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는 이병훈 PD의 자기복제? 그래도 기대된다

Shain 2012. 10. 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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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PD하면 작년에 작고하신 김재형 PD와 더불어 한국 사극의 대표적인 제작자입니다. 김재형 PD가 '용의 눈물(1996)'같은 정통 사극으로 사극의 기본형을 만든 연출가라면 이병훈은 역사 속 인물과 가상의 창작 인물을 섞은 국내 첫 퓨전사극을 시도했고 '허준(1999)'같은 '이병훈식 영웅 사극'의 기본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극이 '허준'과 유사한 영웅의 일대기를 시도했고 최근에도 여러 드라마가 '허준'의 기본구조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동이(2010)'의 숙빈 최씨(한효주)가 검계의 수장인 최효원(천호진)의 딸이라는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대장금(2003)'의 서장금(이영애)이 궁녀(김혜선)와 군관 서천수(박찬환)의 딸이라는 설정처럼 실존 인물들의 신분을 바꾼다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험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평생의 스승, 친구와 정치적 뒷배를 얻는 연출은 영웅형 사극의 '클리셰'가 되어 있습니다. 정작 '대장금'의 작가였던 김영현은 '뿌리깊은 나무(2011)'같은 사극을 만들어 내지만 다른 사극들은 '이병훈식 사극'을 많이 활용한 모양새죠.

사람을 죽인 의관 이명환과 사람을 살리고 싶은 의관 강도준. '마의'의 강렬한 시작.

이병훈의 사극엔 주변인물들의 희생의 빠지지 않기로도 유명합니다. 장금이를 위해 죽는 스승 한상궁(양미경)과 허준의 의학적 성장을 위해 시신을 남기는 유의태(이순재) 등 주인공의 성장과 완성을 위해 누군가 목숨을 바치는 경우가 많죠. 거기다 인품과 태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어쩔 수 없는 악역들이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대장금'의 최상궁(견미리)은 집안의 이익 때문에 모든 가치를 포기한 대표적 인물이고 '허준'의 악역 유도지(김병세)는 연인을 두고 허준과 갈등하다 결국 허준을 뛰어넘을 수 없는 모자란 자신을 깨닫고 동화됩니다.

이러다 보니 이병훈 PD는 자기 복제를 한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허준' 기본형으로 '동이', '이산(2007)', '서동요(2005)', '상도(2001)'같은 드라마를 제작했고 대부분 성장과 희생이라는 기본 흐름 부분에서 유사합니다. 거기다 주연급을 제외한 조연급 연기자들은 '이병훈 사단'이라 불릴 만큼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습니다. 이희도, 이순재, 임현식, 견미리, 박정수, 맹상훈 등의 연기자들이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다 보니 전작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동이, 영달같은 이름도 전작에서 쓰던 이름들입니다).

강도준이 선의로 구해준 석구가 아들 백광현의 목숨을 구해줬다.

이번에 방영되는 드라마 '마의' 역시 다르지 않아 이야기의 기본 갈등구조는 전작들과 같습니다. 마의에서 출발해 어의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 백광현을 드라마로 옮겨놓았으나 이번에도 대부분의 출연진은 가상의 인물들입니다. 출생의 비밀을 숨긴채 백광현(조승우)과 바뀌어 자라게 되는 강지녕(이요원)과  라이벌이자 연적으로서 백광현을 방해할 이성하(이상우) 그리고 백광현의 친아버지인 강도준(전노민)을 죽인 이명환(손창민)은 광현이 뛰어넘을 숙적이고 혜민서의 고주만(이순재)은 스승이 될 것입니다.

보았던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부분은 이 드라마 '마의'가 뛰어넘어야할 최대의 난관입니다. 새로운 소재와 흥미거리를 추구하는 요즘 시청자들에게 '비슷하다'는 느낌 만큼 질리는 것도 없습니다. 맨날 봐도 똑같은 사람들에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다음장면, 그리고 교훈적이면서도 틀에 박힌 이야기 구조를 선보인다면 그 드라마는 시청률 선점에서 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시즌제'가 정착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시청자들의 요구가 순식간에 바뀐다는 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희빈'의 비극이 시작되는 현종 시대를 배경으로 소현세자와 인조까지 드라마에 끌어들인 부분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현종의 단 하나 뿐인 아내이자 서론 집안의 막강한 권력자로, 숙종의 총애를 받던 장희빈을 쫓아내고 남인을 적대시한 명성왕후가 이야기에 등장합니다(이가현). 또 실제로도 인조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묵인하고 세자빈까지 억울하게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으니 인조, 효종, 현종으로 이어지는 그 시대도 흥미롭습니다. 인조의 왕후 장렬왕후는 어쩌다 당쟁의 원인이 되었을까 따져보는 것도 재밌겠죠.

백광현과 강지녕 그 운명적인 첫 만남

시대적 배경도 그렇지만 '마의'의 첫회는 그동안 보았던 이병훈 PD의 그 어떤 사극 보다 가장 화려한 출발을 선보였습니다. 전노민, 장영남, 선우재덕, 문태원, 정겨운 같은 배우들이 특별출연했고 특히 인조의 뜻을 좌지우지한 조소용 역에는 서현진이 등장했습니다. 허구의 인물들이 벌이는 복수와 은원관계가 실제 역사와 맞물려 웅대한 출발을 한 셈입니다. 이명환 역의 손창민은 절친한 친구와 연인을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굴레 즉 '사람을 죽인 의관' 역을 멋지게 연기해냈고 '의관'의 뜻을 백광현에게 물려줄 강도관의 역할도 훌륭했습니다.

거기다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은 조승우, 이요원, 주진모, 이상우 등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복제'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과거와 유사한 줄거리일지는 모르지만 그만큼 이야기 구조는 단단하다는 뜻이기에 어떤 출연자가 나오더라도 최소한 자기 몫을 해낼 것이라 기대됩니다. 탄탄한 짜임새에 탁월한 연기자라면 이미 드라마의 기본 요건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이야기에 질려하지만 머리 아프지 않으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에는 꾸준히 눈길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본다'는 면도 있지만 덧붙여 이병훈 특유의 사극 진행방식 즉 나긋나긋하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은 이병훈 사극의 최대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이병훈 사극'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나 형식을 흉내낸 드라마는 많아도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잔잔한 스타일 만은 모방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십수년 넘게 사극을 만들면서도 만들었다 하면 인기를 끄는 비결은 자신 만의 스타일이 아닐까 싶을 정도죠.

'마의'에서 선택한 이야기의 흐름 즉 은혜를 입은 스승과 제자 그리고 부모를 죽인 원수와의 은원구조는 '대장금'과 많이 유사합니다. 반면 의학적인 성장과 어의가 되어가는 과정은 '허준'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전작과 유사하다는 점은 분명 이 드라마 최대의 약점이자 단점이겠지만 팬층이 두터운 '이병훈식 사극'의 인기는 사그라들 것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전에 읽은 기사에 따르면 1974년 데뷰한 이병훈 PD의 마지막 작품이 이 '마의'가 될 것같다고 합니다. 한국 드라마의 거장 이병훈의 최종 시청률은 어떻게 기록될지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2010년 방영된 '동이'에서 인현왕후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던 박하선이나 인원왕후 역으로 동이에게 맞섰던 오연서는 이제 조연급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장희빈 역의 이소연도 연기라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입니다. 드라마 '허준'으로 전광렬, 황수정을 '대장금'으로 이영애와 양미경 등을 최고 연기자 반열에 올렸던 것도 이병훈의 드라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명성왕후 역의 이가현에게 '스타탄생'을 기대해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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