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 생활 패턴은 아무래도 영화 보다는 드라마에 알맞습니다. 지역적으로 개봉하는 영화를 때맞춰 관람하기도 힘들 뿐더러 DVD나 블루레이를 보다는 TV를 켜고 작업하는게 여러 모로 편리합니다. 때로는 다운로드받은 파일을 아이팟같은 것을 이용해 시청하다 보니 멋진 화면으로 만들어진 영화 보다는 이야기 위주의 드라마가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죠. 오늘 포스팅하려는 영화 TV 무비 '대결(Duel)'도 어떻게 보면 영화가 아니라 영화 형식의 TV 드라마라 어떻게 분류해야할지 모르겠군요. 'Duel'은 1971년 11월 13일 ABC 방송에서 처음 방송되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스피븐 스필버그의 데뷰작인 이 영화를 절대 놓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Richard Matheson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고물 트럭과 자동차 한대 만으로 멋진 스릴러를 연출합니다. '한 세일즈맨과 그의 자동차를 미친듯이 쫓아오는 트럭'이 이 영화의 전부일 뿐인데도 시청자들은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스릴러 영화의 교과서이자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의 기본공식이 드러난 영화가 바로 이 'Duel'입니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하는 요즘 영화와 비교하면 저예산 영화의 승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세일즈맨의 자동차를 집어삼킬 듯이 쫓아오는 거대한 트럭. 마치 약한 동물을 사냥하는 맹수같다.

저는 이 영화를 언제 처음 봤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꽤 어릴 때 TV에서 방영되던 더빙 외화로 봤을 수도 있고 누군가가 빌려온 비디오 테이프로 봤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이 영화가 너무 인상적이라 꽤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어느 순간 그때 그 영화가 뭐였더라 되짚어보다 이 작품의 제목이 'Duel'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 그렇게 오래된 영화임에도 시대적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했다는 점, 그 유명한 감독의 초기 작품이라는 점이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80, 90년대에는 TV에서 70년대 외화를 자주 방송해주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오래된 영화는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는데 2013년에 이 영화를 새로 보니 40년전 영화라는 티가 뚜렷하더군요. 무엇보다 71년이면 미국도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던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흑인들과 여성들의 인권운동 바람이 분게 60년대였고 반전운동이 일어나던 시기도 그때였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화면 속에 담은 미국 서부는 인디언과 카우보이들이 말을 타고 달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풍경이었죠. 건조한 사막 속을 달리는 기차가 마치 힘차게 뛰어가는 맹수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데이비드 맨을 계속해서 위기에 빠트리는 트럭 운전사는 대체 누구일까.

잘 살펴 보면 엑스트라로 등장한 사람들도 70년대에 비해 구시대적입니다. 주인공이 황량한 서부 사막을 달려가며 들린 휴게소는 근처 주민들이 점심을 즐기러 찾는 곳이었습니다. 서부 영화에서나 보던 카우보이 모자에 한껏 깃을 세우고 단추를 채우지 않은 셔츠, 말을 타면 더 어울릴 것같은 웨스턴 부츠에 농장일에나 어울릴 것같은 웨건까지. 안 그래도 트럭운전수의 도발로 겁을 집어먹고, 신경이 곤두선채 낯선 사람을 경계하던 주인공에게 낡고 오래된 휴게소는 시대를 거슬러온듯 거북하기만 합니다.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 원시 사막일 때는 사냥하는 모습이 어울렸고 인디언과 백인들이 활과 총을 들고 말을 달리던 시절에도 사냥이 그 지역의 섭리였습니다. 자동차를 끌고 서부 고속도로를 달리던 주인공은 검은 매연을 내뿜는 거대한 트럭을 만나는 순간 타임워프를 하게 됩니다. 부인에게는 평범한 남편이었던 도시인 데이비드 맨은 겁먹은 한마리 짐승이 됩니다.

주인공 데이비드 맨(데니스 위버, Dennis Weaver 이 분 2006년에 사망하셨더군요)은 자동차를 몰고 세일즈 고객을 만나러 가는 전형적인 도시 사람입니다. 고속도로 소식과 일기예보, 의학소식, 스포츠 소식, 가정 주부 일을 하는 한 남편의 이야기를 전하는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뻥 뚤린 도시 순환도로를 달리던 데이비드가 사막으로 들어서고 연기를 내뿜는 트럭을 만나면서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던 세계에서 야수가 득시글대는 원시시대로 들어간 느낌이랄까요. 괴상한 트럭을 만나 추월을 하지않았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모로 이 검은 트럭은 먹이감을 가지고 노는 배부른 맹수같습니다. 얼굴을 알 수 없는 트럭운전사, 웨스턴 부츠를 신은 그 이상한 남자는 마치 고속도로 위의 거대한 짐승처럼 데이비드를 추격합니다. 데이비드 맨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문명화된 인간이기 보다 한마리 약한 동물처럼 겁에 질려 그 남자를 피하려 합니다. 휴게소에 들릴 때 마다 낯선 사람을 잔뜩 경계하고 이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전화를 걸고 미친 남자가 뒤따라온다며 스쿨버스 운전기사에게 신경질적으로 공포를 호소하는 등 약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데이비드맨은 약한 짐승처럼 그저 쫓겨다닐 뿐이다. 순식간에 사냥터로 변한 고속도로.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한 건 몇백년 되지 않은 짧은 역사일 뿐입니다. 백인들은 자연과 하나가 된 인디언을 정복한답시고 말을 달리고 원시인들처럼 로프를 빙빙 돌리며 카우보이 노릇도 해봤지만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그저 나약한 짐승일 뿐입니다. 흥미롭게도 주인공 데이비드 맨은 거대한 사막 안에서 개조된 고물 트럭에게 쫓기며 그 자연의 일부가 되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스필버그 감독이 굳이 트럭운전사의 얼굴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강조하기 위해서 였을 것입니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 'Duel'에서 연출하고 있는 공포는 식인상어 '죠스(Jaws, 1975)'의 분위기로 이어집니다. 인간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무서움 - '죠스' 시리즈는 사람들 마음 속에 숨겨진 원초적인 두려움, 공포를 자극합니다. 마치 어디서 야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컴컴한 숲 속에 홀로 서있는 느낌이랄까요. 미지의 야수가 나를 덥치는 그 순간 보다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무서움에 벌벌 떨고 있는 그 순간이 훨씬 무섭고 오싹합니다. 어쩌면 현대인들을 짓누르고 있는 무형의 '힘'에 대한 공포로 대입시켜 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Duel'은 무려 40년전의 TV 영화이기 때문에 큰 기대를 갖고 보기 보다는 현대 영화의 모티브가 된 고전을 본다는 느낌으로 감상하면 좋을거라 봅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연에 대한 공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죠스'같은 식인괴물로 공포심을 자극하는 영화에 쉽게 공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스포츠카가 흔한 시대엔 구닥다리 설정이기도 하구요. 대신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예전에는 이렇게 단순한 플롯과 공포로도 사람들을 충분히 끌어당길 수 있었는데 요즘은 스트레스, 신경전, 정신분열증, 패닉같은 훨씬 더 복잡한 심리 묘사가 필요한 시대라는 점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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