉽게 손을 못대는 재벌입니다만 연예기획사 사장이 연예인을 가족으로 여기기 보다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며 학대하고 협박하는 일들은 요즘도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권력의 무게가 기획사 쪽으로 넘어간 것 뿐 고통받는 연예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정치인은 언젠가 몰락한다. 그러나 반짝반짝 연예계는 좀 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2002년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MBC를 상대로 40여일 동안 출연거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기업형 매니지먼트사의 등장으로 더이상 방송국도 기획사의 파워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고 이 사건은 방송국과 기획사의 세력 관계가 변동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한때 연예인들을 오라가라하던 정치인들은 죽고 비난받고 버림받았지만 화려하게 빛나는 연예산업은 그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있습니다. 요즘도 강기태가 '빛나라 기획'을 운영하고 있다면 80년대와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61회) * 최성원과 미현이 카페에서 정혜의 영화 제작을 논의할 때 흐른 곡은 'Arthur's Theme(Best That You Can Do)'(1981)로 Christopher Cross의 노래입니다. 더들리 무어와 라이자 미넬리 주연의 영화 'Arthur'의 주제곡으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곡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 노래와 경합을 벌였던 OST가 바로 라이오넬 리치와 다이아나 로스의 'Endless Love'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한 그 노래에 밀려 이 곡 'Best That You Can Do'가 수상한 건 의외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의학도 출신으로 79년 데뷰해 Sailing 등을 히트시킨 팝발라드의 거장 크리스토퍼 크로스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멜로디로 아직까지도 팬층이 두터운 팝가수입니다.

크리스토퍼 크로스와 호세 펠리치아노.

* 차수혁이 카페에서 홀로 술 마시면서 듣던 노래는 'Rain'(1969)으로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의 노래입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호세는 스티븐 원더나 레이 찰스처럼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타고났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시각장애 가수 이용복이 있었지요. 1964년 데뷰해 세계적인 스타가 된 호세 펠리치아노의 이 노래는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더욱 깊어지는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 차수혁과 양동철이 바에서 대화를 나눌 때 흐르던 곡은 'The Alan Parsons Project'의 'Old And Wise'(1982)입니다. 프로젝트 그룹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앨범 'Eye in the Sky'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죠. 'Old and Wise'는 영화 '비열한 거리(2006)'에서 배우 천호진이 부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 들어 현명해지면 이란 가사가 참 와닿는 팝입니다.

(62회) * 최성원과 미현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흐르던 곡은 'Living Next Door to Alice'(1977)로 Smokie의 곡입 니다. 원곡은 1972년 호주에서 발표된 곡이었지만 1977년 스모키가 히트시켰고 많은 사람들에게 스모키의 대표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4년 동안 짝사랑해온 이웃집 앨리스라는 여성이 돈많은 남자의 리무진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남자. 그런 그에게 나도 널 24년간 짝사랑했다고 고백하는 '샐리'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다소 쓸쓸하면서도 유쾌한 내용의 사랑이야기 입니다. 다소 거칠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주는 'Smokie'의 목소리 크리스 노먼은 우리나라 팝 역사상 최초로 LP 100만장을 판매하게 한 저력있고 매력적인 보컬이기도 합니다.

* 이혜빈과 조태수에서 바에서 만났늘 때 흐르던 팝은 James Ingram의 'Just Once'(1981)입 니다. 1975년 데뷰한 미국의 R&B 가수이자 연주자, 작곡자였던 제임스 잉그램은 이 노래 'Just Once'로 국내에서 아주 잘 알려진 팝가수입니다. 이 곡은 원래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퀸시 존스의 앨범 'The Dude'에 실린 곡으로 퀸시존스는 레이 찰스의 백보컬이었던 제임스 잉그램에게 이 곡을 부르게 했고 그 곡이 히트하면서 제임스 잉그램이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82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지만 실제 그의 데뷰 앨범이 발표된 것은 1983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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