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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앨리스, 한세경은 가난한 꽃뱀이고 신인화는 능력있는 여자?

Shain 2013. 1. 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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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담동 앨리스'는 사랑과 돈에 대한 판타지입니다. 이 판타지의 기본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타고난 능력이나 노력은 뒤떨어지지 않는 한 젊은 여성이 아무리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타고난 환경이나 성별, 인종같은 이유로 더 이상 높은 자리로 가지 못하는 현상, 사회학에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장벽을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 부릅니다. 극중 한세경(문근영)은 국내 명문대 출신의 디자이너 지망생이지만 지앤누리의 파트타이머가 됩니다.

'청담동 앨리스'는 가난한 서민 출신의 세경이 남자친구 소인찬(남궁민)과의 이별로 깨트릴 수 없는 유리천장을 느꼈다는 설정입니다. 세경은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던 서윤주(소이현)이 유리천장을 깨고 청담동 사모님이 된 것을 보고 자신 역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출세를 해보기로 합니다. 이 부분 때문에 진짜로 사랑하게 된 남자 차승조(박시후)와의 관계도 꼬이고 타미홍(김지석), 신인화(김유리)에게 꽃뱀으로 인식되는 등 유리심장을 가진 여성이라면 절대로 감당하기 힘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죠.

본격적으로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 위해 움직이는 한세경. 신인화가 약점을 알고 있다.

이런 비겁한 방법을 선택한 여주인공에 대한 비난은 상당히 직설적입니다. 차승조 캐릭터의 매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를 속이는 세경은 죄인이 됩니다. 거기다 아무리 세경의 가난한 처지를 강조해도 세경이 자신의 능력이 아닌 '사랑'과 '성'을 도구로 성공하려 든다는 점은 여성혐오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자극합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재벌출신의 능력있는 여성 신인화의 '비즈니스'와 더욱 비교가 됩니다. 정략혼이라는 재벌가의 생리에 익숙한 신인화는 계획적으로 차승조와의 인연을 엮지만 세경처럼 비난받지 않습니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처음부터 재산을 타고났느냐 아니냐의 것으로 신인화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정당하게 누리고 있지만  한세경은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남의 것을 탐내는 여자입니다. 한세경도 신인화처럼 부유한 부모와 지위를 타고났으면 디자이너로 성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모를 부정할 수 없듯 한세경이 가난한 집 출신이란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인화도 차승조를 차지하기 위해 부정한 수단을 쓰지만 신인화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습니다.

유리천장을 깨고싶은 세경 신인화와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청담동 앨리스'의 세경이 비난받는 이유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야멸찬 악녀들의 성공신화는 종종 드라마 소재가 되었습니다. 성공을 위해 남자를 이용하는 여성, SBS에서 방영될 '야왕'도 그런 내용입니다. 한세경도 남자의 애정을 성공의 수단으로 삼은 여성으로 일부 시청자는 된장녀 세경의 결혼이 몸을 파는 행위와 무엇이 다르냐고 비난합니다. 70년대에 방영된 '청춘의 덫'부터 최근 종영된 '그래도 당신'까지 성공과 야망을 위해 조강지처를 버리는 야심찬 남자들은 흔했는데 세경처럼 적극적으로 돈을 탐낸 여주인공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성들이 결혼으로 성공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남자 잘만나 팔자 달라지는 여자가 많다는 건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출세를 위해 사랑을 버린 남자도 드라마 소재로 자주 이용되곤 했습니다. '모래 위의 욕망(1992)'같은 드라마는 재벌 딸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죽인 한 남자의 성공담입니다. 자신의 능력 만으로 성공을 거머쥐기 힘든 사회에서 사랑을 발판으로 삼은 주인공은 남녀 불문 다양한데 유독 한세경이 악평을 듣는 건 그만큼 판타지에 관대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일까요.

한세경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에는 시대적인 편견이 담겨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을 것같습니다. 차승조 입장에서 생각해보라는 사람들은 남성을 여성이 이용한다는 점, 평범한 남성들이 아닌 재벌가 남자들에게 올인하는 된장녀라는 점에 반발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물론 사랑을 속이는 행위를 하긴 했지만 한세경의 캐릭터가 백퍼센트 설득을 얻지 못한 건 작가의 어설픈 설정 탓이기도 합니다.

순수한 사랑을 이용한 한세경에 대한 반발. 그 반발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첫번째는 한세경이 아직까지 시청자들을 설득시킬 만큼 당찬 능력을 보여주기 보다 차승조에 대한 순정 만으로 이야기를 지탱시켜왔다는 점이 문제고 두번째는 유독 '신데렐라' 타입 여주인공을 가혹하게 보는 시청자들의 시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나쁜 악당에게는 원래 그런놈이라며 비난하지 않지만 청렴하고 진보적인 이미지의 정치인에게는 두배 세배 가혹한 비난을 퍼붓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첫번째 부분은 한세경이 차승조와 차일남(한진희) 사이를 오가며 여우같이 활약하는 모습으로 극복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부분, 즉 전략적으로 '신데렐라'가 되길 원하는 여주인공에 대해서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평가가 엇갈리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유리천장을 깨기 힘들다는 이유로 사랑을 이용하는 앙큼한 행동을 해야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여전히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꿋꿋이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야하는 것일까. 지금도 사회에는 수없이 많은 부당한 이유로 차별받고 성공은 커녕 정규직을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세경의 선택은 노력하는 사람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 행위임은 분명합니다.

무작정 '청담동'이 좋은 세대. 유리천장에 해법은 있을까?

신인화는 자신의 행동 즉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얽힌는 정략혼이라던가 재산을 노린 꽃뱀을 처단하는 일에 아무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배워온 그들의 질서가 그렇다는 캐릭터 설정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세경과 윤주, 최아정(신소율)이 그토록 갈망하는 '청담동'의 정체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마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세경은 서윤주의 삶이 자신의 것이 되길 원했고 신인화의 부유한 삶을 부러워합니다. '청담동'이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같은 이치로 한세경의 선택이 꽃뱀이냐 아니냐를 따지기 보다 왜 우리 사회는 자신의 노력으로 유리천장을 깰 수 없다고 단정하는지 왜 젊은 사람들이 이런 세상에 무기력하게 주눅들어있는 것인지 그 부분을 먼저 고민하는게 맞지 않을까요. '청담동 앨리스'는 돈과 욕심에 깨져버린 우리 시대의 사랑을 묘사한 판타지인 동시에 시대의 젊은이들을 고민하는 문제작이라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자신의 경험을 돌이켜보았을 때 과연 우리 나라에 '유리천장'이 없었노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요? 암묵적으로 모른체했던 유리천장이 앨리스의 반란으로 깨어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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